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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단편/이상한 날/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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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
전진우
까무룩 빠져들었던 새벽잠 끄트머리로 한 가닥 소리가 들러붙었다.
탁, 탁, 탁 탁, 탁탁탁…….
처음에는 나지막하다 못해 미약해서 어느 기와집 처마에서 나는 낙숫물 소리 같기도 하고, 어느 시골집 아궁이 속 사윈 불티가 내는 소리 같기도 했는데 그 단속음이 차츰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귓속을 먹먹하게 채웠다.
눈을 뜨자 희끄무레한 빛이 회백색 천정에 얼룩처럼 번져 있다. 어질하니 묵직한 머릿속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고 눈꺼풀 무게는 천근이었다. 여기가 어디던가? 몇 분보다 긴 몇 초. 순간 귓속에 그득했던 단속음이 화드득 뛰쳐나왔다.
탁, 탁, 탁 탁…….
나는 좁다란 간이침대에서 벌떡 몸뚱이를 일으켰다. 어머니의 마른 손이 힘겹게 병상받침대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제기, 나는 고약한 낭패감에 진저릴 치며 벽을 더듬어 실내등 스위치를 올렸다. 병실로 기어들어왔던 새벽빛이 화들짝 창밖으로 밀려나가고 창백한 형광 빛이 소름을 돋우며 실내를 채웠다. 지린내가 났다. 나는 우둘우둘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의 하반신 쪽 담요와 시트를 한줌에 들췄다. 쉰 오줌 내가 훅하니 코를 찔렀고 척척하게 늘러 붙은 몇 가닥 치모 아래 늙은 여인의 음부가 동굴 속 어둠처럼 웅크려 있었다. 자식 셋을 출산한 그 동굴은 이제 식은 오줌에 젖어 방치된 채 치욕마저 잃고 있다.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젖은 기저귀를 잡아 뺐다.
탁, 탁, 탁……. 탁, 탁, 탁.
거친 기척에 놀랐는지, 아니면 오랜 송신 끝에 화답이 반가운 것인지 어머니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나는 젖은 기저귀를 휴지통에 집어던지며 성마른 소리를 냈다.
“아, 알았어요. 잠깐 계세요. 웬 노인네가 오줌은 이렇게 많이 싸신담. 기저귀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기저귀는 병상 발치 모서리에 말끔하게 개켜져 있었으니 나는 짐짓 어깃장을 놓고 있는 셈이었다.
“저, 저…….”
어머니가 이번에는 입으로 소리를 냈다. 명확치는 않으나 내 지청구를 빤히 듣고 있다는
당신의 분명한 의사표시였다.
“아, 아녜요. 찾았어요. 이렇게 처박아 놓으면 누가 금세 찾아.”
나는 기저귀 두 장을 포개 들면서 구두덜거렸다. 이틀을 못 넘기고 불쑥 못하겠다며 노인네를 내팽개치듯 하고 사라져버렸다는 간병인 여편네의 경우 없는 소행머리를 생각하면 욕설이라도 뱉어내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당장은 내질러 있는 어머니의 아랫도리부터 수습하는 게 급했다.
삭정이 같은 모양새와는 달리 어머니의 두 다리는 제법 단단했다. 더구나 젖은 시트에 늘러 붙은 엉덩이는 어지간히 묵지근해서 왼손으로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기저귀를 맞춤하게 밀어 넣는 일은 여간만 힘든 게 아니었다. 나는 너 댓 차례의 시도에도 제대로 마무리를 못 짓고 끙끙거렸다. 기저귀 두 장으로 대든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척척하게 젖은 시트 위에 기저귀 한 장을 깔고 다른 한 장으로 어머니의 사타구니를 채우는 일은 애시 당초 무리였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콧구멍을 파고든 지린내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으며, 형광 빛에 드러난 늙은 여인의 치모가 자꾸 고개를 돌리게 해 나는 마냥 허둥거리며 실패를 되풀이해야 했다. 가까스로 됐는가 싶은데 그때까지 수굿하던 어머니가 짧게 병상받침대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뻔뻔스럽게도 “오, 오줌” 했다. 나는 멍청하니 손길을 멈췄다가 불에 덴 듯 소스라쳐 병상 밑의 플라스틱 변기를 들어 올려 어머니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엉덩이 살이 변기에 끼이는지 어머니가 낑낑, 신음했으나 나는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피리리리……. 오줌 나오는 소리인지 방귀소리인지 헷갈리는 소리가 약하고 짧게 들리더니 어머니가 다시 탁, 탁, 병상받침대를 쳤다.
정수리에서 김이 솟는 것 같던 내가 “왜요? 또”하고 말 심지를 돋우는데 어머니의 입술이 오물거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허리를 구부려 오른쪽 귀를 당신 입 쪽에 바투 댔다.
“내가…… 그 여편네 보냈다. 내가…… 가라고 했다.”
“무슨 말씀예요. 물 드려요?”
“무서워. ……사람 사는 인연이 무서워.”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뭐가 무섭고 누굴 가라고 했다고요?”
“간병인 여편네.”
“아니, 그럼 엄마가 간병인 여잘 가라고 한 거예요?”
나는 어이가 없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씩씩거렸다. 어머니가 침을 삼키는 듯 양 볼을 오목하게 하고 뜸을 들이더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별 수 없이 다시 귀를 갔다댔다.
“그 여편네, 정님이야 정님이. 내 죄 값을 받으러 왔어.”
어머니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새나왔다. 쉰 단무지 같은 냄새였다. 나는 냄새보다 어머니의 생뚱맞은 말이 더 역겨웠다.
“죄 값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님이는 또 누구고요?”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울화를 목구멍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순간 뜨거운 밥덩이를 꿀떡 삼킨 듯 식도 전체가 후끈거렸다.
정님이? 정님이? 정님이라니? 30년 세월 저편에서 정님이가 걸어오고 있다. 웃비 그친 한낮, 짱짱한 햇빛 아래 조그만 보퉁이를 가슴에 안고 반비알진 언덕길을 타박타박 걸어 올라왔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정님이는 촌색시처럼 눈을 내리깔고 행운주택단지 25호 대문을 넘어섰다. 축대 높은 담벼락 아래로 낯선 여자애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그 애가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정님이가 간병인 여편네가 되어 어머니 앞에 나타났다니!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우연이라고 한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칠순 넘은 고령에 뇌수술까지 받은 노인네가 뜬금없이 뇌까리는 소리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어느 간병인 여자를 정님이로 잘못 보고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을 게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웬 여편네가 노인네 환자를 내팽개치고 한밤중에 사라진단 말인가.
어머니가 이번에는 병상받침대를 가볍게 두드렸다. 변기를 그만 빼라는 신호였다. 노란 오줌이 한 종지 분량이었다.
정님이가 우리 집을 떠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초가을, 그러니까 그해 늦여름 나와 정님이가 마른 먼지 냄새 퀴퀴하던 광에서 어설픈 ‘사랑’을 몇 차례 나눈 뒤였다. 개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엄마는 두 누나와 내게 정님이를 더는 데리고 있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엄마는 저렇게 부엌데기로 부리다가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듣겠냐며 더 늦기 전에 제 살 길 찾아주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냐고 했지만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정님이와 광에서 한 일을 엄마가 눈치 챈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나는 정님이가 행여 그 일을 발설할까봐 노심초사했지만 정님이는 평소처럼 부엌과 제 방만을 오가는 낌새였다.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던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가 내 등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광호야, 정님이 갔다.”
엄마의 목소리는 나직한 만큼 무거웠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아, 역시 엄마는 다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정님이를 쫓아낸 게 틀림없어. 나는 뜨거워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엄마, 나 그 짓까지 한 건 아냐. 그냥 만지기만 했어. 숨이 차오르면서 곧장 울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엄마의 다음 말이 몇 초만 더 늦어졌어도 나는 이실직고를 할 판이었다.
“이 집 팔렸다. 버스 종점 뒤로 이사 갈 거야. 방이 두 개 뿐이라서 넌 아버지하고 한 방을 써야 한다. 누나들은 나와 한 방을 써야하고, 그래서 정님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데리고 있다가 시집까지 보내려고 했지만 형편이 안 되니 어쩌겠니.”
엄마의 목소리가 나직했던 건 정님이를 내보내서라기보다는 버스 종점, 방이 두 개 뿐인 집으로 이사 하게 된 때문인 듯싶었다. 나는 안도했다. 아버지와 한 방을 써야한다는 걱정 따위는 들어설 틈도 없었다.
정님이와 나의 ‘사랑’은 우연이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 그럴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말복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한낮, 나는 밀린 방학숙제를 하다가 깜빡 졸았던가 싶었다. 펼쳐놓은 공책이 뺨에 눌려 우글쭈글했다. 수학은 중학교 때부터 젬병이었다. 우글쭈글해진 수학공책이 내 수학성적 같아보였다. 나는 입가에 늘러 붙은 마른 침을 훔치며 방을 나왔다.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 등물이라도 해야 정신이 날 듯했다. 집안은 조용했다. 장독대에 부딪혀 짱하고 반사되는 햇빛마저 없었다면 사위가 통째로 숨죽인 것 같은 대낮이었다.
