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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 외 1편/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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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 외 1편
기차가 내는 숨소리며 기적소리는
바깥세상으로 열린 거의 유일한 소리의 끈이었다
어딘가 먼 고장으로 통했고 끝내는
서울이란 곳에 우리를 우리도 모르게
실어다주곤 했다
그러나 오늘 그 기찻길 위에
기차가 다니지 않은 지 오래
벌겋게 녹슨 쇠줄 두 가닥만 땅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저 두 가닥 쇠줄은 삼엄하게
날선 목숨의 줄이었던가!
이젠 쉬거라 너도 좀 쉬거라
두 줄의 쇳덩이를 기차소리 사라진 쪽으로
멀리 멀리 놓아 보내주고 싶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찻길이 휘어져 돌아가는 모퉁이
안쪽 들판 위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조그만 텃밭에 김장배추도 기르고
작두샘물 가에 빨래가지도 널리고
추녀 밑에 새로 메주도 몇 덩이 쑤어
매단 것으로 보아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가 보았다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울컥 반가웠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소리에 들썩이곤 했을
기찻길 옆 오막살이
내가 어렸을 때 저 집에도 나만큼
어린 나이의 계집애 하나 살고 있었을까
뽀오옥 휘어진 기차소리에 나이 어린 계집애의
단발머리도 날리곤 했을까
지금은 기찻길조차 바뀌어 기차도
다니지 않는 장항선 종착역 부근
녹슨 기찻길 옆 그 오막살이.
나태주∙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대숲 아래서, 막동리 소묘, 풀잎 속 작은 길, 산촌 엽서, 눈부신 속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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