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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표류기漂流記 외 1편/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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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숙
표류기漂流記 외 1편
역전길 교차로에 나침반이 나뒹굴고 있다
발길에 채인 듯 헐거워진 바늘 제멋대로 놀고 있다
한때는 북극을 정확히 가리켜
화두처럼 들이밀던 방향키,
이제는 헛꿈만 접었다 펴는 몽상가가 되었다
자오선보다 내 꿈이 좌표가 되던 시절
빛나는 속도에 닿기 위해 내달렸다
그러나 과녁에 닿기 전 추락한 화살
어디에도 나를 팽팽히 당겼던 기억은 없다
최신형 3D 내비게이션이 길을 잃었다
화들짝, 커진 동공
더듬거리다 겨우 멈춘 커브,
급커브 돌고 보니 저수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곳
어딜까?
지도에서 사라진 몽유夢遊의 길
나침반 바늘이 극점을 잃었다
또 한 번의 표류, 언제 어디서
뚝! 끊어버릴 지 모르는 개구리 울음이
나를 길들이고 있다.
장마
우산을 건네받았다
그가 접힌 채 박쥐처럼 따라 온다
나를 감싸주던 온기는 식었다
손잡이에 머물렀던 곰팡내 나는 시간들,
나는 이 우산대에서 꽃이 필 것을 믿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진다
비는 비를 물고, 그는 나를 물고, 나는 그를 물고
우산을 활짝 폈다
부러진 우산살 끝을 물고 있는 빗방울
그의 얼굴이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렸다가 떨어진다
내 손만 남았다.
윤영숙∙2007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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