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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소각장 근처 외 1편/장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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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91회 작성일 09-12-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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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
소각장 근처 외 1편


달아난다. 화분이, 의자가, 약봉지가, 꽃들이
꽃 같은 약속이, 읽지도 않은 책에 바톤을 넘긴다
숨을 헉헉거리며 허공으로 달아난다

연기가 되어 달아나면서 사라진 얼굴을 갈아입는다
여섯 살 동생이, 할머니가, 나를 버린 남자가
흐물흐물 춤을 추며, 다시 연락하겠다, 낄낄거리며 달아난다

연기가 사라지는 하늘엔 자주 먹구름이 끼고
연기에 취한 집들은 쉬지 않고 쓰레기를 낳고
갈수록 의자가, 꽃들이 한 자루에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쓰레기가 펑펑 솟는, 창가에 앉아 굴뚝은
터질 듯이 불룩한 하루를 피운다

의자를, 화분을, 일회용 꽃들을 뻑뻑 피운다
가끔 달아나고 싶은 사람들도 피운다
필터만 남은 여자 하나 비 내리는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핸들을 잡은 바람은 사라지는 방향을 이리저리 바꾼다
피가 나도록 긁어도 끝나지 않는 가려움이 시작되는 저녁
또 하루가 아토피 걸린 지붕으로 달아나면서
살 속 깊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삭朔*

날개도 없으면서 날아오르려 애쓰던 육신이 있었다 욕심만 홀딱홀딱 집어 삼키며 배설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육신을 부러워했다 작은 눈은 세상을 비웃는 듯했고 검지로 귓구멍을 항상 틀어막고 다녔다 손가락만 활짝 펼쳐도 구경꾼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모여들었다 한 뼘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그를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가끔 책장을 찢어 잘근잘근 씹기도 하는 그는 날아가는 시늉만 해도 관절 나사가 풀렸다 풀린 관절 몰래 조이는 그와 딱 한번 눈 마주본 적 있다 나는 그의 쓸쓸한 배경을 지우며 눈길을 돌렸다 그 후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쪽과 저쪽 물가만 오가던 한 다리 없는 왜가리가 기우뚱 비상을 한다 한쪽으로 자꾸 쏠리는 중심을 다잡으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고요한 호수와 나무와 물그림자와


* 음력 초하룻날의 달.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들어와 보이지 않는다.

장성혜∙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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