방학 때라곤 해도 집안은 늘 텅 비었다. 아버지는 잘 되지도 않을 성싶은 무궁화 식재사업을 알아본다며 해 전부터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을 찾아다니고 계셨다. 나라꽃인 무궁화를 재배해 전국에 공급한다는 원대한 계획인 것 같았는데, 문제는 사업을 후원할 기관도 분명치 않은 데다 야산이나마 내놓으려는 땅주인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버지 딴에는 농림부 국장까지 지낸 친구가 강원도와 경기도청 쪽에 말이 다 돼있고, 정부에서도 권장사업으로 적극 밀어준다고 하니 솔깃할 만도 했을 것이다. 처음 아버지가 오랜만에 어깨를 쭉 펴며 무궁화사업 얘기를 했을 때 누나들은 박수까지 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아버지 사업에 진척은 없는 듯했다. 있다면 교통비와 접대비 등 녹록치 않은 사업자금이 엄마 손에서 빠져나갔을 뿐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다니던 토건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미장원을 차려 생계를 꾸렸다. 미대를 나온 큰누나는 건축회사 사무실에 나가며 반찬 값 정도는 내놓는 모양이었고, 공부머리가 아니라는 작은누나는 일찌감치 미용기술을 배워 ‘우리 미장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정님이는? 정님이는 만날 집에 있었다.
엄마는 정님이가 외가 쪽 먼 친척 딸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경남 산청의 지리산 아랫마을에 산사태가 덮쳐 여러 가옥이 참변을 당했는데 정님이네 집에선 막내였던 정님이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때 왼쪽 눈이 실명해 애꾸눈이가 됐다고 했다.
“쟤를 돌봐주던 쟤 큰 이모 되는 어른이 어찌어찌 내게 기별을 해 왔지 뭐냐. 당신 나이가 칠순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 쟬 좀 맡아달라고. 우리도 그럴 형편이 못된다고 거절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 떼 맡겼으니 어쩌겠니. 니들이 친 동기간 마냥 아껴줬으면 한다. 공부도 시키고 해야겠지만 쟤 눈이 저러니 당장은 어려울 것 같고 천천히 알아보련다.”
정님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 저녁, 엄마는 누나들과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초지종이랄 것도 없었다. 큰누나가 먼 친척 누구 딸이냐고 물으면 엄마는 누구라고 하면 니들이 알겠니? 라며 되레 말꼬리를 올렸고, 작은누나가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냐고 하면 시집보낼 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할 텐데 라며 우정 말꼬리를 내렸으니까.
사나나달쯤 지났을까. 새 양복을 빼입은 아버지가 현관에서 거울에 당신을 비춰보며 혼잣말을 했다.
“허어, 감사 덕분에 비장 나리 호사하는 격일세 그려.”
다시 열흘쯤 지나서였을까. 작은누나가 밥상머리에서 독 오른 뱀처럼 머리를 곤두세웠다.
“엄마, 정님이 쟤랑 같이 못 있겠어. 무섭단 말이야. 쟤 왼쪽 눈깔이.”
엄마가 목소리를 낮춰 작은누나를 꾸중했다.
“이런 착살맞은 계집애 같으니라고. 한쪽 눈 안 보이는 것도 서러울 애를 놓고 눈깔이 무섭다니. 쟤, 거저 걷어 먹이는 것 아니다. 네 아버지 양복에다, 네 언니 등록금, 또 네 학원비, 다 쟤한테서 나온 거야. 뭘 알고서 까탈을 부리더라도 부려야지.”
아버지 양복부터 언니 등록금에 제 학원비까지 정님이한테서 나왔다는 엄마의 한마디에 작은 누나의 곤두섰던 머리가 대번에 숙여졌다. 나는 그때 난생 처음으로 엄마가 엄마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두 눈은 교활해보였고 내리 깔은 목소리는 음험하게 들렸다. 그렇다고 엄마가 막 되먹은 여자는 아니었다. 엄마는 스스로 자랑하듯이 ‘고녀’까지 나온 배운 여자였다. 엄마는 정님이에게도 잘했다. 작은누나가 몇 차례 더 깨죽거리자 광 옆에 골방을 달아 정님이를 독립시켰으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며 내가 쓰던 교과서를 챙겨주고 참고서도 몇 권 사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정님이에 대한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자연스레 정님이 몫으로 돌아갔으며, 밥도 정님이 따로 부엌이나 제 골방에서 먹었다. 정님이는 늘 우리 집에 있었지만 늘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된 데는 정님이 탓도 있다. 정님이는 도대체 말이 없었다. 한쪽 눈만 먼 게 아니라 귀도 먼 듯했다. 제 방에서 라디오를 듣는 걸로 봐서는 귀가 먹었을 리 없었는데도 듣는 귀가 없는 양 좀처럼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님이가 깨지락거리거나 부르터져 지낸 건 아니었다. 정님이는 못 하는 일이 없었다. 밥 짓고 빨래하는 것은 기본이고 벽에 못 박는 일, 전구 갈아 끼는 일에서부터 뒷마당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쑥갓, 고추와 호박 등을 철철이 밥상에 올리는 일도 정님이 몫이었다. 심지어는 한겨울에 행운주택단지 뒤편 야산에 올라가 삭정이와 청솔가지를 한두 단씩 해와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정님이는 왼쪽 눈만 빼면 그리 밉상도 아니었다. 콧날은 오뚝했고 키도 큰 편이었다. 특히 가슴은 작은 누나보다 훨씬 붕긋했다. 흠이라면 작은 누나가 질색하는 왼쪽 눈이었다. 내리깔고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정면을 보거나 가끔씩 치켜뜰 때는 잿빛 동공에 백태가 낀 것 같았다. 작은 누나가 무섭다고 한 것도 착살맞은 소리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정님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었다. 정님이 몸에는 부엌냄새가 배어있는 듯했다. 가끔 버스 안에서 맡게 되는 여자애들의 향내에 비한다면 정님이 냄새는 밥물에 새우젓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정님이를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리도 없다.
정님이가 조금씩 여자애로 보이기 시작한 건 정님이가 우리 집에 오고 1년쯤 지나서였다. 엄마가 챙겨줬는지 큰 누나가 쓰다 남은 걸 주었는지 정님이가 비누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바르면서부터 정님이 몸에서 부엌냄새가 가시기 시작했다. 가슴은 더 커지고 엉덩이도 더 팡팡해졌다. 어쩌다 그 가슴을 만져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정님이의 왼쪽 눈을 보면 불쑥 솟았던 충동이 대번에 번데기마냥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쪼그라든 내 번데기는 버스 안에서 여자애들과 부딪힐 때면 발딱 일어섰지만 정님이 앞에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한낮의 고요함 때문이었을까. 무심코 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먼지를 머금은 햇살이 희붐하게 기어든 광 안의 정님이를 발견한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온 몸뚱이를 휘감는 것 같았다. 나는 열에 들떠 광으로 들어섰고 햇살을 받아 허옇게 떠있는 정님이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놀랍게도 정님이는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하기는커녕 붕긋한 가슴을 내게 밀착시켰다. 정님이의 입에서 새어나온 달뜬 숨소리가 내 귓바퀴를 간질이는 순간 나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오후도 무덥고 조용한 한낮이었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광으로 갔다. 정님이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내가 광으로 들어가자 정님이가 돗자리에 누웠다. 우리는 발정 난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며 뒤엉켰다. 겨우 입술을 댔던 첫날과 달리 우리는 서로의 혀를 빨았다. 정님이의 입술이 덜 익은 토마토 같았다면 혀는 잘 익은 참외 속 같았다. 나는 정님이의 가슴을 마구 주물렀고 정님이는 내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맨 엉덩이를 만졌다.
이튿날에는 아버지가 온종일 집에 계셨다. 큰누나도 일찍 집에 돌아왔다. 나는 숨죽인 채 책상 위에 엎드려 헐떡였다.
다음날, 아버지가 맨 끝으로 대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광으로 갔다. 해가 장독대 위로 오르기엔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열여섯 짜리 사내새끼에게 더 기다릴 인내심은 없었다. 정님이는 광에 없었다. 광 뒤 텃밭에도 없었다. 이미 팽팽하게 치솟은 아랫도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나는 광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광 뒤 텃밭으로,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종종걸음을 했다. 그러다가 광 옆 골방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왔다갔다 바장이면서도 정님이 방문을 열어볼 생각을 않다니! 정님이는 제 방에 있었다. 예전 같으면 빨래를 하거나 텃밭을 돌보고 있을 정님이가 벽에 기대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하루를 건너 뛴 우리는 다짜고짜 서로의 옷부터 벗겼다. 볼록 솟은 젖꼭지를 입에 문 채 나는 정님이의 청색 운동복 바지를 벗겨 내렸다. 정님이도 내 흰색 반바지를 벗겼다. 내 반바지가 벗겨지면서 팬티도 함께 내려갔다. 나는 경황 중에도 한 손을 뒤로 돌려 팬티를 끌어올렸다. 정님이도 반쯤 벗겨졌던 팬티가 더 내려가는 것을 막았다. 내 손이 팬티 속으로 파고들자 정님이 손이 내 팔목을 움켜쥐었다. 정님이 손아귀 힘은 억셌다. 하지만 내 손가락 끝은 어느새 감숭한 털 사이를 비집고 미끈한 액체에 닿아있었다. 정님이 손아귀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어찌할지를 몰랐다. 턱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어찌해야 하는지를 생각했지만 결정을 내린 것은 내 머리가 아니었다. 정님이 손이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와 내 것의 끝을 건드린 순간 나는 자폭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거무칙칙한 정님이 왼쪽 눈이 내 눈에 들어왔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탐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애꾸눈이었다. 나는 등짝이 선뜩해져서 주섬주섬 반바지를 꿰입고 골방을 나왔다. 나오면서 흘낏 돌아보니 정님이는 팬티 바람으로 죽은 듯 엎드려있었다.
