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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9달러 외 1편/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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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민
9달러 외 1편
블라디보스톡 역 광장에서
격전지의 기념뺏지들이 꽂혀있는
러시아 병사의 모자를 산다
뺏지가 조금 더 달린 것은 12달러
3달러 더 주고
총성이 박혀있는 검붉은 하늘과
국적 불명의 깃발이 꽂혀있는 들녘을 산다
병정놀이를 좋아하는 아들놈을 위해
머리에 써보고서 멋있느냐고 묻는다
식량 끊긴 밤이었던가
거리에서 주운 퇴역장군의 뺏지,
오지 않던 봄의 뺏지들이
단 돈 9달러
열차시간 다 되어
자신들의 주둔지로 떠나는 여행객을 향해
7달러로 5달러로 떨어지는 모자
팔리지 못한 모자들이 외치는 9달러가
점점 멀어진다
나비지뢰*
지구를 지키기 이해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가방 속엔 만화,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들어있다
에반게리온, 서에 처해있는 지구
정체불명의 막강한 적은
거대한 기계 속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이 가까이 있음을 직감으로 느낀 아이들의 어깨는 무겁다
화려한 비쥬얼 에니메이션의 전성기를 맞은 지구는
인류의 절반이 사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악의 세력에게 넘길 수 없는 지구를 위해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놀라운 상상력만이 유일한 무기다
지상에서 사라진 네브라스카 늑대의 거처,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통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전쟁뿐이어서
수시로 시험을 치르고
새로 생긴 술집 벽지에는
지나간 아이들의 투쟁사가 그려진 만화책이
한 장 한 장 찢어져 벽지 대신 붙어있다
나약하고 볼품없는 녀석이 주인공인
예매 오픈 25분 만에 매진된 우리들의 폐막작,
아이들의 뷰티풀 월드가 극비리에 상영 중이다
* 아이들의 손발과 눈을 빼앗는 무기.
신정민∙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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