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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하중도 외 1편/김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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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순
하중도 외 1편
그 다리의 하중은 섬에 있다
물푸레나무 몇 그루 푸르디푸르게 제 몸 부러뜨리고
빼빼 마른 유수량에 백로의 모가지만 늘이는 하중도
캔버스 펴기 딱 좋은 유채꽃은 연신 태양의 흑점을 빨다가
부식된 철골 다리의 하중을 노릿노릿 점검한다
반짝, 장마에 실려와 터를 잡은 잡동사니 섬이 아니다
산을 지나 협곡을 휘돌아 풀꽃을 만나면 풀꽃과 놀다
짐승을 만나면 한바탕 짐승과 뒤엉켜보다
쫄쫄쫄 전립선 이상인 사행천의 이웃이다
수양버들 빙 둘러선 가슴 열어젖힌 근사한 젖꽃판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범람원은 말라빠진 젖줄을 물고 있다가
쌍무지개 뜨는 아파트 군락으로 몸 바꾼 아기아기 잘도 잘까
막장 같은 화물기차가 감입곡류의 한나절을 끌고 간다
수십 량의 하중과 하중을 이합하고 비중을 집산하며
누군가의 옆구리를 찌르거나 따뜻하게 뎁힐 철커덕 소리 범람한다
저기, 열대 이동성 저기압 몰려와 떨어져나간 우각호 물길
밤이면 불그죽죽 십자가 불빛 핥으며 떠나간다
가장 황홀한 순간도 남행열차 따라 흘러간다
길게 혹은 짧게 칸칸마다 불량하게 파랑치다가
숨어 사는 부랑아들에게 수유하는 천변만화의 유채화
몸 태워 애태워 아파트 대범람원의 주소지를 끌고
바다로 가는 길을 물고 떠가는 외로운 섬이다
누구나에게 부실한 사랑의 하중도
급기야는 봄마중 쪽으로 유로 변경하고 있다
끈끈이주걱 거울
뚝배기 찌개 냄새에 빠져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울분을 달게 삼키다
당신의 염통을 꺼내 내 양심으로 바꿔지는 뉴하트 티비 화면을 보다
몸 구멍마다 저장된 굴신의 노래 부르며 싹싹 비손이 연습을 하다
당신의 페르몬향과 에프킬라향 사이 색색의 수납장을 열어보다
연체통보도 없이 카드 끊겨 신용이 초고속으로 바닥 친 신문을 보다
무조건 복종하는 파블로프 개와 쓰레기 봉투을 핥으며 눈을 맞추다
위산과다의 길쭉한 목구멍 속으로 쏙 빠진 파리! 한 얼굴
거울 속으로 커튼을 칭칭 감고 피어오르는 능소화가 보여 가리가리 태양을 파먹다 그늘을 키우지 못한 꽃이야 투명한 그늘을 찾아든 당신의 눈을 찌르고 있어 바닥에 떨어지지도 못하는 눈엣가시야 붉게 들뜬 얼굴을 하나씩 뱉어내고 있어 허공을 움켜 쥔 가시는 넌출넌출 부재자 신고를 보내고 있어 시간의 뼈마디들이 이리저리 덜그럭거리다 그만 녹고 있어 산성은 역시 신성보다 강해 역광으로 벗어둔 당신이 얼비쳤어 구리구리한 냄새에 취해 비리비릿한 맛에 빠졌어 그러다 흠흠, 신명으로 앉아 흠향에 빠졌다! 걸어오던 길을 흡람하다 제 얼굴을 마저 파먹는,
김지순∙전북 익산 출생. 2007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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