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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단편/바람의 집/유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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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유애숙
마을 끝자락에 돌아앉은 푸른 슬레이트집은, 앞에 개울이 흐르고 널찍한 텃밭까지 딸려 있어서 훈자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막상 짐을 풀고 보니 집이 너무 낡고 찻길에서도 멀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집 떠난 지 7년 동안 가뭇없던 남편이 귀신처럼 나타나 제삿밥 같은 밥상을 게걸스레 비우고 나서 누르무레한 봉투를 내밀었을 때만 해도, 훈자는 그저 본숭만숭했다. 그의 귀가를 재촉하는 부적까지 품고 기다렸다고는 하나, 비렁뱅이가 따로 없는 행색에 다리까지 절룩이는 꼴이 행여나 했던 일말의 기대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내민 것이 훈자의 이름으로 된 집문서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얼떨떨하면서도 코끝이 맵싸했다. 이순을 한 해 앞둔 그 나이까지 반지하 단칸방 신세를 못 면했던 훈자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이든 사람이든, 다 연분 치다꺼리지.’
이사한 다음날 내린 많지 않은 비에 물이 듣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훈자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
개울물소리가 바로 배게 밑에서 들리는 것 같아서 잠이 점점 멀어진다. 푸새들이 휘파람부는 소리가 귀에 환하다. 나이 들면 귀가 어두워진다는데 훈자의 경우는 오히려 더 또렷하다. 츱츱츱츱……. 바람이 심통을 부리는지 뒷산 나무들이 투덜거린다. 건너 마을 어디에서 우! 하고 개가 길게 한숨을 토한다. 개도 밤이 지루한 모양이다.
훈자는 늘 외톨이였다. 가난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혼자 겉돌았다. 그렇다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도 없었다. 옛글에도 일렀거니와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시장거리에 살아도 아는 사람이 없고, 넉넉하게 살면 산중에 살아도 먼 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반년 전, 이곳 ‘명수리’에 자리 잡은 뒤로 훈자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땅의 살가운 속내를 알아챈 훈자가 먼저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정이란 얼마나 신기한지 돌덩이 같던 훈자의 마음은 얼마 사이에 풋콩처럼 무르고 부드러워졌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와도 들어맞았는데, 부드러운 땅이 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흙을 만지면서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잠결에 무어라 고함을 지른다. 그의 꿈자리도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 사나운 모양이다. 그녀의 마음도 덩달아 심란해진다. 얼김에 남편을 따라 ‘명수리’에 내려오긴 했으나, 그 동안의 소행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민다. 그 체기 같은 응어리를 풀어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 여태 남편과 각방거처를 하는 것도, 말이 번번이 곱게 나오지 않는 것도 다 그런 옭매듭 때문이다.
괘종시계가 열두 점을 친다. 시계는 남편의 일터였던 플라스틱 공장 사무실에 걸려있던 것으로, 회사가 문을 닫자 밀린 품삯 대신 집어온 것이다. 훈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월급이란 걸 손에 쥐어보던 시절이었다. 정말이지 오늘 밤은 삼십여 년 전의 일이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환하다.
훈자의 기억은 언제나 스무 살 언저리에서 시작된다. 그 시절의 어느 어름에다 애틋한 추억이라도 묻어둔 사람처럼 늘 그 때를 되새김질하곤 한다. 그러나 애틋해서 만이 되새김질하는 건 아니다. 어떤 좌절감이나 쓰라림에도 기억을 악물게 되는 법이다.
그 무렵 훈자는 삶의 버팀목이던 아버지가 별안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후실이던 어머니는 망연자실했고, 이복오빠는 그런 계모를 떼어버리기 위한 구실로 훈자의 혼인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아버지 그늘이 이만큼이라도 남아있을 때 훈자 시집부터 보내요. 배운 게 많은 것도, 인물이 특출한 것도 아닌데 나이 덕이라도 봐야죠.”
일가 푸네기들도 서로 입을 맞춘 듯이 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아들이 거들 때 얼른 짝을 맞춰요. 훈자 성격에 층층시하의 시집살이는 열흘도 못 배길 거고, 일단 단출한 곳으로 보내요. 사위도 자식인데 홀장모를 나 몰라라 하진 않겠죠. 사람은 기댈 의지처가 있어야 해요.”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거스를 만한 배짱도 없었고, 의지처라는 말에 쏠리는 심약한 마음 또한 뿌리치기 어려웠다.
신랑감의 우선 조건이 혈혈단신이어야 한다는 것에 훈자는 당황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늦둥이로 태어나 방안퉁수였던 훈자는 그 모든 상황을 물리칠 힘도 용기도 없었다.
