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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현실·발언/내가 보는 현실/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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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현실
김해자|시인
꿈과 생시 사이
홍수에 떠밀려가는 강처럼 거리는 청회색 하늘로 넘쳐흐르고, 마천루가 하늘을 뚫어 먹구름이 줄줄 새어 나오는 도시 한가운데를 전동차가 울부짖으며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전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바스러지는 에미가 있었습니다. 검은 꿈속에서 저는 아이를 안고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불길이 목구멍과 식도를 태우고 내장을 그슬리고, 녹아내린 나일론 천에 달라붙은 엉겨 붙은 살점과 타들어간 뼈들이 뒤틀리고 있었습니다. 뜨겁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벌려진 입이 제멋대로 소리치는 자동차 바퀴 속으로 깔려 들어가고 알록달록한 진열장 속에서 웃는 마네킹들이 눈을 쑤시는 거리는 가도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으로 뛰어가는 동안 아이는 계속 쪼그라들어 마침내 아주 갓난아이처럼 작아졌습니다. 가로등들이 황달이 든 얼굴로 서서 넝마처럼 쪼그려 앉은 그림자를 벽에 비추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당도한 병원은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하였습니다. 복도와 계단은 환자들이 흘린 피와 피를 닦은 무명천들로 어지러웠습니다. 철석같이 믿은 병원은 좀체 아기를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순서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품안의 아기가 갑자기 진동하듯 떨더니 눈이 스르르 감겨지는 즈음에야 저는 소리쳐 항의했습니다. 그제서야 의사는 아기 입에 얼음막대 사탕만한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습니다. 그 가녀린 입에 큰 주사바늘을 꽂아 넣다니! 소스라치며 막으려다 그래도 의사의 처치이니까 하고 애써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의사가 건넨 우유병을 아기에게 먹이려는데 우유병이 뚫려져 다 새어버렸습니다. 다시 우유병을 요청해 먹이는데 아기가 몇 모금 마시다 한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영영 눈 감아버렸습니다. 저는 아기를 흔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 아이를 죽게 한 제 어리석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아기는 제가 죽였습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 입술에 물만 축여주었더라도, 아니 병원과 의사를 철석같이 믿지만 않았더라도, 아기는 곧 기운 차리고 방싯거렸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꿈이었습니다. 용산참사가 난 직후 새벽에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나에게 전달된 몽상 속 메시지는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메신저가 누구였든 간에 내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땀과 눈물에 젖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가끔 접선하는 나의 현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존을 위한 방어본능이나 개인적 욕망 탓에 몇 겹의 껍질을 둘러쓰고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나의 에고, 즉 자아라고 불리는, 물건은 어쩌다 그 껍질이 부서지곤 합니다. 이 꿈만큼 상징적이거나 때로 아주 적나라하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내보이는 핍진한 현실 앞에 알몸으로 내맡겨져 내 자아 저변에 숨은, 생시의 나보다 큰 영혼이 느끼는 잔혹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어른으로서 더 간절하게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절박하게 행동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뜨겁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아아아 모음뿐인 외침과 절규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그 아픈 죽음들 앞에 예의도 슬픔도, 하다못해 염치조차 없이 개죽음을 만들고 있는 파렴치한 세상을 날마다 받아들여야 하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정말 죄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이런 아픈 세상을 아픔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감각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옷을 사준다며 백화점으로 데려가려는 지인에게 안 갈 핑계를 댄 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둘러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가 내게 말한 “왜 세상을 그렇게 어둡게만 보느냐”던 조용한 질타는 오랫동안 내게 남아 있습니다. ‘왜 나는 현실을 어둡게만 보지?’ ‘왜 뉴스처럼 사건과 해결해야 할 문제투성이로서의 현실만 자각하는 거지?’ ‘문제란 게 풀면 또 생기고 풀려다가 실이 더 엉키거나 또 다른 문제를 낳기 마련인데…….’ ‘과연 그런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한 자를 찾습니다
창문을 엽니다. 이른 새벽 새소리가 있고 숨 쉴 대기가 있고 점차 밝아오는 햇살과 바람 아래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이 살아 있습니다. 저마다 생을 구가하는 순수한 욕구와 본성에 따라 삶은 이루어지고 계속됩니다. 돌 하나 풀 하나 물방울 하나 잡풀 하나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합니다. 먹고 자고 사랑하며 생을 찬란히 꽃피우는 게 존재의 목적이요 저마다의 본성입니다. 육체를 유질할 에너지인 먹을 것은 오랜 동안의 저축이 불가능합니다. 잠과 사랑은 저축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물물교환도 다른 경제 가치로의 환원도 안 되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지성과 문화의 이름으로 저차원의 욕구라고 폄하하였던 그러한 순수욕구, 그조차도 파괴된 현실을 인류만이 감당하고 삽니다. 거기에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려는 욕망이 더해질 때 인간은 행복해지기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사물과 타자에게서만 실현될 수 있는 욕망이란 좀체 채워질 수 없으며 관계조차 훼손시키기 때문입니다.
