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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강아지 울음소리 요리법 외 1편/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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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10회 작성일 09-12-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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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강아지 울음소리 요리법 외 1편


엄마는 개를 싫어해 강아지, 라는 소리만 들어도 질색 그런데도 엄마에게 강아지를 선물했어 귀가 축 늘어지고 눈이 동그란 새끼 코커스파니엘 엄마가 아무리 야단쳐도 녀석은 하루가 멀다 하고 화초를 망쳐 신발을 물어뜯어 아무 데나 오줌을 싸 대책이 없어

밤늦도록 턱을 괴고 나쁜 남자가 싫으면서도 나쁘게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대해서 생각해 엄마, 강아지가 자지 않고 낑낑거려 강아지도 누군가처럼 외로운 거겠지 그러니까 사랑해 줘 다만 아빠가 진 빚을 갚느라 청춘을 모조리 바치기에는 내가 지나치게 젊어 그리고 늙었어 마음이 아흔 살 먹은 노인이야

엄마, 여행을 하고 싶다고 내가 이따금 중얼거리던 거 기억해? 무심하게만 듣지는 않았겠으나 도망칠 채비였던 건데 내가 떠나고 난 어느 날 무엇으로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거든 요리를 해 강아지 울음소리를 통째로 냄비에 쓸어 담고 재빨리 뚜껑을 닫아 두 손으로 꼭 눌러 어떤 비명이 들려도 열어선 안 돼 자세한 요리법을 작별인사 대신 냉장고에 붙여둘게

 

 




햇빛 자물쇠

툇마루에 아이가 웅크려 잠들어 있었다
으깨진 엄지발톱에서 흐른 피를 흠뻑 빨아들인 걸레는
다시 뻣뻣하게 말라가고

땟물과 눈물로 얼룩진 손등
너무 일찍 떨어진 열매처럼 떫은 숨결
  
외딴 집, 우물가 양은대야에 담긴 세숫물의 미지근함, 뜰에는 가지열매의 쓸쓸한 보랏빛, 흙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빨래는 가장 흰 것조차 어두웠다 몇 날 며칠 걷히지 않아서

인기척도 없이
덜컹,
철제대문이 벌어졌다 닫혔다
검둥개가 목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으르렁거렸으나
마당 저편에는
  
오로지, 감귤나무 잎사귀와 잎사귀가 뒤집힌 눈부신 겨를, 짙푸른 잎사귀가 잎사귀를 무수히 경계하며 어깨를 옹송그린 반짝이는 빈틈


이진희∙1972년 제주 출생, 2006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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