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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얼음 바닥 외 1편/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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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얼음 바닥 외 1편
오년 째 천정만 보던 분이
일어나 앉아 생일상 드시고
가문들 일견하시고
가셨다
남은 몸을 펼 때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살얼음 걷는 일이구나 사는 일이,
그게 마지막 말이라 했다
바닥엔 아무 것도 없다
끝은 얼마나 빠르기에
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나
욕창의 이부자리 쪽이 벌써
바삭하게 말라있다
할인점 K씨
때는 2008년
장소는 대도시, 신도시, 중소도시 등
할인점들의 군웅할거 시대였다 포고문은 매주 목요일 재생지 전면 칼라인쇄로 일제 배포 되었다 혈투가 벌어지고 타 할인점과의 M & A라는 전사적 비보가 되풀이되었음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생존법에 대해 다들 수군거렸다 두 달 째 회사 앞 여관에서 잠을 잤다 핸드폰 고리에 매달린 아이가 웃는 소리, 당신이 개야? 하던 아내의 음성, 흔들어댈 꼬리마저 잘린 지 오래라는 고백은 하지 못했다 정복자들은 냉혈한이었고 K의 혓바닥이나 꼬리는 그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혀를 내밀어 진열대의 먼지를 닦고 혀를 내밀어 정복자의 쿠션이 될 때마다 골조가 드러난 천정 위로 하기스 아기 기저귀와 남양 분유가 떠다녔다 단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다고 마른세수하며 중얼거릴 때 무전기로 명령이 하달되었다 “폭설, 야전삽 들고 정문 앞으로 집결! 오버”혓바닥으로 삽으로 눈덩이를 밀어 붙였다 어디선가 달디 단 냄새, 허기와 식욕이 되살아났다 숨이 가빠왔지만 혀를 내밀었다 그것의 끝에는 핏물. 얼어 무감각해진 혓바닥은 그 날에 베이고 피는 더욱 흥건해지고 그 맛에 미쳐 그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핥았다, 핥았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리뉴얼 기념 오프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업체 협찬 사은품을 노리는 고객들로 인산인해, 시간 대비 최고 매출이 기록되었다 새롭게 펼쳐진 대 약진의 시대에 어울리는 드라마틱한 서설이라고 모두들 박수를 쳐댔다 사라진 K씨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샴페인이 터졌다
김은경∙2002년 ≪시와반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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