이복오빠가 내세운 신랑감은 사고무친에다 훈자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직업 군인으로, 계급이 상사였다. 선을 보고 온 어머니는 여느 때보다 힘차게 버선을 벗어젖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헌칠민틋한 인물도 인물이지만 한마디로 총명하고 길한 인상이라는 것이다. 숱이 많은 눈썹에 쌍꺼풀이 가늘게 진 눈은 광채가 예사롭지 않으며, 말이 없는 대신 웃음은 넉넉해서 듬쑥하면서도 푸근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먼발치에서 몰래 지켜보던 어머니 앞에서 손잡이에 의지하지도 않고 단숨에 몸을 날려 지프에 올라타는 모습을 본 순간, 무릎을 힘차게 쳤다고 했다. 살아 있는 행동을 만났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근동이 다 알도록 학식에 덕망까지 갖춘 사람이었으나 늘 결단해야 할 시기를 놓치던 무기력한 사상가였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할 재산 문제나, 모녀의 장래나 무엇 하나 매듭지어놓은 게 없었다. 어머니는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넝마보다 나을 게 없다고 주장했다.
지프에 올라타는 탄력 있는 몸짓 하나에 딸의 인생을 걸다니, 훈자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이없는 대목으로, 비극이 희극처럼 시작되던 부분이었다. 더욱 친정어머니를 지참금으로 받아 시작한 훈자의 결혼생활은 시초부터 먹장구름에 덮여 있었다.
*
아침상을 받은 남편이 훈자를 멀거니 바라보며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앞산이 자꾸 곰작곰작 다가오는 것 같어.”
“산이 뭔 볼일로? 노망났남?”
훈자는 댓바람에 톡 쏘아주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명수리에 와서 얼마간은 산의 나무들이 만장挽章 같다고 해서 머리칼을 곤두서게 하더니, 이제 산이 제 발로 걸어온다니, 그러잖아도 훈자는 밤마다 그가 내지르는 험악한 비명만으로도 한껏 노그라져 있었다. 그간에 겪은 이력을 대놓고 광고하는 건지, 아니면 무엇에 쫓기는 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훈자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앞산을 지그시 건너다본다. 짙푸른 빛으로 메숲진 산은 바위보다 더 단단하게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 오늘 따라 바람 한 점 없는 것이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다.
“왜 점잖게 있는 산을 가지고 자꾸 가리산지리산하는 거여. 멀미나게 시리.”
남편은 훈자의 타박에 아무 대꾸 없이 묵묵히 입에 물김치만 떠 넣는다. 핏줄이 구불구불하니 불거진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훈자는 입맛이 천리나 달아나서 수저를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아직도 마음이 된바람 속을 헤매는가. 아니면 주검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꼭두각시 춤이라도 춘단 말인가.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제 굴을 찾아든다는데 망령들 나이에 제정신이 든 게 어쩐지 꺼림칙하다. 고작 송장을 떠넘기려고 기신기신 기어든 거라면 더욱 용납할 수가 없다. 훈자는 조금 풀렸던 마음이 다시 오그라든다. 그를 먼저 묻어주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다. 어느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고 하나뿐인 아들과도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그를 늘그막에 혼자 팽개치고 가는 것만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반분의 앙갚음이라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밥상을 물린 그가 라디오를 켠다. ‘명수리’에서 그가 마음 붙이는 유일한 대상은 라디오다. 그는 텔레비전 속의 형형색색으로 펼쳐지는 세상에도, 마을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누가 죽어 상여가 나가도, 동네가 들썩거리게 혼인잔치가 벌어져도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처음에 훈자는 그의 그런 모습에 은근히 안도했다. 떠돌아다니기를 그친 징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일 라디오를 조그맣게 틀어놓고 그 주위만 맴도는 것이, 영락없이 바깥 사정을 염탐하는 모습이었다. 더구나 아무리 캐물어도 집을 산 모갯돈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영 께름했다. 며칠 전에는 검은 외지 차량 하나가 마을을 훑듯이 살피며 지나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흉측한 생각이 지나갔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인근 마을에 살던 한 남자의 실종 소식을 내보낸다. 실종 당일 소를 팔러나간 남자는 저녁 7시 경에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모습을 이웃 노인이 본 게 마지막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말없이 사라져버렸을 때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훈자는 삼십팔 년 전의 기억을 엊그제 일인 양 또렷이 떠올리고 한숨을 내쉰다. 남편은 자신의 소행 따윈 까맣게 잊은 채 태무심한 얼굴로 라디오에 귀를 맡기고 있다.
