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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틀니 외 1편/김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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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43회 작성일 09-12-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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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틀니 외 1편


생사를 넘나들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나자
병상에 일어나 앉은 아버지
처음 하는 일이
입 안 틀니를 쏙 빼서 닦는다
이웃집 마실 갔다 돌아온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정성껏 닦는다

시간의 강을 건너 간
순하디순하게 앉아있는 덩치 큰 아이
가슴 한켠이 짜르르 짜르르 울린다 

그랬다지 
어린 시절에 늘 배가 고팠다고
난리 중에 피난 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먹고 보자고
배곯던 그 긴 시간들이
그림자처럼 찰싹 따라다녔나 보다

달달 떠는 어눌한 손놀림
손가락이 자꾸 엇나가는데도 
당신의 생을 씻어내는 것처럼 
경건하게 틀니를 닦는다
암세포들마저 활동을 잠시 멈춘 듯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용산 참사에 애도를 표하며


하루 세끼 밥 벌어 먹고자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가장 평범하게 살았을 뿐입니다
무엇을 더 내놓으라는 말입니까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오빠 남편의 생목숨을 가져가고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하는 당신들
죽어서도 고인들을 분노하게 하는 당신들은
높은 연봉에 안락한 집에 다국적 밥상에서
다리 뻗고 편안하겠습니다

천지가 통곡하며 앓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요
저 광장에 모인 수천수만의 처절한 절규가 안 들리지요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밥줄로 장난칠까
사람 목숨인데, 사람 생명으로 뒤통수칠까
설마 설마 했습니다
탐욕에 영혼을 팔아버린 당신들
경찰검찰은 자본가들 발 닦고 있고
법은 자본을 따라다니며 온갖 부정부패의 뒤를 봐주며 
당신들이야말로 추악합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자본의 노리개입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죽으라고 쏟아 부은 기름 불꽃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고
하루아침에 밥줄 끊겨 거리로 쫓겨나니 눈물조차 말라버렸습니다
가난한 공부방 아이들이 공부방에서조차 내몰리고 있습니다
뚫린 입을 몽둥이로 틀어막으니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옆구리 머리 발끝, 야금야금 삶을 죄어오는 치밀하고 전방위적인 폭력에
끝도 기약도 없이 더 잔혹해질 죽음의 잔치에 숨이 막힙니다
정녕 힘없고 가난한 이들은 이대로 죽으라는 말입니까 

내 배 덜 고파 이웃의 배고픔을 모른 척한 죄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눈감아 준 죄
아직도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되어 있는
고인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한 죄
방관하고 외면하여 이 참혹한 현실을 만드는데 거든 죄
창자가 끊어질 듯 고통스럽습니다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습니다 

바다 건너 폭탄테러와 전쟁소식이 끊이질 않고
이 땅에선 어떤 칼바람이 불어 닥칠까 피가 마릅니다
매일 눈을 뜨기가 무섭습니다
역겨워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당신들의 썩은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구린내가 끝없이 솟구칩니다
눈 하나 깜짝 않는 괴물 같은 당신들이 두려워도
싸워보지도 않고 엎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자로서 이 오욕의 현실을 뼛속 깊이 새길 것입니다


김사이∙2002년 ≪시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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