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4호(2009/여름)/신작시/참깨 차비 외 1편/박성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47회 작성일 09-12-20 23:26

본문

박성우
참깨 차비 외 1편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와 문 앞에 어정쩡 앉으신다 
처음 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뵌 것 같기도 한, 
족히 여든은 넘어 뵈는 얼굴이다 
아침잠이 덜 깬 나는, 누구시지? 내가 무얼 잘못 했나? 
영문도 모른 채 뒷머리만 긁적긁적, 안쪽으로 드시라 했다 

할머니는 불쑥 발을 꺼내 보여주신다
흉터 들어앉은 복사뼈를 만지신다 
그제야 생각난다 언제였을까 
할머니를 인근 면소재지 병원에 태워다 준 일,
시간버스 놓친 할머니만 동그마니 앉아있던 버스정류장,
펄펄 끓는 물솥을 엎질러 된통 데었다던 푸념, 
탁구공 같은 물집이 방울방울 잡혀 있던 작은 발, 생각난다
근처 칠보파출소에 들어가 할머니 진료가 끝나면 
꼭 좀 모셔다드리라 했던 부탁, 
할머니는 한 됫박이나 될 성싶은 
참깨 한 봉지를 내 앞으로 민다 
까마득 잊은 참깨 차비를 낸다 
얼결에 한 됫박 참깨 차비를 받는다

지팡이 앞세우고 물어물어, 
우리 집을 알아내는데 족히 일 년이 넘게 걸렸단다
대체 우리는 몇 가마니나 되는 참깨를 들쳐 매고
누군가의 집을 찾아 나서야 되나? 
받은 참깨 한 봉지 들고 파출소로 간다 






해바라기 씨氏


방이 몇 개냐, 전화가 왔다 빈 벽이 있느냐고도 물어왔다 9평 좀 못되는 컨테이너집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따로 만나 막걸리 한 잔 마신 적 없고 국밥 한 그릇 먹은 적 없는 유종화 선생 목소리였다 살만 하냐고 안부전화를 넣거나 받은 적도 없이 선생과 나는 겨우, 서로 책 한 권씩 보내 읽은 사이다 

언젠가 노래하는 유종화 시인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를 잃은 그가 끼니도 일터도 버리고 반송장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지독하게 사랑하면 그처럼 서슴없이 막장에 닿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의 순정한 사랑이 부럽기까지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춘분, 천권의 책을 뺐다 트럭을 불러 손때 묻은 그의 책과 책장을 모조리 뺐다 그가 내주는 밥을 된장국에 말아 우걱우걱 넘겼다 그는 내게 끼니를 내주고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다만, 책을 뜻있게 쓰고 싶어 나에게 보낸다는 말을 건네면서 어떤 다짐처럼 웃었다

그러다가는 머쓱해 하는 내 어깨를 툭 건들었다 좋은 시 쓰면 되지 뭘, 졸지에 나는 좋은 시를 써야하는 시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학교에 다시 나가 국어를 가르칠 것이며 뜬금없이 해바라기를 심고 싶다면서 가슴 벅차했다 눈이 시고 혀끝이 비릿하게 짜왔다 그의 아내가 간지 벌써, 십년이다



박성우∙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미, 가뜬한 잠 등. 동시집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