초야를 치른 신랑이 어둑새벽에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하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가뜩이나 신랑의 구덥지 않은 태도에 맥 풀려 있던 훈자는 눈앞이 캄캄했다. 속 닳은 어머니가 일주일을 수소문한 끝에 강원도 어딘가 동료의 하숙집에서 태연히 뒹굴고 있던 그를 데려왔다. 그새 까맣게 오그라든 훈자의 얼굴에 비해 그는 더 피둥피둥하니 살이 오르고 혈색도 좋았다.
“여보게, 이제 식솔이 생겼으니 앞으로는 만사에 책임이 따라야 하네.”
어머니의 훈계는 막내아들을 구슬리듯 조곤조곤한 음성이었지만 그에게는 맹자단청이었다. 이 책임이야말로 그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실부모하고 친조모의 손에서 자랐다. 조모는 가엾은 손자를 엄히 가르치기보다 망아지처럼 놓아먹였다. 하다못해 밭에서 기르는 푸성귀도 솎아주고 모종해줘야 할 시기가 있건만, 그는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란 잡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잡풀다운 근성이나 강인함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르고 게으른 얼뜨기였다. 조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마지막 남은 혈육인 먼 친척뻘 되는 고모가 떠돌뱅이 조카를 몽달귀신이라도 면해보려고 재빨리 형식을 갖춰 신방에다 밀어 넣었던 것이다. 나중에 털어놓은 그의 말은 더 기막혔다.
“조신하나 어딘가 젠체하는 새색시며, 덤으로 받은 것이 확실한 장모 또한 보통내기론 안 보였어. 앞일을 생각하니 오금이 딱 굳더라고. 그래서 일단 몸을 피하고 봤던 거지.”
그는 단 하루 만에 책임이라는 문제에서 기겁을 하고 몸을 빼내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을 뿐 그의 인생 전체가 그런 무책임과 줄행랑의 연속이었다.
*
남편의 잠꼬대는 갈수록 심해진다. 훈자는 간밤에도 거의 새다시피 했다. 비명과 몸부림, 겁에 질려 내지르는 소리는 옆방에서 들어도 정말 끔찍했다. 그건 잠꼬대가 아니라 숫제 저승사자와의 한 판 실랑이 같았다. 잠은 또 얼마나 깊던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제정신이 얼른 돌아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눈을 뜬 그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벌떡 일어나 앉더니 오른쪽 발을 급히 더듬었다. 가운데 발가락 세 개가 몽땅 잘려나간 그의 발은 몽당비처럼 흉물스러웠다. 어쩌다 사고를 당했느냐고 물어도 꿀 먹은 벙어리마냥 묵묵부답이었다.
“옆에 좀 있어.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어.”
잠이 덜 깬 채 겁에 질린 그가 안방으로 건너가려는 훈자에게 엄부럭을 떨었다.
“뭔 소리가 난다는 거여?”
훈자는 대번에 쥐어박는 소리를 하며 눈을 사납게 빗떴다. 무슨 소리가 나도 그렇지. 언제 그렇게 꽃방석에 앉혀주었더라고 잠자리 보초까지 서라는 건가. 불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이 핼쑥했다. 훈자는 화가 치밀면서도 가슴이 서늘했다.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모양이었다. 북침단면北寢斷眠이란 말이 있듯이 혹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서 그런가. 예로부터 북쪽은 망자들의 방향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북쪽에 머리를 두고 묻혔다. 훈자는 잠자리 방위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없이 사는 형편에 성가신 일이라도 생길까봐 미리 조심해서였다. 부엌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소위 ‘열 받는 일’이 생긴다거나, 화장실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부부의 정이 식는다거나 하는 말 따위를 굳게 믿었다. 식을 정도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재앙은 조심하는 집 문에는 절대 들지 못한다고 했다. 훈자는 그의 베개를 손방巽方 방향에 끌어다 놓고 옆에서 앉은 채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밥을 몇 술 뜨고 훈자는 텃밭으로 나왔다. 햇빛이 삶아 넌 무명 이불잇처럼 하얬다. 그녀는 들판을 휘휘 둘러보았다. 뺨을 스치는 건들바람이 제법 서느렇다. 자연의 이치란 참으로 오묘하다. 갈바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더니, 건들바람이 불기가 무섭게 작물은 결실에 들어갔다. 만사는 그처럼 다 시와 때가 있는 것을, 들판에 널린 작물만도 못한 철딱서니 없는 남편을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늘은 김장배추도 솎아줘야 하고, 김도 매야 하고, 끝물 고추도 따야 한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밭농사는 그런대로 가용은 충실히 해냈다. 고추는 특별히 퇴비와 배수에 신경을 썼더니 병충해 없이 튼실하게 자라 주었다. 도열이라도 하듯 밭이랑에 매고르게 서 있는 고춧대를 본 이웃들은 하나 같이 입을 댔다.
“아이고, 떡잎 하나 없이 매끈한 게 꼭 화초 같어.”