정님이에 대한 내 기억은 열여섯 살, 사춘기 어린 수컷의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긴다. 조금은 낯 뜨뜻하고 조금은 사타구니가 근지러운, 죄의식이랄 것까지야 아니더라도 언죽번죽 드러낼 수는 없는 첫 수음과 몽정의 기억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정님이 떠난 것이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범이 제 알아 자취를 감춘 듯 개운했다. 찜찜하고 켕기는 구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님이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훨씬 컸다. 과즙 같던 정님이 혀 맛은 억지 토악질로 뱉어냈다. 몽실하던 젖가슴의 촉감은 버스 안에서 만나던 여고 애들 젖가슴을 떠올리며 지워냈다. 버스종점으로 이사 하고 아버지와 한 방을 쓰면서 나는 곧 정님이를 잊었다. 여고 애들 젖가슴도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아버지 기척만으로도 내 사타구니는 얌전해야 했다. 한 달쯤 지나 작은 누나가 “광호야, 정님이 있잖니. 우리 미장원에 재료 대던 심 씨 아저씨가 부천 어딘가 가발 만드는 회사식당으로 데려 갔다더라”며 귀띔했지만 나는 심드렁한 척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정님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해 연말께 어느 날이었다. 오전 10시 쯤 된 시각이었는데 집안에는 나 혼자였다. 웬 늙수그레한 여자와 얼굴이 팽팽한 중년여자가 엄마를 앞세워 마당으로 들어섰다. 미장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온 모양이었다. 중년여자는 마루 위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방 두 칸 사이에 농짝 하나에 밀가루 포대 두엇 올리면 꽉 찰 좁은 마루뿐이어서 여자의 목소리는 바로 내 귀때기에 대고 하듯이 왕왕거렸다.
“긴말 할 거 없고요. 정님이 이모가 맡긴 오십만 원 당장 내놓으소. 인두겁을 썼으면 양심이 있어야지 삼년간 부엌데기로 부리 먹다가 식당에 팔아먹고는 공부시켜달라고 맡긴 돈까지 꿀꺽해요. 그게 어떤 돈인지 알기나 알아요? 정님이 큰 이모 그 노인네가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은 돈이요. 죽기 전에 참변을 당한 막내 동생 딸내미, 애꾸눈이 된 불쌍한 이질녀 서울 보내 공부 시킬 거라꼬 당신 심장 꺼내듯이 내놓은 돈이란 말입니다. 아니, 저 옛날 진주고녀 다니며 하숙할 때 정님이 큰 이모를 친 이모처럼 따랐다면서 옛 인연 믿고 조카딸 맡긴 어수룩한 노인네 등골을 빼먹어요. 아유, 억장이 무너져 말이 다 안 나올라카네. 좌우단간 아줌마 같은 양심 없는 사람과는 더 말도 섞기 싫으니 당장 돈이나 내놓으소. 아니면 나, 이 집구석에서 한 발짝도 못나갑니다.”
여자가 힝, 콧김을 쏟아내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그 콧김에 눌린 듯 말소리부터 납작했다.
“어디서 무슨 말을 어떻게 듣고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님이를 식당에 팔아먹다니, 그렇다면 천벌을 받을 노릇이지요. 일단 식당일을 하면서 가발기술도 익혀준다고 하고, 또 월급도 얼마씩은 준다고 해서, 거기다가 우리 형편이 기울어서 보시다시피 방 둘에 다섯 식구 비비고 살려니, 정님이 공민학교라도 보내려고 했지만 걔가 워낙에 싫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님이 눈이…….”
“뭐라꼬요? 애꾸눈이라 공부 못시켰다면서 기술은 익힌다? 내 참, 터진 입으로 하면 다 말이라고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 같잖은 소릴 듣자고 내가 울 엄마하고 꼭두새벽부터 진주에서 예까지 달려왔는지 알아요? 이것 보세요. 진주고녀 나온 여자들은 경우가 똑 부러진다카던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이 말 저 말 더 듣기 싫으니 얼른 돈 오십만 원이나 내 놓으소 당장.”
여자가 마룻바닥을 쾅, 내리쳤다.
“오만 원은 정님이 부천 갈 때 챙겨 보냈고요. 이십만 원은 정님이 이름으로 통장에 들어있어요. 삼십만 원은 미장원 매상에서 또박또박 채워 넣을 겁니다. 우리 형편 좀 풀리면 어떡하든 정님이가 살아갈 수 있게 방도를…….”
“아니, 이 아줌마가 배운 여자라기에 말끝을 올려줬더만 아주 밑 보기를 하자고 하네. 오십만 원에서 오만 원 떼어주고 이십만 원은 통장에 있다캐도 이십오만 원은 어디 갔노. 삼년 식모살이에 밥 세끼 먹여준 값으로 셈했다는 얘기야, 뭐야.”
내가 내 귀로 들은 건 거기까지였다. 나는 여자가 재차 마룻바닥을 내리칠 때 벌컥 방문을 열고 나가 운동화 코를 꿰었으니까. 한 시간 넘게 버스종점 주위를 어정버정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니 다행히 여자들은 돌아가고 없었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정님이 당숙모와 그 딸이라고 하는데 젊은 여자가 막 되먹었더구나. 정님이 일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엄마가 다 얘기해서 풀었다. 넌 별 데 신경 쓸 거 없이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된다. 알았지?”
나는 건성 고개를 끄덕였지만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일 년 안에 이자 채워 갚기로 각서 써줬소. 정 안되면 미장원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그러니 이제 그 놈의 무궁환지 나라꽃인지는 입도 벙긋하지 말아요. 아니, 낼모레면 된다던 게 언제 얘기요. 이 게딱지만한 집마저 날리고 한 데로 나갈 작정이요?”
엄마가 아버지에게 퉁을 주는 걸로 미루어 정님이 이모가 맡긴 50만원은 거의 아버지 사업자금으로 날아간 것이 분명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버스종점 뒤 게딱지만한 낡은 집으로 이사 올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정님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 20만원이 들어있다는 것도 필시 거짓말일 거였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렇든 정님이 얘기를 내 입으로 꺼내 괜한 동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 뒤 엄마가 50만 원을 제때 갚기는 갚았는지, 가발기술을 익힌다던 정님이가 어떻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엄마 말대로 나는 별 데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했으니까. 그 무렵 어린 수컷의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데에는 정님이 덕이 컸다. 정님이의 애꾸눈이 발기된 자지를 다스리는 데에는 즉효였으니까.
30년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정님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정님이가 간병인이 되어 어머니 앞에 나타났다니! 죄 값을 받으러 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유리창 아래 고가도로가 출근길 차량들로 빼곡히 들어찰 즈음 병실로 들어선 큰누나 역시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우연이고 아니고를 떠나 어느 환자나 보호자가 애꾸눈이를 간병인으로 쓰겠니. 말도 안 된다 얘, 말도 안 돼.”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안도했다.
“그만 출근 하렴. 나가는 길에 십이 층 간호사실에 들러 다른 간병인 좀 소개해달라고 해라. 오는 길에 원무과에 물어봤더니 간병인은 층마다 있는 간호사실에 얘기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아니면 출근해서 수경이 어미에게 시키든지. 어젯밤 없어진 되잖은 간병인여편네는 네 처가 데려다놨었지 않니.”
큰누나는 아무래도 어젯밤 저 대신 남동생을 병원으로 내보낸 손아래 올케가 영 마뜩찮은 기색이었다.
“데려다놓기는 누가 데려다 놔요. 여기 병원에서 연결해준 거겠지. 그 사람 요즘 독감이 걸려 형편없어. 어젯밤 병원 간다는 걸 내가 말렸어요.”
시누이 눈에는 두 달 넘게 시어머니 병수발한 올케의 처지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원주 사는 영숙이를 엄마 간병하라고 부를 수도 없고 내 나이는 또 얼마냐. 꼭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네 처가 욕볼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엄마 중환자실에서 내려오자마자 쓴다던 간병인여편네가 난데없이 한밤중에 사라졌다고 하니 하는 소리야.”