삶의 공간을 옮긴 후 변화가 생겼습니다. 해는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집니다. 별도 더 일찍 하늘을 비추고 달은 더 늦게까지 베란다 창문을 비춥니다. 사람 만날 일도 당장 해치워야 하는 급박한 임무도 머리를 써야 할 회의도 많이 줄었으니 시간이 아주 천천히 갑니다. 1년 가까이 서울 주변을 떠나 살게 되면서 세상과 사람들을 좀 더 먼 거리에서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전에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행복이라든가 평화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이 행복하지 않다, 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저 삶이란 축복일진대 한번 뿐인 생을, 대체 왜, 우리는 고민거리와 문제 속에서 탕진하며 행복을 저당 잡히는 삶을 연명하고 있는가?
어쩌다 밑바닥부터 상위의 계급까지 여러 층의 삶을 접할 기회가 있었던 나는 그들의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존재는 깨어지고 관계는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 저는, 죽음의 목전까지 가서 다시 돌아나온 적이 있던 저는 살아 있는 게 자주 신기하고 기적처럼 느껴졌던 나는 아직 살아 숨쉬는 나에게도 나의 지인들에게도 행복하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물어도 행복하다는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언감생심, 행복은커녕 일상적인 삶을 평화롭게 이어나가는 것도 힘든 듯했습니다. 누구는 너무 가난하고 누구는 너무 많이 가진 듯합니다. 한편은 빚 독촉에 시달리는데 한편은 여러 채 가진 집이 경제침체 때문에 안 팔려 고투하고 있습니다. 평생 노가다만 해온 선배는 일거리가 없어 끼니와 아이들 학비를 걱정하며 마누라도 없이 혼자 삽니다. 평생 목공일만 해온 친구는 3천만 원 하던 전세 값을 주인이 올리는 바람에 지하셋집을 알아보고 다닙니다. 마흔 중반에 겨우 아파트 하나 장만한 청소용역 일을 하는 어릴 적 친구는 공치는 날은 많고 아파트 대출금도 못 내고 있고, 아이들 먹을거리도 충분하지 못해 지하철역에 나가 델리만쥬라는 빵을 굽는 친구는 하루걸러 침 맞으러 다니며 종일 서 있습니다. 천만 원짜리 안경이 있고 가방도 있다는데 아이들 배불리 먹일 빵 이야기를 하다니... 참 엄정하고 가혹합니다만, 한편 현실이라는 거 참 우습습니다. 45억년이라는 지구 나이에 비하면 인류 나이는 겨우 백만 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몇십년 밖에 안 살고도 우리는 어찌 이리 이런 현실에 적응이 되고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되었는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만 합니다. 민주주의는 신장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데 왜 같은 인간 속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폐지 값과 시 값
새벽 여섯 시, 아흔 된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밀개차를 끌고 갑니다. 관절염에 시달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오르막을 가는 동안 박스가 땅에 떨어집니다. 구부려 앉아 박스를 줍고 다시 묶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앞서 가던 할머니가 뒤돌아보더니 자신의 밀개차와 할아버지 것을 동시에 끌고 갑니다. 오늘은 무거운 프라이팬이 하나 있어 2000원을 받았다고 흐믓해 하며 웃습니다. 할머니는 당뇨와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혼자 나가면 곧잘 길을 잃어 할아버지에게 혼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병원 간 사이 혼자 박스를 주우러 골목을 어슬렁거립니다. 무게를 다니 오늘 할머니 폐지 값은 600원입니다. 할아버지가 바지 호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냅니다. 몇 달치 모았다는데 7만 원 남짓입니다. 할머니가 아프니까 약값도 해야 하고 병원도 가야 해서 모아놓고 있다고 합니다. 「추적 60분」, 하루 600원 벌이를 하러 종일 돌아다니는 할머니를 보다, 지나다니다 뽑아먹는 자판기 커피 값이 생각납니다.
