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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끈 외 1편/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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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임
끈 외 1편
앞에 가는 노부부 등산복 차림으로
스틱에 체중을 반 넘어 실어 산을 오른다
행여 남의 길을 막을까
때로는 남편이 앞에서
때로는 부인이 앞에서
저렇게 살아온 세월이 사십 년? 오십 년?
그 사이
나란히 서서 걸어온 세월은 얼마나 될까
‘생강나무 꽃이 벌써 피었네요.’
‘그래도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는 걸’
앞서 가는 부인과
뒤에 가는 남편 사이에
생강나무가 슬쩍 끼어들어 그들의 끈이 된다.
‘바람이 아직 찬데’
‘그러게요’
바람도 두 사람의 사이를 잇는다
두 사람이 잡고 온 보이지 않는 끈이
온 산을 끌고 간다
옆으로 지나가며
까르르 웃는 소녀들의 웃음소리
그 끈에 방울처럼 매달린다.
바람
아파트 사이로 들어선 그가
벌 떼 소리를 낸다
몸뚱어리는 아파트 이곳저곳에 부딪쳐 각이 졌다
부비고 뒹굴어도 좀처럼 무디어지지 않는 모서리들
그가 나를 흔든다
마구 잡아 길을 가면서도 생각이 많아
부딪는 몸마다 흔들고 가는 그
때로는 여리고 때로는 거칠게
그림자도 없이 가는 그
치열한 삶의 사유가 깊어 소리만으로도
섟을 일으키는 그
오늘은
그의 길 안에서 몸 부딪는 데로 흔들려 한 몸처럼
그의 사랑을 탐하고 싶다.
유정임∙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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