작은누나 영숙이는 일찍이 군 하사관과 결혼해 지금은 원주에 터를 잡고 미장원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넷이나 낳아 미장원 하랴, 애들 돌보랴 눈코 뜰 새 없다고 한 것이 10년 노래였다.
“알았어. 간병인이야 다시 부르면 될 테니 누님이 그동안만 수고해요.”
나는 곤한 잠에 빠진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일별을 주고는 병실을 나왔다. 복도 중간쯤에 안내 데스크 같은 간호사실이 있었다. 앳된 얼굴의 간호사가 피곤한 눈빛으로 나를 맞았다.
“저 천이백이호실 환자 보호잔데요. 어젯밤에 간병을 하던 아주머니가 사라져서…….”
“예? 간병인 아줌마가 사라져요? 그럴 리가요.”
“어젯밤 제 집사람한테 어떤 간호사 분이 그렇다고 전화해 제가 허둥지둥 달려 나왔는데 그럴 리라뇨?”
“글쎄요. 자세한 것은 수간호사님이 아실 텐데 지금 안 계시니 어쩌죠?”
“어쩌다니요. 우선은 다른 간병인이라도 불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잠을 설쳐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짜증을 냈다.
“간병인은 수간호사님이 간병인 관리인에게 말하도록 돼있어요. 그게 병원 규정이에요. 저희는 백 명도 넘는 간병인들 누가 누군지도 잘 몰라요. 지금이 여덟시니까 아무래도 한 시간은 더 지나야 관리인이 나올 텐데 어쩌죠?”
앳된 간호사가 얼굴을 돌리며 다시 어쩌죠? 했다. 나는 짜증을 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수간호사님이든 관리인이든 나오는 대로 내게 연락 좀 달라고 전해줄 수는 있지요? 여기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요.”
“그러죠. 간병인 아줌마가 사라지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간호사가 내 명함을 받아 가운 옆 주머니에 넣으며 종알거렸다.
수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내가 사무실에 도착해 종이컵 커피를 한 잔 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수간호사의 말이 엉뚱했다. 사라지긴 누가 사라졌느냐, 어젯밤 환자분을 돌보던 간병인 아줌마에게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환자분 보호자 댁에 연락을 드린 것이고, 이미 대체할 간병인을 불렀으니 곧 도착할 거라는 얘기였다.
“아니, 저희 집사람은 간병인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던데요.”
수화기에서 수간호사가 짧게 웃었다.
“아무래도 저희 간호사하고 사모님 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간병인은 병원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고 저희는 그저 환자분 측에서 원하면 연결만 시켜주지요. 물론 수간호사인 제가 간호사들을 통해 체크는 해요. 간병인들이 환자분들에게 친절하게 잘 하는지, 혹시 정해진 요금 외에 웃돈을 요구하지는 않는지 등등을 말예요. 하지만 간병인이 워낙 많은데다 소속 회사도 여러 개라서 간혹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어젯밤 그 아줌마는 워낙 사정이 급하고 딱해서 저도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다른 간병인을 부를 수도 없고, 그래서 간호사 시켜 댁에 연락드린 건데 그 과정에서 뭔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수간호사는 커뮤니케이션을 똑 부러지게 발음했지만 나는 귀에 거슬려 말을 끊었다.
“대체 환자를 놔두고 간병인이 갑자기 떠날 일이 뭐랍니까?”
“아, 그건 오늘 아침 방송에도 나왔는데 못 보셨구나. 그 아줌마 아들이 어제 저녁 어디라더라. 아, 그래요. 어느 회사 앞에 세운 망루라던가 철탑이라던데, 거기 올라가 시위를 하다가, 뭐라더라? 내려오다가 떨어졌다던가, 뛰어내렸다던가? 하여간 생명을 잃지는 않았지만 중태래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환자분 간병도 중하지만 자식이 중태라는데 남 간병하라고 붙잡을 순 없지 않습니까. 보호자 분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수간호사는 침착하게 말 맺음을 했지만 나는 황급하게 끝머리를 잡아챘다.
“뭐라고요? 간병인 아주머니 아들이 망루에 올라가 시위를 하다가 뛰어내려요? 중태라고요? 잠깐만요. 그 간병인 아주머니 이름이 뭔가요? 혹시 정님이 아닌가요?”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들이댔다. 관자놀이가 툭툭, 뛰었다.
“글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흰 간병인들 인적사항까진 몰라요. 관리회사가 따로 있으니까요. 정님이라는 이름은 모르겠고요. 간병인들끼리 부르는 걸 들은 기억으로는 당산동 아줌마라든가? 이 씨 아줌마라든가? 아, 그러시면 되겠네요. 그 아줌마가 소속된 간병인협회 관리인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그 분한테 물어보시죠. 필기하실 수 있습니까? 아, 그래요. 그럼 부릅니다. 이름은 김용배 씨고요. 휴대전화 번호는 공일일 공공육사…….”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망연했다. 이 씨 아줌마라? 정님이 성이 이 가였던가? 이정님? 이정님?…… 나는 입안에서 몇 차례 굴리다가 큰 누나에게 전화했다.
“그렇잖아도 막 내가 너한테 전화하려던 참이다. 좀 전에 새 간병인 왔다. 쉰쯤 돼 보이는 여잔데 조용하고 참한 게 인상이 괜찮다. 뭐? 어젯밤 사라진 간병인 여자를 아느냐고 물어보라고? 화장실 청소한다고 들어갔는데, 가만 있어봐. 끊지 말고 잠깐 기다려라. …… 모른다는데, 자기는 어젯밤 아줌마하고는 소속회사가 다르데. 뭐? 정님이 성이 이 가냐고? 이 가? 김 가 아니었나? 엄마한테 물어보면 알 텐데 지금 내처 주무시고 있다. 그런데 정님이 성은 갑자기 왜 묻는데? 글쎄, 아니라니깐. 엄마가 엉뚱한 소릴 한 거라니까. 애꾸눈이 무슨 간병인을 해. 얘, 아무래도 엄마 뇌수술 받고나서 이상해진 것 같잖니? 그렇지 않고서야 웬 난데없이 정님이야. 엄마 깨나시면 내가 조근조근 물어볼게. 그러고 나서 너한테 전화할게. 나중에 네가 하겠다고? 그래라. 나도 엄마 깨나시는 거 보고는 들어갈란다. 목에 혹 같은 게 난 것이 갑상선암인지 모른대. 병원에 온 김에 검사 받으라고? 얘, 그렇잖아도 네 매형 성화로 엊그제 우리 동네 병원에서 검사했다. 한 일주일 지나야 사진 찍은 거 결과 나온대. 아 참, 영숙이도 내일 낮에 서울 오겠다고 조금 전에 전화했다. 내가 싫은 소리 좀 했다. 엄마 병원비도 만만찮으니 이번엔 죽는 소리 하지 말라고 오금을 박았다. 뭐? 그만 끊으라고? 그래, 알았다. 그만 끊는다.”
묻고 답하고, 되묻고 답하고 하는 걸로 봐서 큰누나도 늙긴 늙은 모양이었다. 나는 오른 손 검지와 엄지로 눈썹 위를 꾹 눌렀다가 다시 송수화기를 들었다.
“아, 제가 김용뱁니다만 실례지만 누구시죠. 아, 예. 그렇습니까? 저도 좀 전에 병원에 나와서 들었습니다. 거 참, 당산동 아줌마 아들이 고공 농성, 그러니까 철탑 같은 높은 데 올라가 하는 시위라고 하는데 그걸 하다가 떨어졌는지, 뛰어내렸는지 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미리 철탑 밑에다 매트리스를 깔아 즉사는 면했지만 십 미터나 되는 높이라고 하니 산다고 해도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하여간 저희 협회 아줌마 아들이 그런 일로 뉴스에 나오니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습니다. 어려운 사람들한테 자꾸 어려운 일이 겹치는 것 같아서 말씀이죠.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당산동 아줌마 인적사항을 알고 싶으시다? 하, 그건 좀 곤란한데요. 간병인 인적사항을 환자분 측에 알려주는 것은 금하고 있으니까요. 전화로 길게 설명드릴 수는 없고 짧게 설명한다면 이런 거죠. 예컨대 어느 아저씨 환자분이 계셨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느 간병인 아주머니가 아저씨 마음에 들었다고 쳐요. 그래서 아저씨가 퇴원한 뒤 간병인 아주머니를 만나려고 저희에게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하고, 저희가 알려줘서 밖에서 만난다고 하면 아저씨 집에서 좋아하겠어요.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웬 사모님이 저희 사무실에 들이닥쳐 당신이 뚜쟁이냐고 생난리를 쳐서 그것 무마하느라고 생 땀께나 흘렸지요. 여기 병원에만도 간병인 회사 세 곳에서 들어와 있어요. 자꾸 말이 났다간 서로 경쟁하는 판에 병원에서 밀려나기 딱 좋지요. 그러면 관리인으로 나와 있는 제 모가지도 잘리는 거고요. 그러니까 제 입장을 봐서라도 이해해주시고요. 예? 정님이요? 당산동 아줌마 이름이 정님이 아니냐고요? 하, 참. 정 그러시다면 내 이름까지는 확인해 드리지요. 잠깐 전화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명부를 봐야하니깐.…… 아, 아닙니다. 정님이가 아니라 정옥이네요. 이정옥. 성이 이 가가 틀림없느냐고요? 여기 그렇게 적혀 있으니 틀림없겠지요.…… 안 된다는 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 규정에 어긋난다니까요. 정 그렇게 확인하고 싶으시면 병원에 가보시면 되겠네. 당산동 아줌마 아들이 어젯밤 사고로 지금 영등포 희망병원에 있다지 않습니까? 방송에도 다 나온 거니까 저한테서 코치 받았다는 소릴랑은 마시고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 만나보시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요. 그럼 이만.”
