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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 달의 연대기 외 1편/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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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요
달의 연대기 외 1편
여름별자리 가지런히 뿌려놓고
사운거리기 좋은 저녁나절
두 여자 멀찍이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되짚어 오는 발자국에 귀 세운 달개비
뒤란 수북이 우거집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풀 먹인 천의 양쪽 귀를
잡아당기며 아슬한 조율중입니다
한 쪽이 당겨지면 달 위로 구름이 스르르
또 한 쪽이 무너지면 대숲에서 일어난 바람 한 무더기
하늘로 몰아갑니다
숨을 고르고 양 볼에 가득담은 물을 뿜어냅니다
두 여자의 손아귀에서 저녁하늘이
활시위처럼 팽팽해 졌습니다
어금니에 힘주고 앉아있던 고택의 나무기둥이
둥실 떠오릅니다
두 여자의 치마 속까지 다 환해지던 보름달
그 저녁, 만삭의 시간을 찾아갑니다
달을 보듬고 어머니의 양수 안을 헤엄칩니다
결핍을 모르는 배냇짓을 합니다
양수에 헹구어 낸 명징한 슬픔 한 필 밤새
다듬이질 합니다
고샅길과 감나무의 굽은 등, 물이 불어난 개울까지 토닥토닥
꺼져가는 달의 깊은 주름이
다 펴집니다
산벚나무를 읽다
길도 지워진 산등성이에
산벚꽃나무 혼자 발등만 보고 있습니다
하릴없는 바람이 그의 몸을 읽습니다
서너 장 한꺼번에 넘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목조목 옆구리를 들여다봅니다
세상과 한 마장쯤 떨어져 있는 그의 문장은
불러서 돌아보면 소리의 근원이 묻혀버리는,
잊었는가 하면 귓바퀴에 걸린 이명처럼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꽃의 시절을 지난 산벚나무
맹목의 푸른 잎만 무성합니다
늦봄 언저리에 가시처럼 박힌 나무
바람의 혀가 핥고 있습니다
남은 한 획의 고요
귀가 먹먹합니다
김지요∙2008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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