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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포도밭이 있는 마을 외 1편/전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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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09회 작성일 09-12-2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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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숙
포도밭이 있는 마을 외 1편


원래 이 마을은 포도밭이었네. 포도밭을 갈아엎은 뒤 포도나무는 사라졌지만 뿌리의 기억은 지금도 살아있네. 포도넝쿨은 틈만 나면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네. 바닥으로 천장으로 기어나온 넝쿨손 잡아당겨 노란 줄무늬 무당거미가 몇 겹의 덫을 놓네. 아무도 몰래 피었다 지는 포도꽃이 소녀들의 가슴에 진초록 포도알을 슬어놓네. 멍울져 아픈 젖가슴 때문에 소녀들이 골목을 뛰쳐나가네. 딸들을 기다리며 엄마들은 항아리가 가득 차도록 검은 유두에서 포도즙을 짜네. 이윽고 시큼했던 골목이 발효되기 시작하고 향긋한 포도주 냄새가 멀리로 퍼져나가네. 진보라색 포도 내음에 이끌려 배가 불룩해진 소녀들이 집으로 돌아오네. 마을에는 눈이 까만 아이들이 주렁주렁 태어나네. 집집마다 아기들 울음소리 익어가네.





페스트, 2009


이이야기는뉴스가아니다 동네족발집아줌마가목을매었다는건9시뉴스에안나온다 뒷집뒷집건너부터는틀니빠진입처럼문틀이죄다빠진집들과반쯤굴착기에씹힌건물들이어둠을울컥울컥게워낸다 며칠전새벽엔앞산공동묘지옆나무밑에주황색빨랫줄을목에건남자가쭈그리고앉아있었다어디다쳤어요묻는남자앞에서모로쓰러졌다 젖은이불과베개유리조각들틈에서이름을모르는식물들이우글우글자라고고양이들이보이지않는다 어제낮에앞집아저씨가목을매었는데아무도내다보지않았고소리없이구급차가다녀갔다 골목엔더럽고야윈개들이어슬렁거리며무슨냄새든맡으려고킁킁거린다 겨우살아남은문을향해내일아침시체가되었던사람이등을구부리고벽돌조각과쓰레기사이를조심조심비켜들어간다 먹을것없는소문을입에물고쥐새끼들이보이지않게돌아다닌다  이이야기는계속전염된다


전명숙∙부산 출생. 1999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염소좌 아래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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