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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암자 안 외 1편/김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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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박
암자 안 외 1편
―작은 손․14
암자 안은 꽉 차 있다 옴짝달싹 못한다
조계산의 단풍들이 내려와 꽹과리를 치고
북을 두드리고 장구를 치고, 징을 친다
그 앞으로 울긋불긋한 군악대가 지나간다
날나리패같은 저녁노을이 유화로 내려앉아
빠져 나갈 길을 잃은 운수암
휠체어를 탄 너울머리 아이 하나
작은 호수 속에 갇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 붙잡혀 있고
그 옆에서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목발을 곁에 세워놓고 열심히 붓을 놀린다
그림 속에 붙잡힌 은행잎이
비구니의 목탁소리에 비슬비슬
야삼경을 잔디처럼 심는데
쇠서나물 꽃 위에 앉아있던 흰나비 한 마리
날개를 파닥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
물매화가 바람을 깨운다
―작은 손․15
넓은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늙은 중이
발을 뗄 줄을 모르고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눈물 두어 방울 아롱진,
길 잃은 노승의 얼굴에
붉은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피아골에 잡혀있다 국군의 총소리를 듣고
빨갱이들을 따라
지리산 반야봉을
헉헉거리며 기어오르던
노루목
이질에 걸린 여동생이
엄니 등에 업혀 총알에 맞아 흘리던 피가
바로 저 빛깔이었다고
노라기나무를 붙잡고 주저앉는다
하얀 물매화 두 송이
까까머리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이질풀꽃 사이에서
바람을 흔들어 깨운다
김영박∙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리산이 전서체로 일어서다,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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