가을로 접어든 날씨는 한낮을 빼고는 제법 살랑했다. 훈자는 고추밭의 마지막 작물을 거두고 배추 고랑으로 옮겨 앉았다. 훈자가 이곳 ‘명수리’에 내려오기 전까지 일했던 한 용역회사의 팀장은 아침마다 일터로 떠나는 도우미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했다.
“옛말에 몸이 되면 입도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체노동은 정신적 고민을 해방시키며 가난한 살림을 기름지고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품삯이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말은 어느 정도 옳았다. 그녀에게 있어 육체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자신을 끌고 가는 수레바퀴였다. 잠시 숨을 돌리는 자투리 시간조차 결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건, 정신이란 요물이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에 간계를 부릴 때가 더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더욱 육체노동이란 나름의 운율이 있어 거기에 몸을 맡기다보면 어떤 신명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명수리’에 자리 잡고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이래 훈자의 생각은 달라졌다. 일도 일 나름으로 끝까지 앙버티는 잡초들에 학질을 뗀 탓이었다. 그것은 일이라기보다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이었다. 전 주인이 말끔히 갈아엎은 밭에서 파와 부추가 태연히 돋아나는가 하면, 종일 허리가 휘도록 뽑아낸 풀이 돌아서면 다시 그 자리에 거짓말처럼 수북이 자라났다. 목숨이란 이토록 검질긴 것인가.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엄습했다.
사람에 대한 원망怨望도 꼭 잡초와 같았다. 남편의 지난 허물을 덮어두자고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도슬러 잡아도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덮으면 덮을수록 잡초처럼 더욱 악착스레 밀고 올라왔다. 훈자는 김을 매면서 노상 잡풀 같은 기억에 휘달렸다. 그녀는 밭둑에 털버덕 주저앉아 된 숨을 토해낸다.
재는 넘을수록 험하고 내는 건널수록 깊다더니 훈자의 삶은 갈수록 고되었다. 잦은 근무지 이탈과 미귀未歸 사건으로 불명예 제대한 남편의 생활 능력은 형편없었다. 특별히 배운 게 있는 것도 기술마저 없던 그에게 좋은 일자리가 얻어걸릴 리 만무했고,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마저 얼마 배겨내지 못하고 뛰쳐나와 종적 없이 사라지곤 했다. 떡심이 풀리고 귓구멍이 막힐 노릇이었다. 남편은 말이 없는 대신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생각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어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그의 무심함은 정말 무적이어서 핏줄조차 대항이 불가능했다. 어머니와 훈자가 갈마들며 구슬려 보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애원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 어깃장을 놓으며 밖으로 돌았다. 애가 터져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의식 속에 비치는 모든 남자는 아버지가 기준이었다. 깊은 생각이 뒤따르지 않는 덜렁수캐 같은 그의 행동은 단연 인격파탄자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고생살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훈자의 결혼에 책임이라도 지듯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생활비를 벌어들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비가 오면 침수되어 아궁이에 고인 물을 밤새 퍼내야 하는 저지대나, 실처럼 가느다랗게 흐르는 수돗물을 받느라 교대로 밤잠을 자야 하는 고지대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훈자의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조팝나무꽃처럼 하얗게 피어났고, 심한 빈혈로 눈엔 때 없이 아지랑이가 아른거렸다.
그토록 총명하고 길해 보인다던 남편의 얼굴은 의미를 박탈당했다. 어머니는 멀리서 사위의 얼굴만 봐도 고개를 돌렸으며, 광채가 예사롭지 않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눈빛은 ‘일낼 눈빛’이라고 잘라 말했다. 무기력한 사상가에 진력났던 어머니는 그릇된 행동주의자인 사위에게 완전히 피멍이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모녀의 장래를 아퀴짓지 않고 떠난 아버지만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런 애옥살이 속에서 훈자의 유일한 위안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은 곱게 짠 한 필의 비단 같아서 아무리 펼쳐 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명지바람처럼 그녀의 마음을 곱다시 어루만져주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어머니를 향해 눈 한 번 똑바로 뜬 적이 없고 말막음 한 번이 없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큰소리를 내도 그저 나직한 음성으로 ‘자네 언성 좀 낮추어야겠네. 작은 소리로 해도 충분히 알아듣네.’ 했을 뿐이었다. 훈자를 무릎에 앉히고 명심보감을 가르쳐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삶이 고달플수록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해져 갔어도 가르침은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러나 남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인을 드러내놓고 싫어했다.
