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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속옷 외 1편/최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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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89회 작성일 09-12-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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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진
속옷 외 1편


불빛은 많은 것을 부풀린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한 순간

얘기하고 싶어.
가장 늦게 벗고 가장 먼저 입는 속옷에 대해.
베란다 밖으로 속옷이 날아가고 
네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어. 
다른 동네까지.
일 년 후에 돌아왔어.
다른 동네까지.
한 서랍 속의 속옷들을 쫓아

불빛이 닿을 때 창은 참았던 숨을 터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한 순간에도
속옷을 벗고 입는 
짧고 긴 중간에 대해

돌아온 방이 타버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너는 어디까지 이어져 어디에서
다른 동네가 될까.
그을음이 벽을 타고 흐르며 개처럼 짖고 있어요.
누가 우리 집을 불 태워버렸어요. 
여전히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집에서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고 외투를 걸치는 날들 속에서 

네가 앉았다 일어난다.
다 쓴 잎을 자기 발에 버리고 
더 쓸 잎을 가려내는 나무 옆에서 






가위
―폭풍 속으로 


1.
너를 상자에 담아 버렸다. 
잘 다니지 않는 골목이면 어느 집 앞이든 개의치 않았다.
  
다음 날 그 집의 가족들은 모여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상자 속에 버린 쿠션이 그 집이 버리고 간 물건들 사이에 뒤섞여 아이들의 축구공이 되어있었다. 축구공을 보다가 벽에 부딪혔는데, 어딘가에 부딪혀도 넘어지지 않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내게 부딪힌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나는 벽 너머 방에서 자는 사람의 머리맡을 쓰다듬고 있었다. 우린 졸고 있었다.

2. 
나는 우는 아이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우린 마주 앉아 있었다. 너는 나를 지나서 왔다. 네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네게서 네 등 뒤를 지나는 트럭의 요란한 경적소릴 들었다. 

너는 빗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네 시선이 닿는 곳에서 이삿짐을 꾸리고 떠난 집이 허물어졌다가 지어지고 있었다. 말없이 앉은 우리 사이에서 촛불


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3.
등을 돌리고 잘라낼수록 너는 늘어났다.
내가 잘라낸 사람들로 내 옆이 두꺼워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차고 놀던 쿠션을 개가 물어뜯고 있었다. 찢어진 쿠션이 젖고 있었다. 할 말이 있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겨우 할 말이 없다는 것  

새로 지어진 집은 창문을 빛내며 담벼락보다 견고하게 자기를 숨기고 있었다.  

약속 장소에 우린 둘 다 없었다. 그 날도 다시 찾은 날에도 우리는 텅 빈 곳을 찾아 헤매었을 뿐, 무엇우리는 우리를 찾지 않았다.



최정진∙ 200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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