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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살구나무 외 1편/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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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75회 작성일 09-12-2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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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살구나무 외 1편


한성화교학교 오래된 회색 담장 너머
깡마른 살구나무가
굳은 실핏줄을 풀며 
지난 사랑을 기억해내네 
송곳 끝 같은 상처를 핥으며
꽃눈이 실눈처럼 열려
화끈한 손바닥이 
월병집 유리문을 바삭하게 구워내네
오향장육에 실파냄새
중국만두 파는 산동교자까지
터질 것 같은 옛사랑이 냄새를 피우는 골목
짧은 일본말이 노점 앞으로 느리게 흘러가고
주술같이 나무는 서서 졸다가
길바닥에 깔린 한류배우들이 자꾸 웃어서
나무는 호객처럼 바빠졌지

열아홉이던 때
스물이던 때
살구나무가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눈다락지 같은 꽃눈이 진물나네
울음소리 같은 게
가지마다 하얗게 매달렸지
눈꺼풀이 무거운 나무그림자가
담에 등을 대고 오래 서있네






들개


들개 떼가 흑염소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마을에서 말이 새끼를 낳는 날은 태반을 먹으려고 
마구간 앞을 개들이 서성거린다고 했다
미끈하고 끈적하게 젖어있는 짐승의 태반 
아직 따뜻해서 슬픈 
미끼를 놓았는데 개들은 오지 않았다

산을 뒤져 들개 새끼 세 마리를 잡았다
솜다리꽃 같은 발자국을 가졌고 풀벼룩이 있었다
어미가 짖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이제 저것들은 길들여질 거다
네 손등을 핥으며 복합사료를 먹을 거다
공격과 습득과 걸식의 규칙을 다 잊어서

긴 송곳니를 혀 아래 자꾸 감출 거다
는개를 뿌리며 무겁게 가라앉는 바람을 
죽은 새가 우는 소리를 
혼자 다 말아먹고 듣지 못할 거다
목에 줄을 매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저녁
기차가 오는 들판 멀리 
툭툭 점처럼 눈에 불을 켠 것들이 서 있다가  
천천히 돌아서는 
한 풍경을 가질 거다



김윤∙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붕 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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