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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저밈 외 1편/이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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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65회 작성일 09-12-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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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저밈 외 1편


칼 맞는 운명을 타고 났다
사내는, 한 달에 한 번 횟집을 돌며
주방장이 꺼내오는 칼을 맞았다
회칼에 무람없는 꼴은 못 보는
성미까지도 서로 맞수여서 둘은
물 한 대접 떠 놓고 숫돌을 적시며
숨소리마저 저미도록 공을 들였다

수십 자루 칼을 가는 동안
주방장이 살리려는 각은 죽이고
사내가 죽여 놓은 반대쪽 각 세우며
손자국 패인 칼자루 모양 따라
주인의 물색을 어림하는 솜씨라니
정작 칼의 주인은 주방인지 숫돌인지
주방장인지 칼 가는 사내인지

날카로움이 곧 그의 힘
그 모든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숫돌의 눈
초벌 재벌, 날은 한 치도 어김없다
숫돌은 전방 15cm, 후방 10cm
장방형, 속으로만 깊이 패어
무시로 마르고 넘치는 사내들의 바다 


사내가 갈아 낸 최고의 칼날에는
사람도 도마도 바다도 헤치지 않는
파도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숫돌 둘을 거쳐야만 마지막 물기를 닦는
사내의 낡은 가죽 전대에
무뎌진 내 칼도 닦아봤으면
딱 한 번 그의 바다에 갈아봤으면






당신의 타로Tarot 카드


정보고 타로 동아리, 교칙상 ‘담임’ 지정 필수
올해는 맡겠다는 선생님이 없었는데, 하필
‘기간제’ 교사인 S를 찾아왔더란다

친구인 소설가 S 교사가 봐주는 타로카드 점도
그들과 닮았다, 가까운 미래거나 자기의 문제는
더 높은 적중률에 구체적인 예언까지 덤!
예언가로부터 구술된 포복의 어떤 미래들이
탄로를 경계하며 타로의 등 뒤에 도사리는데
신묘하게 풀어내는 S의 입담 앞에, 나는 고작
교사에다 부업까지 하느냐는, 비루한 농담이다

‘하필’이라며 말끝 흐리던 S의 다음 말을
더 듣지 않았으나, 더 묻지 않았으나, 안다
기간이 시한으로 구체화될 때 견뎌낼 불안
선생은, 아직 가르치고 싶지 않다
운명의 수레바퀴, 은둔자, 마술사, 단검
그림 한 장에 잇따르는 이채와 신념의 누설
어린 점술가들의 경험과 상상을 경탄하는 S

기간제 교사 S가 수락한 ‘동아리 담임’ 자리는
수업시간 예시한 어떤 책들보다 ‘타로적’으로
학생들의 믿음에 값했으리라, 비근한 미래를
S의 타로카드를, 오늘 나는 뽑지 않기로 한다

정보고 학예회 행사에서 만날 당신의 타로
내 어린 예언가를 위해!


이민아∙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동아일보>,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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