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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그 때 그 사람 외 1편/추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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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욱
그 때 그 사람 외 1편
노점상을 하면서 주인의 삶은 불법의 연속이었는데요 주차 단속반과의 오랜 로맨스가 늘 악연이 된 게 트라우마의 시작이 되었죠 노점상으로 자리 잡아가던 날, 그는 동네 불량배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자주 입원을 했으나 비가 오면 욱신거리는 몸을 두드리며 말이 없던 그 사람, 주인의 과일에 녹아났던 그 때 그 사람들을 잊지 못하는 내유외강의 남자였지요 궁정동에서 부지런하기로 꽤 유명했던 주인은 박정희와 동명이인이어서 박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가졌는데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아 잘살아보자며 몸을 날렸지만 한 계절 내내 팔리지 않는 과일상자에 주눅 든 주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과일로 펼쳐지는 그의 삶은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탐스러운 열매로 익어가는 주인의 참 매력에 언젠가 그 때 그 사람들이 모여올
농약공장의 사내들
농약공장의 사내들이
마시고 죽어버린 농약병처럼
오랜 타향살이에 질식되어가는 그들은
날마다 몸살을 앓는다
휴게실 밖에는 농약가루가 날리고
떨어지는 농약에 맛들인 유리창 틈 사이로
가래 낀 기계소리가 들려온다
깊고 푸른 밤,
밤하늘의 높이에 별자리들은
중독이 되지 않아 반짝이고 있다
몽골이 고향인 한 사내가
솔기가 다 닳아 후줄근해진 바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내 뿜은 담배연기 속에서
후른베이럴 초원이 펼쳐지고
푸른 언덕에 얹혀 굴러 내리는
재미난 바람 따라다니며
흰머리독수리 한 마리가
그 위를 날아올랐다 흩어진다
잠깐의 휴식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그 사내
작업장 불빛 아래서
기준치 넘어선 농약의 농도를 터주면
달려드는 강한 중독성을
가슴으로 막아내다가
살아온 날들을 더듬은 진단명은 만성향수병이었다
추종욱∙2007년 ≪서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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