‘옛날의 우리 아버지는…….’ 어쩌다 훈자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남편은 인상부터 틀려졌다. 조실부모해서 기억조차 없는 자신의 아버지에 비해, 죽은 뒤에까지 칭송을 받는 장인이 뇌꼴스러웠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훈자의 사부곡이 단순히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에 가서, ‘아이고 아버지, 당신이 어떻게 키운 딸인데 나를 요 모양 요 꼴로 …….’ 하며 눈물의 상소문을 올림으로써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인지 몰랐다. 그는 결국 골딱지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다. 장모의 잔소리만도 넌덜머리가 난 판국에, 이미 오래 전에 백골이 진토 된 장인마저 걸핏하면 되살아나 그를 잡도리하는 것에 심사가 틀어졌을 것이다. 어머니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대놓고 사위의 염장을 질렀다.
“만약 자네 장인이 살아 있었다면 언감생심 내 딸을 잠시 잠깐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 안 했을 것이네. 복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온 줄이나 알게.”
그럴 때 남편은 넝쿨에 목이라도 친친 감긴 사람처럼 얼굴이 검붉게 일그러졌다.
한평생 살아 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이 열 권이라도 모자란다던 어머니는 10년 전에 흙으로 돌아가 잠잠히 누워있다. 책으로 옮기지 못한 그 숱한 사연과 자초지종이 한스러운지 무덤 주위엔 해마다 하얀 망초꽃 무리만 눈물처럼 피어났다.
*
마른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힘없이 땅에 떨어진다. 훈자의 몸도 물기가 잦아들며 살가죽이 조이고 허연 살비듬이 일어난다. 문틈을 비집고 드는 소슬바람이 제법 차끈하다. 화초도 손질하고 채소 갈무리도 해야 한다. 머잖아 김장배추도 묶어줘야 한다.
남편은 어느새 대문간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있다. 얼마 전부터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버릇이 생겼는데, 해질 무렵이면 무엇에 홀린 듯 대문간에 나가 죽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한두 번은 갑갑해서 그러려니 했다. 왜바람처럼 쏘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궁벽한 촌에 갇혀 지내자니 오죽 갑갑할 것인가. 그러나 그 버릇은 날이 갈수록 더하는가 싶더니 아예 일상으로 굳어버렸다.
“청승스럽게 왜 만날 그러고 있어?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남?”
훈자가 아무리 성화를 대도 그는 일체 대꾸가 없다. 젊어 한때는 닦은 방울 같이 초롱초롱하던 눈도 이젠 먼지 낀 대합실 창문처럼 희부옇다.
“도대체 넋을 어디다 빼내버리고 온 거여?”
훈자가 아무리 달구쳐도 가는귀먹은 시늉만 한다. 훈자는 에멜무지로 남편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눈길을 따라가 본다. 개울을 건너, 큰길을 지나, 굽어진 찻길을 휘돌아서 어딘가 더 먼 곳에 눈길이 가 있다. 그게 어디인지, 지나간 시점인지, 현재인지,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는 건지, 도시 알 길이 없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옛글이 하나도 그르지 않았다.
지지난해 겨울, 훈자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아들을 결혼시킨 뒤로 부쩍 울적해진 그녀는 툭하면 눈물이 터지곤 했다. 생사조차 모르고 지낸 지가 어언 5년이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그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아들은 가출해서 3년 이상 생사가 분명치 않으면 이혼 사유가 된다며, 훈자가 모든 걸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찾기를 바랐다. 아들의 말처럼 새 삶을 꿈꾸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팔자를 고쳤어도 열댓 번은 더 고쳤을 세월에 훈자가 여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건,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늘 분수와 도리를 지키고, 인간 본연의 양심을 간직할 때만이 하늘의 도움이 따른다고 했다.
만약 객사했다면 젯밥이라도 떠 놓아야 했다. 자식이 번연히 살아있는 한 비렁뱅이 혼백으로 구천을 떠돌게 하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었다.
점쟁이는 점괘를 뽑아 보더니 대뜸 입천장이 뚫어지게 혀를 찼다.
“풍신에다 미명귀라, 아주 쌍으로 얼크러졌구먼.”
훈자가 깜짝 놀라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집채만 한 돌개바람 속에 비수 같은 한을 품고 죽은 젊은 여자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훈자는 모골이 송연했다. 아버지가 폐병에 걸린 전처를 버리고 어머니와 재혼한 내막은 그녀가 결혼할 무렵에야 알았다. 전처의 발병보다 어머니와의 정분이 먼저였던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았고, 전처는 훈자가 태어나던 해에 요양소에서 죽었다고 했다. 원사冤死한 전처가 너끈히 앙심을 품을 만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이복 오빠와 그 일가붙이들이 훈자 모녀에게 보인 태도는 그 모든 것의 현실적인 보응이라 할 수 있었다.
“운명이란 인因으로 인해 연緣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야.”
