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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가을 타고 싶어라 외 1편/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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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가을 타고 싶어라 외 1편
빈 벤치에 낙엽 두 잎이
열이레 기우는 달처럼 삐뚜룸 앉아
더는 다가앉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젖었다가 말라 가는 마지막 향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 타는 남자와 그렇게 앉아
달빛에 젖은 옷이 별빛에 마를 때까지
사랑이나 행복과는 가당찮고 아득한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 자연재해나 인류의 미래걱정을
까닭 모를 기쁨으로
진지하게 들어주며 대책 없이 만족하며
그것이 사랑의 고백이라고 믿어 의심 없이
그렇게 오묘하게 그렇게 감미롭게.
하얀 겨울 동화
무거워서 떨어지는 것이 이처럼 가볍다니
펑펑 소리도 없이 펑펑 쏟아진다
세상은 한마을로 작아지고 포근해져서
자빠져도 넘어져도 엎어지고 미끄러져도
함박 함박 꽃피느라 야단들 나서
경로당도 유치원이 된다
쭈굴 쭈굴 구겨져도 아이들이 된다
루돌프 사슴보다 코가 빨간 아이들
동네개들 덩달아 바빠진다
벙어리 장갑이 불티난다
숯덩이 털모자 털목도리가 동이 난다
아이들은 턱수염이 긴 어른도 낳는다
집집마다 객식구가 생긴다
공터에도 놀이터에도 새 주민이 멀뚱거린다
호빵가게 불빛은 따끈따끈 부풀어
호빵그림 속으로 골목길도 달려오고
지나간 성탄절도 뒤돌아 올 것 같다
산타도 올 것 같다.
유안진∙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첫시집 달하에서 최근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까지 13권의 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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