7-80년대 청계 피복 공장에서 일한 언니는 당시 일당을 커피 값과 빵 값에 견주었습니다. 하루 일당은 다방 커피 값에 못 미쳤고, 빵 한 봉지는 일당에 육박했다고 했습니다. 야근을 하고 버스비도 아까워서 밤길을 걸어가는 내내 구수한 빵 냄새를 맡으며 ‘저 빵 한번 원 없이 먹어봤으면…….’ 날마다 밤마다 유혹이었다고 합니다.
몇 백만 원 하던 집값이 몇 억을 호가한다는 오늘 이 시간, 경제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잘 살게 되었다는 이 순간도 몇 백 원 몇 천 원짜리 일당과 인생이 존재합니다. 몇 백 만원짜리 몇 천만 원짜리 인생과 일당도 존재합니다. N회사는 대표와 비정규직 월급 차이가 만 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간극이 벌어지는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지,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 다수가 행복하기는 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값을 보다 시인들의 원고료 값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는 시인들 중 시집으로 인세를 받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해봐야 백만 원 이백만 원 정도입니다. 발표하는 작품 한 편당 값은 무료이기도 하고 1년치 문예지 구독권으로 물물교환하기도 하고 높게 쳐주는 데라야 십만 원 전후입니다. 내가 아는 글쟁이는 거의 다 가난합니다.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제 소유의 집도 작품을 구상할 여유를 허락하는 몇 달치 생활비도 없습니다. 전념해서 작품만 써도 되는 단단한 현재도 보장된 미래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시를 씁니다. 대상과의 합일, 대상과의 사랑에 빠진 삶이 시의 씨앗이오, 그 결과가 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작년 가을에 시든 꽃덤불에 앉아 국화꽃 향기를 맡고 하늘에 걸린 무지개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는 無用이라는 양식을 먹고 사는 철부지한 시인들이 세상의 변혁을 꿈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오늘 미친 듯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기차 속에 담겨 정신없이 실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한복판에서 우리는 무엇입니까. 작가는 작가 한 사람의 개인사만을 목표로 할 수 없는 운명을 택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역사와 동시대의 삶과 때로 더 많은 수의 자유와 행복을 향해 함께 모의하고 함께 짐을 나눠 싣고 함께 가야 팔자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달리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진실로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자는 만인이 달리고 있는 기차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절름거리며 그로테스크하게 걷고 있는 일상과 타성에 젖은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존재들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물어야 합니다. 이탈과 탈주 때로 이것이 우리의 길일지 모릅니다. 이 생이 살 만한가, 정반대에서 접근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작가란 자기에게 부과한 시대적 운명을 되씹어보는 존재입니다. 통계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현실로서의 삶을 바라보되 그 무게와 고통에 압살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공중에서 대지로 자유자재로 저마다 다른 입자와 파동으로 춤추며 내리는 눈처럼 가벼워야 합니다. 순결하게 세상을 덮은 눈처럼 우리가 이룩한 문명과 문화와 언제까지나 지속될 듯 보이는 완강한 콘크리트 같은 질서 앞에서 백지가 되고 백치가 되어야 합니다.
내 눈앞에 현실은 모두 다 내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꿈꾸어 온 게 실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제거한 채 현실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전적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합쳐져 현실을 이루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앞에 벌어진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입니다. 내가 살고 내가 진단하는 현실이 결국 나의 의식의 한계와 존재의 한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맘에 들지 않은 이 세상 또한 미워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한계 지워진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의미와 내가 할 몫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김해자∙1961년생.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 축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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