간병인 관리인이라는 사내는 절도 있게 전화를 끊었다. 말이 늘어지긴 했지만 매조지는 확실했다. 영등포 희망병원이라. 나는 중얼거리며 밀쳐놨던 서류를 끌어당겼다.
신용은행 김 이사를 만나 대출 건을 부탁하고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가 넘었다. 본부장은 외출 중이었다. 사무실 건너편 지하의 목욕탕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건식 사우나에 들어가 앉으니 뼈마디가 노곤했다. 하룻밤 새우잠에 이렇게 맥을 못 추다니. 나는 얼핏 수건을 들추고 아랫도리를 보았다. 거무튀튀한 물건이 시원찮게 늘어져있었다. 순간 누군가의 손끝이 그것의 끝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것이 움찔했다. 나는 옆에서 누가 보기라도 한 듯 흠칫 놀라 수건을 덮어씌웠다. 창틀 모래시계 뒤에 정님이가 팬티바람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모래시계를 거칠게 뒤집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건 어머니뿐이 아닌 것 같았다.
저녁에 전화하라던 큰누나는 그 새를 못 참았던지 내 휴대전화에 두 번이나 발신인 번호를 남겼다. 내가 전화하자 큰누나가 숨넘어가듯 했다.
“광호야.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해. 어젯밤 사라졌다는 간병인 여자가 정님이가 틀림없대. 그래서 애꾸눈이 확실하더냐고 다그쳤지. 그랬더니 애꾸눈이는 아닌 것 같지만 정님이는 틀림없대.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도 죄 값을 받으러 와 무서워서 가라고 했다나 뭐래나, 횡설수설 하시니 이를 어쩌니?”
“정님이 성은 뭐래요?”
“이 가.”
“아니, 이 가가 어디 한 둘인가. 김 가 다음으로 많은 성 아니냐고요. 간병인 관리인에게 확인했는데 그 여자 이름 정님이가 아니라 정옥이래요. 이정옥. 그 여자 아들이 어제 오후 고공 시위를 하다가 떨어졌대. 아침에 텔레비전 뉴스에도 다 나왔대. 그래서 그 여자 아들이 중태래. 그래서 아들한테 급히 간 거래요.”
나는 정님이 성이 김 가가 아닌 이 가인 것이 못마땅해 제풀로 툴툴거리는 꼴이었다.
“뭐?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잖니.”
“수간호사 말로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대요.”
“뭐라고? 커뮤니…… 뭐?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아, 됐어요. 그 얘긴 길게 할 필요 없고, 하여간 이따 저녁에 내가 그 여자 직접 한번 만나보려고 해요.”
“뭐? 누굴 만나? 그 여잘 네가 왜 만나? 아들이 살지 죽을지도 모르는 중태라면서 그런 여자에게 찾아가 당신이 정님이요, 그럴 거야? 그 여자는 정옥이라며, 이정옥. 그런데 뭐 하러 찾아가.”
“엄마는 계속 정님이가 틀림없다고 한다면서.”
“아니, 넌 지금 엄마 말을 믿는 거니? 정님이가 우리 집을 떠난 게 언젠데 난데없이 간병인으로 엄마 앞에 나타나. 더구나 걘 애꾸눈이였어. 병원에서 애꾸눈이를 간병인으로 쓰겠어? 엄마가 자꾸 엉뚱한 소릴 해서 미치겠는데 너까지 왜 이러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린 그만하고 수경이 어미 웬만하면 저녁에 엄마 좀 들여다보라고 해라. 새 간병인 낯도 익힐 겸. 난 내일 낮에 영숙이 원주에서 오는 거 맞춰서 가마.”
사실 간병인 여자를 만나보겠다는 얘기는 별 생각 없이 그냥 해본 말이고, 큰누나 말이 백번 지당하다. 새 간병인 여자가 왔다고 하니 어머니 입에서 더는 정님이 이름이 나오지 않을 테고, 그러면 됐지 공연히 애먼 일에 신경 쓸 까닭이 있나. 어머니는 사람 사는 인연이 무섭다고 했지만 내게 정님이와의 인연은 열여섯 어린 수놈의 발기된 자지가 손 끝 한 번에 자폭했던 순간에 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본부장은 6시가 넘어 돌아왔다. 나는 미리 중역실 부속실에 부탁을 해놓았던 터여서 김 전무가 들어왔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결재 판을 들고 뛰다시피 했다. 앞에 누가 먼저 들어가면 20분이고 30분이고 기다리는 게 예사였다. 총무부 윤 부장이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나는 윤 부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윤 부장. 나 오 분이면 끝나는데 좀 봐주쇼. 급한 일이 있어서요.”
“급한 일이요? 재정팀 정 이사님이야 늘 바쁘시겠지요. 그런데 오늘은 좀…….”
느글느글한 작자가 말꼬리를 빼는데 김 전무가 방안에서 소리를 빽 질렀다.
“윤 부장 안 왔어? 빨리 들어오라고 그래.”
윤 부장이 내 손을 떨쳐내고 전무실로 들어가자 부속실 서 대리가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눈을 찡긋했다.
“정 이사님.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왜? 무슨 큰일이라도 있나요?”
나는 머쓱해진 얼굴로 되물으며 부속실 귀퉁이의 소파에 앉았다.
“어머, 모르셨어요? 저희 계열사인 E&c의 하청 회사에서 비정규직 문제로 어제 오후 난리가 났잖아요.”
“난리라니?”
“오늘 아침 티브이에도 나오고 석간신문에도 크게 실렸는데 못 보셨어요? 하청회사에서 해고된 비정규직노조원 세 명이 비계로 만든 망루에 올라가 시위를 하던 중 한 명이 떨어졌대요. 회사 정문 앞에 망루를 세웠다니 회사 측인들 두고만 볼 수 있었겠어요? 용역들 동원하고 경찰 부르고 했겠지요. 노조원들과 용역들 간에는 대판 몸싸움이 벌어졌고요. 그 와중에 망루가 흔들렸나 봐요.”
서 대리는 문제의 핵심은 하청회사 비정규직노조원들이 정규직 전환에 대한 보증을 원청회사인 E&c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E&c는 엘리베이터를 생산하는 나라그룹 계열사이다. 매출규모로 보아 그룹의 주력 사는 아니지만 오너인 회장 막내아들이 대표이사로 있어 그룹 기획본부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자기네 회사한테 정규직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했지 왜 우리 계열사인 E&c를 물고 들어가요? 무리 아닌가요?”
노처녀인 서 대리는 내게 묻는다기보다 동의를 구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입안에 물었던 커피를 꿀꺽 삼켰다. 재정분야가 아닌 노무관리 쪽이어서 무리인지 아닌지, 선뜻 판단이 서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일껏 정리했던 정님이가 다시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살다보면 이상할 때가 있다. 10년 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담담한 얼굴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훗날 내가 죽었을 때 아내의 얼굴이 그럴 것 같았다. 죽어서도 외로울 거란 느낌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것이었다. 인생이 서늘했다.
살아오면서 이상한 느낌과 맞닥뜨렸던 경우가 여러 차례 있긴 했지만 오래 마음에 담진 않았다. 숫자로 계산되는 돈의 세계에 묻혀 사는 내게 있어 인생은 결국 돈이었다. 내 손으로 계산되는 숫자로서의 돈, 그것이 실물로 내 손에 쥐어진다면 인생은 낯설지도 서늘하지도 외롭지도 않을 거였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수십 억, 수백 억 원의 돈이 숫자로만 거래되어도 충만감이 일거늘 그중 몇 퍼센트 정도라도 손에 쥘 수 있다면 낯설고 서늘한 인생 따위는 돌아볼 겨를도 없을 터였다. 오너인 회장의 얼굴은 늘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본부장의 낯빛 어디에도 그늘은 없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이사까지 올라왔다고 하지만 그룹 내 널린 게 이사다. 중역실 앞에서 결재 판을 들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느글느글한 총무부장 작자마저 우습게 아는, 말로만 이사일 뿐이다. 누나들은 미장원 집 막내아들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요즘같이 자금 경색에 유동성 위기가 계속돼 회사 사정이 악화된다면 어느 날 아침에 구조조정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온종일 무언가 낯설고 거북한 것이 스멀스멀 목덜미를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겠지만 이건 아주 고약한 느낌이다. 정님이 때문이다.