점쟁이는 남편이 평생 저리 칠락팔락하는 건 다 그런 연유라며, 방책을 쓰지 않으면 검불처럼 떠돌다 몇 달 안 가서 객사한다고 겁을 주었다. 훈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점쟁이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귀가심부’와 ‘악귀 퇴지부’라는 두 개의 부적을 써주며 몸에서 한 시도 떼어놓지 말기를 권했다. 그리고 딱 열한 달 만에 남편이 돌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그를 보자 점차 마음이 놓였다. 신령한 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잠재우기 힘든 풍병을 타이어의 공기 빠지듯 주저앉힌 걸 보면 전적으로 부적의 효력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막일로 몸을 굴렸다는 남편이 그의 고향에다 훈자의 이름으로 된 집을 장만한 일은 뜻밖이었다. 어쨌든 바람과 땅은 서로 상극관계라고 하니 집을 산 건 그런 기운을 불러오는 뜻에서도 다행한 노릇이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 훈자는 맨 먼저 지붕을 손보고 담장의 바람구멍을 시멘트로 일일이 틀어막았다. 점쟁이는 우선 집안에 떠도는 바람부터 다잡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훈자의 집은 이제 누가 통째로 떠메 가면 모를까 세상없는 바람이 들이닥쳐도 끄떡없었다. 그런 비방 탓인지 그는 집에서 놓아먹이는 가금처럼 좀체 마당을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남편이 떠돌아다니는 동안 아들은 뒤늦게 짝을 찾아 가정을 이뤘다. 아들은 집에 전화해도 아버지를 바꿔달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전화를 받으면 마지못해 한두 마디 한 뒤 곧바로 훈자를 찾았다. 어쩌다 얼굴을 봐도 꼭 의붓아버지 대하듯 서먹서먹하니 굴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얼마 전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 아비에게 데었는지, 아니면 피의 내림인지 그저 자식에 관심이 없다는 한마디로 뭉뚱그렸다. 아들의 불경스러운 언사에도 남편은 멋쩍게 웃고 말 뿐이었다. 하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주위가 컴컴해지자 대문간에서 마루로 옮겨온 남편은 서랍장에서 사진첩을 꺼냈다. 마치 오랜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요즘은 날마다 가족사진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가족사진이라 해서 따로 사진관에 가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공장의 야유회에 따라가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불빛 아래 드러난 사진 속의 얼굴들은 하나 같이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난히 곱슬곱슬한 훈자의 파마머리는 봉분처럼 높이 솟아 있고, 그 위로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사정없이 쏟아져, 그녀는 눈을 가느다랗게 접고 고통스레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그녀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예고편 같다. 남편은 실팍한 어깨의 각을 잡고 숱진 머리를 빳빳이 든 채 살피듯 먼 곳을 보고 있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아들은 불안한 얼굴로 훈자의 손을 꽉 잡고 있다.
남편의 눈길이 실물을 대조하듯 훈자에게로 슬며시 옮겨온다. 그의 눈빛이 흰 서리가 담뿍 내린 훈자의 머리께에서 잠시 흔들린다. 훈자도 시틋한 눈길로 그를 마중한다. 숱이 한줌뿐인 머리에 날갯죽지가 꺾인 듯 어깨는 축 쳐지고 등도 휘움하니 굽었다. 사진 속의 남편은 간 곳이 없다. 엽서에 찍힌 소인처럼 흐릿한 자취만 남았을 뿐이다.
*
지난 여름 장마에 다리가 떠내려간 앞개울이 꼭 이 빠진 할망구 주둥이 같다. 이제 읍내로 나가려면 구불구불한 마을의 가운뎃길을 지나 한 마장은 좋이 걸어가야 한다. 집집의 노인네들은 구부정한 허리로 텃밭에서 가을걷이를 하다 말고 반갑게 인사한다.
“팔자 좋은 양반네, 장에 가십니까?”
훈자는 예, 예, 하면서 우물쭈물 지나친다. 논 한 마지기 없이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그녀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부러워서 하는 말이지만 훈자에겐 그 소리가 좋게 들리지 않는다. 도시영세민이라는 말이 있듯, 시골에서 땅 한 뼘 가지지 못한 사람도 시골 영세민이지 별수 있겠는가.
