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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나무를 옮겨 심으며 외 1편/고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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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옮겨 심으며 외 1편
사과를 한 입 베어 먹다 놓은 것처럼
마주 보고 자라던 주목 한 그루
옆구리가 푹 패어 자라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 고만고만한 주목 두 그루
양지 바른 곳에 심으면서
너희 둘, 서로 의지하고 동무 삼아
심심치 않아 좋겠다 했던가
모진 시간 함께 견뎌왔지만
그래 그렇구나
다 자란 나무끼리 꼭 붙어산다는 건
상대방의 옆구리 한 쪽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세월이 만든 그늘에 서로를 가두고 마는 것
풀쩍 자라버린
시간 한 그루 옮겨 심으며
사람과의 거리를 생각한다
신발을 정리하면서
오래 신으라고 사준
아이들의 큼직한 운동화
신은 지 얼마 안 돼
앞코부터 해진다
일부러 돌부리를 골라가며 차고 다녔을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은
가는 길을 막아서는 돌부리조차도 재밌었겠지
이상도 하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신발은
뒤축부터 닳는 게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뒤꿈치에 더 힘을 주고
돌부리를 피하며 사는 방법을
신발이 먼저 터득하는 일인지 몰라
고창영∙2001년 ≪예술세계≫ 신인상. 북원문학상 수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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