저녁 7시가 다 돼 김 전무 방에서 나왔을 때 나는 어쨌든 그 고약한 느낌을 털어버려야 한다고 작정했다. 큰누나에게 했던 말이 그냥 해보자고 불쑥 나온 게 아닌 듯싶었다. 이정옥이 이정님이 아니라는 걸, 이정옥이 두 눈 멀쩡한 간병인아줌마란 걸, 그래서 어머니가 헛소릴 한 게 틀림없다는 걸 확인해야만 숙면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택시정류장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일로 늦는다고 둘러댔다. 전화를 끊자마자 빈 택시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뜻밖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뒷좌석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흥얼거리듯 말했다.
“아저씨. 영등포 희망병원으로 가십시다.”
여의도에서 영등포까지는 다리 하나 건너면 되는 거리였지만 퇴근시간의 길바닥은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택시는 슬금슬금 굴러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20분 쯤 지나자 좋아졌던 기분도 급속히 가라앉았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만에 하나 이정옥이 이정님이라면, 그렇게 확인이 된다면, 도대체 이제 와서 무얼 어쩌겠다는 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열여섯 사내새끼가 비열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나이에 달리 뭘 어쨌겠는가. 어머니가 그때 돈 50만 원은 다 갚았느냐고 물어야 하나?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 아들은 좀 어떠냐?…… 이정옥이 당연히 이정님이 아니라면? 저희 어머니가 엉뚱한 소리를 했군요. 그렇잖아도 아드님 일로 심려가 크실 텐데 실례 했습니다? 하, 이게 무슨 괴덕스런 수작이란 말인가. 나는 길이 막히는 걸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운전기사에게 불퉁거렸다.
“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아저씨, 아무데나 내려주시오.”
그러자 그동안 한마디도 없던 중씰한 기사가 뒷거울에 눈썹을 올리더니 퉁명스레 쏘아댔다.
“아니, 아무데나 차를 세웁니까? 다 왔습니다요. 저 앞이 희망병원이잖아요."
그리고는 혼잣말로 덧붙였다.
“아, 씨발. 개새끼들이 저렇게 길바닥까지 나와 데모를 하니 길이 안 막히고 배겨. 저런 새끼들은 모조리 잡아넣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병원 앞은 안 되겠고 조 앞에서 유턴해서 건너편에 세워야겠네.”
“아, 그럽시다. 편할 대로 하세요.”
운전기사가 욕을 했던 한 무리의 시위대가 병원 정문에서 10미터 가량 떨어진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그들 뒤로 전경버스가 두 개의 차선을 가로막고 있었고, 병원 정문 앞에는 전경들이 서너 줄 진을 치고 있었다. 택시가 유턴을 해서 내려준 탓에 나는 잠시 방향감각을 잃은 채 맞은 편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아야 했다. 차들은 노란 불을 주둥이와 똥구멍에 매단 채 주행이 허용된 두 개의 차선으로 느릿느릿 밀려들었고, 여기저기서 짜증스런 경적이 불빛을 흔들었다. 혼돈과 열기, 불안감과 생동감이 뒤엉킨 이런 거리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지만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었다. 비정규직노동자, 고공 시위, 용역과 경찰, 충돌, 추락, 중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간호사와 간병인관리인, 중역실 서 대리로 이어진 낱말들을 순서대로 연결만 했더라도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였다. 저 옛날 발정 난 어린 수컷이 암컷을 찾아가듯 이렇게 분별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거였다. 위장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집으로 가자.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로 다가섰다.
그때였다. 반대편 차도가 크게 흔들리며 뒤엉키는가 싶더니 찢어지는 경적과 함께 달려오던 차량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병원 정문 앞 도로에 연좌했던 시위대를 경찰이 강제 해산하면서 양방향 8차선 도로가 단번에 무너졌다. 비명과 고함소리, 거친 욕설과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 흔들리는 불빛과 불안한 경적소리, 그 사이를 내닫는 숨 가쁜 발자국 소리, 전경들이 품어내는 적의의 땀 냄새와 시위대가 토해내는 증오의 피 냄새,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방향도 모른 채 무턱대고 뛰었다. 얼마 못돼 숨이 턱에 차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로수에 두 손을 짚고 조금 토했다. 눈물과 콧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하, 빌어먹을. 이게 무슨 꼴이람. 어느 골목에선가 빈 택시가 굴러 나왔다. 나는 허우적거리듯 두 팔을 흔들었다.
고공 시위를 벌이다 추락한 성화엔지니어링 비정규직노조원은 중태라고 했다. 그 회사 비정규직노조원들이 어젯밤 영등포 희망병원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인근 교통이 1시간 넘게 심한 정체를 빚었다고 했다. 성화엔지니어링 비정규직노조에서는 성화의 원청회사인 E&c가 정규직 전환을 보증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원청인 E&c가 하청인 성화엔지니어링의 노무관리를 하고 있는 만큼 E&c의 보증 없는 정규직 전환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E&c가 노동조건 변경을 이유로 성화와의 계약을 해지하면 하청회사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는 판에 정규직이 된들 무슨 소용이냐는 얘기다. E&c 측은 펄쩍 뛴다. 하청회사의 노무관리를 원청회사가 맡을 까닭이 없으며, 성화엔지니어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부는 어디까지나 성화 측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성화의 정규직노조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형식상으로 보면 양쪽 다 틀린 소리는 아니죠. E&c가 성화 노무관리 하는 건 아니지만 하청 단가 높아지면 일 안주고, 그러면 결국 저쪽 문 닫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노무관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줄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보면 저쪽 비정규직노조가 이쪽더러 보증서라고 하는 것에도 일리는 있어요. 그렇다고 이쪽이 그러겠다, 할 리는 만무하지요. 해법이요? 당장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몽땅 정규직을 돌리고 살아남을 중소기업이 얼마나 됩니까. 정부가 비정규직 2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하니까 아예 그전에 해고하고 있잖아요. 시장이 법 위에 있는 게 현실인데 정부인들 국회인들 당장 무슨 대안을 내놓을 수 있겠어요. 좌우간 고공 시위하다 떨어진 젊은 친구 죽지는 말아야 할 텐데, 죽으면 골치 아프죠. 양대 노총은 물론 온갖 시민단체가 가세할 거고, 그렇게 되면 언론도 대서특필하면서 우리 그룹 이름까지 들먹일 게 빤하니까요.”
노무관리팀 유 차장의 설명은 깔끔했다. 그러나 내 속은 깔끔하지 못했다. 아내는 어젯밤 콧물과 눈물로 얼룩이 진 몰골로 집에 들어간 내게 큰 시누이 욕부터 했다. 새 간병인이 왔으면 됐지, 굳이 감기 걸린 사람 병원 왔다가 가라는 심보가 뭐냐는 거였다. 나는 대꾸할 기력조차 없었다. 겨우 손발만 씻고 우유 한 잔을 마신 다음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내가 방문을 닫아주며 말했다.
“먼저 자 그럼. 난 연속극 봐야하니까.”
역시 저 여잔 내가 죽어도 울지 않을 거야. 나는 어둠 속에서 맥없이 중얼댔다. 온종일 이상한 날이었다.
연속극 보느라 늦게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으면서도 아내는 아침부터 죽는 소리를 했다.
“아유, 어제는 좀 괜찮아진 거 같더니 온 몸이 또 매시근하네. 내 몸도 내 몸이지만 수경이 고 3이야, 고 3. 수능이 얼마 안 남았다고요. 난 오후에 잠깐 들를 거야. 오늘 낮에 원주에서 영숙이 고모 오신다니까 가서 인사만하고 올 거야. 애, 저녁은 먹여 학원 보내야 할 거 아냐. 당신이 퇴근하는 대로 가서 저녁이라도 사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는데 출근하기 무섭게 큰 누나가 전화해서 하는 말이 또, 네가 저녁 사라는 거였다.
“아, 알았어요. 원주에선 저녁 먹으러 서울 온답디까?”
그럴 것까지는 없었는데 나는 핑, 콧김을 내뿜으며 성질을 냈다.
“뭐?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얘, 관둬라 관둬. 까짓 저녁, 내가 사도된다.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영숙이가 누구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미장원 일 했는데. 다 잘난 막내 남동생, 널 위해 희생한 거다. 엄마가 정님이 돈 떼어먹고 한 것도 다 너 대학 보내려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나는 핏대를 올렸다.
“아니, 누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작은누난 공부에 취미가 없어 미용기술 배운 거지 무슨 날 위해 희생해. 그리고 정님이 돈 아버지가 사업한다고 다 갔다 썼지. 무슨 나 대학 보내는데 써. 그때 나 고 1이었어, 고 1. 왜 아침부터 엉뚱한 소릴 하고 그래. 그만 끊읍시다.”
오전 회의에서 김 전무는 E&c 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룹 기획본부 회의에서 우리 계열사와는 법적으로 아무 상관없다는 하청회사 문제를 입에 올릴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바심이 날 정도로 그쪽 일이 궁금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노무관리팀 유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거였는데 설명을 듣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다. 어젯밤 영등포 희망병원 앞에까지 갔다가 허둥지둥 돌아온 데다 큰 누나가 아침부터 밑도 끝도 없이 정님이 얘기를 끌어다 붙인 탓에 더 그런 것 같았다.