오토바이가 보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읍내 방향으로 쌩하니 달려간다. 사내의 등에 납작하게 매달려 가는 물건은 정미소집 막내딸이다. 옥수수수염처럼 노란 머리털에 뽀얗게 분칠을 한 얼굴이 영락없이 작부 꼬락서니다. 시골의 풍속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사사스러워졌다. 고부갈등이나 이혼이 도회지 사람 뺨치게 허다하고, 전답깨나 있는 영감은 혼자되면 으레 젊은 여자와 재혼한다. 자식과의 갈등 또한 텔레비전의 연속극 못지않게 적나라하다. 남편과 초등학교 동창인 정미소집 최 씨는 자식들의 드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에 마흔아홉 살짜리 노처녀를 후실로 맞아들였다. 아무리 인생이 예순부터라는 말도 있으나 훈자가 보기엔 민망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최 씨의 후처가 곱게 단장하고 양지 마당에 씨암탉걸음으로 길에 나서면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힐끗거린다. 나름대로 고운 자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 나이에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하는 호기심에서다. 최 씨의 입성은 눈에 띄게 말끔해졌는데도 풍신이 더 왜소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나이가 기운 후처 때문이지 싶다. 요즘은 젊은 사람 흉내를 내느라 그런지 둘이 손을 잡고 들판이나 산등성이로 무시로 산보를 다닌다. 그럴 때면 뒷산 중턱에 아직 떼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최 씨 마누라의 봉분이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훈자는 버스에서 내려 시장 안의 메리야스 가게로 들어간다. 몸피가 줄어 한창 때보다 거의 두 치수나 작아진 남편의 속옷을 몇 벌 고른다. 생각난 김에 겨울 내의와 양말도 몇 개 집는다. 남편은 요즘 들어 부쩍 된서리 맞은 푸성귀마냥 숨죽어 지낸다. 불편한 발을 절룩이며 배수구를 손보거나 집안일을 거들기도 한다. 그동안 속치부한 원망거리를 들추어낼라치면 한도 끝도 없으나 생각하면 훈자에게도 잘못이 아주 없지는 않다. 남편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되잖은 우월감을 앞세워, 사사건건 그를 비난하기만 했다. 역마직성 들린 그를 이해하고 보듬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욱 훈자는 결혼에 대한 책임감마저 어머니와 나누어지느라 극복에 대한 의지마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훈자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 골목은 음식 냄새로 질펀하다. 훈자는 돼지고기 한 근과, 구기자술, 그리고 두어 종류의 과자를 산다. 남편은 가끔 입이 궁금해서인지 때가 아닌데도 부엌을 기웃거리고 긁어놓은 누룽지를 집어가면서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시장 골목을 벗어나는데 어디서 숨가쁜 사이렌소리가 들린다. 뭔 사고가 났나. 훈자는 괜히 불안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본다. 시골도 요즘은 몇 집 건너 한 대씩 자동차를 굴리는 판국이라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한적한 삶을 바라면서도 편리성은 포기하지 못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보인가 보다.
버스가 ‘명수리’에 도착하자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인적이 끊긴 마을길에는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이 가슴을 짓누른다. 훈자는 벌렁거리는 가슴으로 재게 마을을 가로지른다.
웬일로 대문간에 쪼그리고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훈자는 급한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선다. 댓돌에 의당 놓여있어야 할 신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갑자기 그녀의 가슴이 맞방망이질을 한다. 기척이 없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벌쭉이 열린 작은방 서랍장 앞에 양말 한 짝이 떨어져 있다. 훈자는 금방 사태를 짐작한다.
“아이고, 미친 영감탱이, 또 본 병 도졌네. 대문간에 나앉았을 때부터 알아봤어. 뒈져야 고칠 병이지. 소용없다니까.”
훈자는 악이 바쳐 속에서 치미는 대로 지껄이면서도 눈앞이 캄캄하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숨길만 가빠질 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는 데도 불 켤 생각도, 저녁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냥 마루에 퍼지고 앉아 있다.
“염병할 놈의 영감탱이, 다시 한 번 눈앞에 얼씬거리기만 해봐라. 이젠 부고장이 날아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모지락스럽게 튀어나오는 말과 달리 마음은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통에 더 애가 터진다. 어디에 들어 있다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뜨거운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르건만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훈자는 전화벨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뭔 전화를 그리 더디 받아. 대식이가 여기 읍내에서 교통사고를 냈다고 해서 택시 불러 타고 나왔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오토바이가 좀 망그러졌다네. 지금 들어가는 중이니까 저녁상이나 봐 놔.”
시르죽어 지낼 때는 언제고 귀청이 떨어져나가게 우렁우렁한 남편의 음성을 듣자 훈자는 얼떨떨한 중에도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부엌으로 내닫는다.
*
그날 밤 훈자는 안방에다 이부자리 두 채를 나란히 폈다. 아들에게 방을 하나 내줘야 하는 핑계거리도 생겼지만 뒤늦게 자신의 속마음을 깨달은 것이다. 남편은 훈자가 보아온 술상에서 구기자술을 몇 잔 들이켜더니 계면쩍은 얼굴로 느릿느릿 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 내 바람병이 환장할 노릇이었어. 한 번도 틀거지를 갖추고 살아본 적이 없던 사람에게 가정이란 족쇄였거든. 장모님의 잔소리는 갈수록 고깝게 들리는 데다 당신은 언제나 어머니가 우선이었고, 나는 점점 겉돌았지. 밖이 훨씬 편했어. 그러다 아주 집을 떠나게 된 거야.”
