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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스프링 스프링 외 1편/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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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스프링 스프링 외 1편
참 잘 넘어간다
스프링 공책
실로 꿰맨 공책처럼
서로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는다
독립 연방의 체제
지름 일 센티미터 링을 중심축으로
낱장은 최대한 자유롭고 안전하다
홀로이면서 나란히 함께
스프링공책을 넘기며
관계의 역학을 생각한다
두 마리의 토끼에 대해
붙들린 과거와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단념에 대해
내가 관여할 수 없는 흐르는 시간의 몫에 대해
스프링공책을 넘긴다
매끄럽게
5쪽에서 7쪽으로
그 위에 당신이
비둘기를 날리든 흰 구름을 박든
묘비명을 새기든
두 마리의 토끼 두 마리의 토끼
마음을 정돈하려고
글을 옮겨 적고 있다
두 마리의 사자 두 마리의 기린
필사의 형식을 빌어
필사적으로
사회적 또는 개인적 수건
아침이다
보송보송한 섬유 올 사이로 코를 박으면
여기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감각의 제국
턱선으로 흐르는 이목구비가 숨어있고
섬섬옥수가 있고
삼겹 뱃살로 굳어지기 전
물방울을 타고 흐르던
s라인의 누드가 굽이친다
수건을 펼치면
사회적 학연과 지연이 있고
가족적 체취가 잔뜩 베여있다 피는 진하고
학연과 지연은 질겨 세탁기에 빠뜨려도
빠지지 않는다
빨랫줄에 흰 수건이 널려 있다
바람에게 내 줄 건 다 내 주면서
햇빛과의 당찬 야합
온몸이 빳빳한 미라가 될 때까지
사흘 만에 새롭게 부활하는
단합회 친목회 총동창회
짧고 길고 뭉툭하고 뾰족한 세상의 모든 인연들이
개업일과 기념일이
내 얼굴의 물기를 꼽꼽하게 닦아 준다
사회적 수건이
개인적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 준다
김영미∙1998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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