지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올라와 잠깐 눈을 붙이려는데 작은누나가 전화했다.
“정 이사님 접니다. 원주 사는 촌 여편넵니다. 오랜만이네. 그래 하시는 일은 다 잘 되어 가시고…….”
머리 한 구석이 힁했지만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러시는 원사님 사모님은 공사 간에 노고가 얼마나 많으신지요.”
“야, 말도 마라. 우리 셋째 이번에 수능이다. 참, 네 딸내미 수경이, 걔도 고 3이지? 야, 그래도 넌 딸 하나니까 한 번에 끝나지 난 말도 마라 아직 하나 더 남았다. 그나저나 넌 정말 딸 하나로 끝낼 거냐? 뭐, 대단한 집안이랄 거야 없지만 그래도 네가 정 씨 집 대들보 아니냐?”
나는 마지못해 컥컥거리며 웃었다.
“아이고, 누님 두 분이 오늘 번차례로 웬 일이래요. 밑도 끝도 없는 소리만 연속하시니…….”
“왜? 언니가 뭐랬는데?”
“아유, 됐어요. 이따 병원에서 봅시다. 그때 얘기해요. 혹시 매형 같이 오지 않았어요? 같이 왔으면 저녁에 소주 한 잔 하려고.”
“야, 그 인간 말도 마라. 계급정년이 낼 모랜데도 무슨 충성이 뻗쳤다고 하루도 못 쉰 댄다. 그래도 원사 끗발로 서울 오는 지프는 하나 얻어 탔다. 오케이, 이따 저녁에 봅시다. 이사님.”
나보다 세 살 많은 작은누나는 그 옛날부터 씩씩하고 시원시원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기는 공부체질이 아니라서 대학 갈 생각은 없다고 공개방송 하듯 했다. 어머니는 작은누나가 가겠다고 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보냈을 거였다. 어머니는 ‘배운 여자’라는 자부심만큼이나 자식 교육에는 열성이었다. 그런데 큰누나는 작은누나가 나를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했다고 했다. 거기다가 정님이 돈까지 내게 덮어씌우려 했다. 어머니만 이상해진 게 아니었다. 정님이 얘기가 나오면서 큰누나까지 이상해진 것 같다. 입안이 썼다. 눈을 붙일 수 있는 짬은 달아나버렸다.
밤 9시가 넘도록 본부장은 퇴근하지 않았다. 본부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기획본부 팀장들은 자동적으로 퇴근 불가였다. 그래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도 그 불문율을 깨지 못 했다. 초저녁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성화엔지니어링의 비정규직노조원들이 나라그룹 회장실로 몰려올 거라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작은누나와 저녁 먹기로 한 약속은 깨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사이 아내와 큰누나, 작은누나와 통화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는 듣기만 했고, 큰누나는 짜증을 부렸으며, 작은누나는 이해했다.
“네 큰누나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서 그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난 오늘밤 여기 있다가 내일 아침에 원주 내려갈 거야. 올라온 김에 하룻밤이라도 엄마 곁에 있어야지. 아유, 노인네가 왜 장독대에 올라갔다가 넘어져 이 사단이래니. 큰누난 좀 전에 갔다. 네 와이프는 수경이 저녁 해줘야 한 대서 진즉 보냈고. 비상이라면 비상 해제될 때까지 대기해야지 어쩌겠니. 난 장 원사하고 살면서 신물 나도록 겪은 일이다.”
조직이니, 비상해제니 하는 소리는 듣기에 조금 어색했지만 일껏 설명해도 네 일도 아니라면서 왜 퇴근을 못하느냐, 무슨 이사가 그 모양이냐며 속을 긁는 큰누나보다는 백번 나았다.
내가 서대문 성도병원 동관 1202호실로 들어섰을 때는 밤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간병인 여자와 작은누나가 나란히 보조침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작은 키에 얼굴이 동그마한 간병인 여자가 목례를 하고 비켜서자 작은누나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떻게, 비상은 해제됐니?”
“비상은 무슨 비상, 그냥 대기하는 거지 뭐.”
“야, 비상이 뭐냐, 대기하는 거야. 내가 누구냐? 말뚝 원사 마누라 아니냐. 엄마는 조금 전에 다시 잠드셨다. 주사약에 수면제가 들었는지 자꾸 주무신다. 하기야 자는 게 다 약이 아니겠냐. 그건 그렇고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자. 아줌마, 우리 잠깐 나갔다 올게요.”
작은누나가 손으로는 내 팔을 끌고 고개는 간병인 여자에게 돌리며 말했다. 간병인 여자가 다시 목례했다. 큰누나 말대로 조용하고 참한 여자 같았다. 병실에서 복도로 나오자마자 작은누나가 은밀한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혹시 너 어젯밤에 정님이 만났니?”
“……?”
“네가 만나러 간다고 했다면서. 그래, 정님이가 틀림없디?”
이건 또 무슨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인가.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작은누나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실소할 수도 없었다.
“누가 그래? 큰누나가 그래?
“너, 만났구나? 정님이가 틀림없어?”
“나 참, 만나긴 누굴 만났다고 그래. 그 간병인여자 이름, 정님이가 아니야. 정옥이야, 이정옥. 내가 아침에 다 알아보고 큰누나에게 얘기했건만 자꾸 왜들 엉뚱한 소릴 하는 거야. 큰누난 내게 애꾸눈이가 무슨 간병인이냐며 펄쩍 뛰어놓고 작은누나한텐 내가 그 여잘 만나러갔다고 그래? 말이 한 다리만 건너면 이렇게 달라지니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지. 기가 막혀요. 기가 막혀.”
나는 어젯밤 영등포 희망병원 앞에까지 갔었던 건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 앞도 아닌 길 건너편이다. 그것도 경찰이 연좌농성을 하던 성화엔지니어링 비정규직노조원들을 강제해산시키는 아수라장에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숨길 것까지야 없다손 치더라도 굳이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발까지 구르며 기막혀 했는데도 작은누나는 전혀 기막히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굳은 얼굴로 짧게 물었다.
“그 여자 이름이 정옥이래?, 이정옥?”
내가 그렇다니까, 라고 소리치려는데 작은누나가 가만 있어봐, 하는 눈으로 내 입을 막았다.
“정님이가 이름을 바꾼다고 했거든. 박 하사가 뭐랬다더라? 으응, 그래. 새 인생의 출발을 위해 혼인신고 하면서 촌스런 이름을 새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던데. 그게 정옥이었나? 이 밤에 장 원사에게 전화 걸어 물어보기도 그렇고…….”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결혼은 뭐고 박 하사는 누구야? 매형한테 뭘 물어본다는 거야?”
“야, 우선 저기 가서 좀 앉자. 가슴이 떨려서 서서는 암말도 못 하겠다.”
우리는 복도 모서리에 있는 장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작은누나는 “정님이는 엄마보다 내가 더 잘 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정님이가 부천의 가발회사 식당으로 갈 때 우리 미장원에 재료 대던 심 씨가 엄마에게 5만 원을 주었다고 했다. 작은누나는 엄마가 그 돈을 정님이에게 주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받지 말아야 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 씨가 가운데서 브로커 노릇을 했던 모양이야. 가발회사에서 십만 원을 받아 엄마하고 반반 씩 나눈 거지. 그러니까 정님이를 가발회사에 팔아넘긴 거나 마찬가지야. 월급? 줄 턱이 있냐? 돈 십만 원 미리 줬는데. 엄마가 그래도 양심에 찔렸는지 받은 돈 오만 원을 정님이 준 거지.”
정님이를 어머니에게 맡겼던 큰 이모라는 노인네는 그 사이 돌아가셨고, 우리 집에 찾아와
난리를 쳤던 당숙모와 그 딸에게는 20만 원을 주는 것으로 셈이 끝났다고 했다. 5년 쯤 지나 가발 회사가 인도네시아로 옮겨가면서 정님이가 원주 작은누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저한테 못되게 굴었는데도 날 찾아온 게 되레 미안하고 안됐더라. 마침 내가 첫애를 낳고 정신없을 때라 집안 살림 맡기고 미장원 일도 거들게 했지. 애가 눈 한쪽이 그래서 그렇지 얼마나 일도 잘하고 손재주도 많았냐. 곧 미용사 시다(보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한몫을 단단히 했어.”
그러다가 남편의 부하였던 하사를 만나게 됐다고 했다.
“정님이가 눈 한 쪽만 빼면 예쁘잖아. 학교야 중학교 다니다 말았다지만 심성 바르고 부지런하고, 게다가 틈틈이 책도 읽고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교 나온 미용사 애들보다도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 게 깊었어. 박 하사라고 가끔 우리 집에 드나들다가 정님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애꾸눈이야 수술해서 의안 박으면 감쪽같다며 네 매형을 졸랐던 모양이더라. 박 하사도 형님 가족이 있을 뿐 고아나 진 배 없이 단출하고 정님이도 싫지 않은 눈치여서 둘을 맺어줬다.”
