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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자물쇠 외 1편/김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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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
자물쇠 외 1편
내 몸하고 꼭 맞아야지만
고요히 엎드려 입술을 열어 주던 때
부단히 기다려 온 하수상 시간들
출렁이며 흔들려 마침내 허락하던 때
붉게 각인하여 문신한 마지막
녹슨 사랑의 맹서를 구구절절 암송하며
한 닢 한 조각 남김없이 질 깊숙이
넣고 넣고 아득토록 점점 거세지던 때
철컹, 교성의 날을 세워
보채며 뒤채며 성감대를 조여 끝내
아파라, 꿈이여,
깜깜한 봄밤이 화라락 벚꽃 폭죽더미로
폭발하던 때
열 리 다
나의 하나님
네 시간 강의를 몰아 한 금요일 저녁
일용할 양식비 강사료 십만 원을 단단히 주머니에 넣고
대전 중앙시장 정류장에서 환승버스를 기다린다
수많은 배부른 사람들이 오고 가고
수많은 걱정 없는 사람들이 오고 갔을
대전역 쪽 비좁은 인도 귀퉁이
떨이해 줄 야심찬 손길을 기다리는
할머니, 굵은 파주름이 아니었다면,
나는 꿇어 앉아 남은 시금치 모두를 산다
버스들이 내뿜는 한숨 진 헤드라이트가 비친
은박 돗자리 위에 손톱깎기, 수세미, 이태리타올,
음각 지며 하나씩 알몸을 드러낼 때마다 저 노인
꾹 다문 돌입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꿇어 앉아 주섬주섬 쓸데없는
편지봉투 한 묶음까지 산다.
어림잡아 쓴 돈은 일만원
그렇다면 강의료 십만원을 벌어
십일조를 확실히 한 셈
미약한 내 노동의 대가로, 그러나
무릎 꿇어 신성하게 십일조 헌금을 바쳤다면
시금치 할머니와 잡화상 노인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김명원∙천안 출생. 1996년 ≪詩文學≫으로 등단. 시집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 달빛 손가락. 노천명문학상, 성균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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