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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시/1월 외 1편/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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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53회 작성일 09-12-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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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진
1월 외 1편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아래층 노점천막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길을 지나간 구두 굽들의 높이만큼

쓸린 눈 무더기가
외눈가로등 밑에 수북이 쌓였다

창밖은 내내 시시하고
늦게 잦아든 겨울 속으로
꽃처럼 성에가 핀다

더딘 구름 속
찬 햇살이 얼핏 고개를 민다
새벽일을 마치고 온 엄마는 늦은 잠을 잔다
산토끼처럼
발자국처럼
듬성듬성

길은 조용하다
이 도시에서 자란 옆집아이처럼

긴 겨울이 시작됐다
1월의 달력은 두껍고

아직 눈을 털지 못한 녹슨 그네가
빈 놀이터에 나란히 매달려있다

 

 


 


나는 가로등

 

나는 가로등
그러니까, 추억 없는 딴 동네의 아이
각자의 캄캄한 발밑
말주변에 골몰하는 수줍은 머저리
사랑을 억 만 번 긍정하는 비대한 눈꺼풀
발랄한 여름소녀를 기다리는 웃기셔 펭귄

나는 가로등
말하자면, 철침 위에 목만 얹은 무거운 얼굴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나방
젊음을 탕진한 피터 팬의 술친구
우리 집 담장 밑에서 밤새 울고 간 신데렐라의 계모
새벽에 남은 구두 한 짝

나는 뭐랄까,
어딘가 쓰다만 노트
낙서가 간직한 망상
망상을 망상하는 허상
허상 위에 매달려 우는 엉뚱한 매미
계절을 헛도는 이른 아침
어제를 밟고 간 자전거

나는 그러니까, 불 꺼진 가로등
아무도 없는 골목


최명진∙2006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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