훈자는 구기자술 몇 잔에 고치실처럼 이야기를 줄줄이 뽑아내는 남편이 신기해서 그의 입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떠돌다 마지막엔 공동묘지에서 산역꾼 노릇을 했어. 눈만 뜨면 술 먹고 송장을 파묻는 게 일이었어. 몸도 아프고 한뎃잠에도 넌더리가 났지만 수중에 돈 한 푼 없고 그저 가슴만 답답했지. 묘지란 온갖 형태의 상례喪禮가 행해지는 곳이다 보니 산역꾼 노릇 2년에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얘기만으로 도사가 다 됐어. 죽으면 모든 속박을 훨훨 벗어던지고 새처럼 자유로워진다는 이도 있고, 반드시 살아온 대로 심판 받는다는 이도 있었어. 누가 죄목을 일일이 적어놓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같잖은 소리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소리엔 찔렸어. 떠돌아다니는 내 처지가 영판 그랬으니까.”
훈자는 평소에 입뜨던 남편의 거침없는 구변에 놀라고,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제 가슴의 박동에 놀랐다. 구기자술은 어느새 바닥나 있었다.
“어느 날 밤, 산역꾼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오던 트럭이 빙판길에서 뒤집혀 계곡으로 처박혔어.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셋은 즉사하고 나만 살았어. 누운 채로 밤하늘의 별을 쳐다봤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당신과 대식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만신창이로 떠돌다가 종내 이런 낯선 골짜기에서 처박혀 객사하겠구나. 인생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져야할 짐이 있다는데, 조약돌 피하려다 수마석을 만난 격이다. 오만가지 생각과 후회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 그렇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미 굳을 대로 굳은 행실을 바로잡기란 힘들다는 것도 알았지.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떤 결기가 솟구쳤어. 차라리 발모가지 하나 없는 병신으로 죄 값을 치르고 사람노릇이나 하다 가자고, 엉금엉금 기어가서 큰 돌멩이를 하나 집어다 발을 힘껏 내리찍었지. 이미 꽝꽝 언 발은 아무 감각도 없었어. 결국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지. 어쨌든 한동안 욕은 봤어도 그 보상금으로 내 묘 자리 하나는 건졌으니 됐어. 어차피 내가 묻힐 곳은 당신이니까 말야.”
훈자는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중동이 꽉 막혔다. 밤마다 험하게 내지르던 잠꼬대가 모두 그런 까닭이었나 싶어 갑자기 목이 잠기면서 자신의 발가락이 부러진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배움이란 아무리 때와 장소가 불문이고 스승이 따로 없다지만, 공동묘지가 그의 스승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훈자는 마침내 남편과 화해를 했다. 남편의 고질병을 고친 게 부적의 효험이 아니었듯, 평생 그녀의 마음을 주장해왔던 건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험한 세월 동안 이지러지긴 했어도 더욱 아귀차고 야물어진 남편에 대한 사랑이었다.
*
마을회관에서 이장의 알림 방송이 쩌렁쩌렁하게 흘러나온다. 간밤에 박 씨네에 도둑이 들어 암소 두 마리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다. 앞으로 집을 비울 때는 현금이나 귀중품을 일체 집에 두지 말 것과, 밤엔 축사 문에다 경운기나 트랙터로 장애물을 설치하라고 했다. 이장은 곧 자율방범대를 만들어 야간순찰을 돌겠다면서 수상한 외지 차는 반드시 차량 번호를 기억해 두었다 파출소에 신고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대식이가 다녀간 뒤로 해질녘이면 대문간에 나앉던 남편의 버릇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지난날 제가 저지른 깐이 있는지라 보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아들을 향한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그날 대식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제 아버지를 위해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자동차에 싣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한 방 거처를 하면서 남편의 잠꼬대는 많이 숙졌다. 그는 대식이 사다준 자전거를 타고 훈자 대신 장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는 땅에서 절룩거릴 때와 달리 일단 자전거에 올라앉으면 허리를 끌밋하게 펴고 어깨를 유연하게 구푸린 뒤 발을 재게 놀리며 쏜살같이 내닫는다. 엉덩이는 팽팽해지고 윗도리가 수수러지면서 몸에 힘이 붙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바람 뭉텅이가 자전거 바퀴를 한없이 팽창시키며 끌고 가는 것 같아 눈앞이 아찔해진다.
유애숙∙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작품집 '장미 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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