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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낡은 손수레 외 1편/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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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낡은 손수레 외 1편
누가 쓰다 버렸을까
언덕 위의 낡은 손수레
벌겋게 녹슨 시간의 바퀴살이 삭아 흐물흐물 바람을 불러 모으고 손잡이에 묻은 손때가 밤 강물의 윤슬처럼 출렁이네 앙상한 어깨는 이름마저 희미해진 내 아버지 뒷모습이네 먼지 뿌옇게 올라 구린내 팔랑대던 신발 속에서 올망졸망 도란거리던 유년, 지금 작은 생명 싸안고 터지고 헐어버린 시간을 퀼트하네 축 처진 어깨 위에 산 벚꽃나무 향기 가사 장삼처럼 걸치고서 성큼성큼 붉은 저녁놀 속으로 그림자로 걸어 들어가네
누가 쓰다 버렸을까
언덕 위에 걸터앉은 낡디낡은 저 등짝,
칠월, 아스팔트 위의 만다라
장기 요양병동 203호
빈 천장 바라보며 옹알이 중인 그녀
움푹 꺼진 눈두덩에 활짝 핀 푸른 꽃
지독한 가난이 싫다며
질긴 꽃자리에 생채기 내놓고 늘
흐린 하늘 바라보며
형광색 별이 되고 싶다던 그녀
아슬, 아슬 움켜쥐던 그 허공
지금 놓아버리고 싶은지
아스팔트 바닥에 찰싹 붙은 채
탈골해가는 칠월의 아침에
담장에 처억 허리를 걸치고 살랑대는
그녀의 주황색 쉬폰치마를 들치며
햇살 한줌 하늘하늘 환하게 웃고
허공에 손 내밀다가
아스팔트 위에 수놓인 칠월의 만다라 위로
하르르 하르르 능소화꽃 지는 소리
김영숙∙2006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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