정님이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원주의 한 결혼식장에서 신랑 상관인 장 중사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큰누나도 왔다고 했다.
“군대 가 있는 너까지 부를 게 뭐 있어. 안 할 말로 우리가 유세 떨 일이 뭐 있었냐. 엄마도 맘이 편했겠냐. 결혼식 내내 엄마 얼굴이 어둡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엄마, 이제 됐어. 어쨌든 정님이 시집까지 보내준 거잖아. 그랬더니 얼굴이 조금 밝아지시더라.”
한 2년 원주에서 동기간 같이 지내던 정님이가 서울로 떠난 건 남편인 박 하사가 야간 훈련 중 오발된 총탄에 허벅지가 관통되는 사고를 당해서였다고 한다. 박 하사의 형님 내외가 살던 영등포 당산동 집으로 떠나기 전날 정님이는 갓 돌 지난 젖먹이를 업고 작은누나를 찾아와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서울 간 뒤 반년 쯤 지나 전화가 왔더라. 박 하사 전역하면서 받은 돈으로 영등포 시장에 살림방 딸린 조그만 야채가게를 얻었는데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만하다고. 애도 무탈하고 육군병원에서 퇴원한 박 하사는 목발 짚고 걷게 됐다고 하더라.”
한 번 보자고 했던 게 소식이 끊기고 그러구러 20년이 지났다고 했다.
“야, 네 매형 그동안 강릉으로, 전곡으로, 양평으로, 거기서 다시 원주로, 수도 없이 부대 옮겨 다녔다. 그 통에도 애는 자꾸 만들어져 이사하랴, 애 키우랴 정신이 하나 없었지. 안되겠다 싶어 나 혼자라도 미장원 하며 원주에 눌러앉은 게 오륙년 됐나. 그러다보니 정님이는 잊었지. 아니, 잊었다기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싶어 연락해볼까 하다가도 관 뒀어. 사실 정님이가 친동기간도 아니고, 걔가 우리 집과 맺었던 인연이 썩 좋았던 것도 아니잖니. 소식 없이 잘 살면 됐지 했지. 그런데 엄마가 난데없이 정님이가 틀림없다고 저러신다. 아무래도 엄마가 잘못 본 것 같기는 하다마는 잊고 살던 정님이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맘이 편치를 않네. 만에 하나 엄마 말대로 그 간병인 여자가 정님이라면, 높은 데 올라가 시위하다가 떨어졌다는 젊은 애가 정님이 원주 떠나기 전 날 들쳐 업고 왔던 젖먹이라면 어쩌니?”
나는 작은누나의 얘기를 듣는 동안 팬티바람으로 엎드려 있던 정님이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게 영 찜찜하고 께름했다. 정님이의 벗은 몸 위에 열여섯 살 비열한 수컷에서 진화하지 못한 마흔 여섯 살, 거리의 소요에 놀라 달아나다 가로수를 짚고 맹물을 토해내던 용렬한 중년 사내가 올라타 있는 것 같았다. 열여섯 어린 수컷 때와는 달리 겁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더러운 것을 털어내듯 장의자에서 일어섰다.
“누나, 나하고 같이 가봅시다.”
“같이 가? 어딜?”
“영등포 희망병원.”
“……?”
“그 병원에 엄마가 정님이가 틀림없다는 간병인 여자 아들이 입원 중이거든. 방송과 신문에 다 나온 거야. 거기 가면 그 여자 있지 않겠어. 아들이 중태라는 데 엄마가 병원을 떠나겠어. 더구나 간병을 하던 사람인데.”
“글쎄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인데 괜찮을까?”
“오히려 지금 가면 시위대도 없고 조용할 거야.”
“시위대? 병원에서도 데모 하냐?”
“신문 보니까 어제 저녁 병원 앞에서 그 여자 아들이 다니던 회사 노조원들이 시위를 했대.”
“신문에 났어? 그럼 그 여자 아들 이름도 났겠네. 성이 뭐야? 박 씨야?”
“박 씨? 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름까지 자세히 보질 않아서.”
“그럼, 신문부터 찾아보자. 휴게실에 있을지 모르잖아.”
“아냐.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고. 사실 난 봐도 잘 모를 것 같아. 누나야 원주에서도 몇 년 같이 지냈으니까 아무리 이십 년 넘게 지났어도 보면 대번에 알 거 아냐 정님인지 아닌지. 참, 정님이 남편 박 하사란 사람도 함께 있을지 몰라. 매형 부하였던 그 사람 누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그건 그렇다만…….”
“왜? 여기서 택시 타면 금방이야. 지금 시간에 한강대교 지나 쭉 빠지면 십오 분도 안 걸릴 거야. 가서 직접 확인하자고. 아닐 거야. 이름부터 다르고 더구나 정님인 애꾸눈이였잖아. 의안을 했다고 해도 티가 날거야.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엄마에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주면 엄마도 더는 엉뚱한 소리 안 하실 거야.”
“그건 그렇겠지만…….”
“아, 또 왜?”
“아니면 그냥 돌아오면 되겠지만 행여 엄마 말처럼 정말 정님이면 어떡해? 정님이 아들이 중태라면 어떡해? 뭐라고 해?”
작은누나가 진저리치듯 어깨를 떨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누나 말처럼 시집도 보내줬다면서.”
내 입으로 말해놓고 제물에 얼굴을 붉히는데 작은누나가 일어섰다.
“그래, 가 보자. 하기야 정님이래도 어쩌겠냐. 다 지난 세월인데.”
긴 병원복도가 휑했다.
영등포 희망병원 다 동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오른편 중환자실 입구에 서 있는 전경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뒤 두 줄로 10명은 돼보였다. 작은누나가 질겁한 듯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야, 그냥 가자. 우리가 저기로 들어갈 수도 없고, 누군지도 확실치 않은데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냐.”
그때 엘리베이터의 오른 쪽 문이 열리며 젊은 여자 셋이 나왔다. 모두 같은 군청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손에 하나씩 봉지를 들은 그들은 중환자실 입구 반대편 복도로 걸어갔다.
“저기요. 말 좀 묻겠습니다.”
내가 급히 두어 발짝 쫓아가자 그들이 돌아섰다. 그들의 작업복 위쪽에 성화엔지니어링이란 금실글씨가 선명했다.
“어제 사고 당하신 분 보호자를 좀 뵀으면 하는데요.”
“누구신데요? 혹시 E&c에서 나오신 거 아녜요?”
그중 키가 작고 야무져 보이는 한 명이 눈 꼬리를 세웠다.
“아니, 어머니 만나서 뭘 어쩌게 자꾸 이런대요? 저희 위원장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한 걸로 아는데요.”
“아, 아닙니다. 난 E&c란 회사하곤 아무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럼, 노동부나 경찰?”
“아, 아녜요. 난 저기 뒤에 계신 아주머니 동생 되는 사람인데, 제 누님이 옛날에 알던 분 같다고 해서…….”
셋의 눈이 일제히 엘리베이터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작은누나에게로 향하는데 내가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작은누나가 다가왔다.
“박 경석 씨 어머님을 아세요? 옛 친구 분이세요?”
작은누나는 박 아무개란 한마디에 그만 당황한 듯 했다.
“아니, 친구는 아니고요. 혹시나 해서…….”
“저쪽 휴게실에 계신데, 누구라고 하시면 먼저 어머님께 말씀 드리고 모시러 올게요.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 경석 씨 어머님에게 접근하려고 해서 저희들이 지키고 있거든요. 누구시라고……?”
“아, 아녜요. 됐어요. 됐습니다. 내일 날 밝으면 다시 오지요.”
작은누나가 웅얼거리고는 돌아섰다. 작업복 아가씨들도 돌아섰다. 나는 뒤에서 거칠게 작은누나의 팔을 잡아 세웠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왜 그래. 기든 아니든 만나보기로 했잖아.”
“기든 아니든? 박 씨라고 하잖니. 박 씨라고…….”
작은누나가 내 팔을 뿌리치며 주저앉았다.
“아니, 세상에 박 씨가 한둘이야. 박 하사란 사람뿐이냐고. 이러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봅시다. 정님인지 아닌지. 자, 일어서요. 얼른 일어서.”
내가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워 우격다짐으로 일으켜 세웠다.
“먼발치에서 봐서 알 수 있을까?”
작은누나의 눈이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흔들렸다. 열댓 발짝 가서 왼 쪽으로 돌아가니 보호자휴게실 표지가 나왔다. 둘은 휴게실 안이 보이는 오른쪽 복도 곁에 바짝 붙어 섰다. 머리에 붉은 띠를 맨 젊은이들 대 여섯이 바닥에 앉아 웅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말을 건넸던 젊은 여자들이 그들에게 음료수와 빵을 나눠주고 있었고, 그들 뒤로 한 여자가 담요를 덮은 간이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휴게실 천장에 달린 형광등 아래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1,2 분이나 지났을까. 내 등 뒤에서 고개를 빼고 있던 작은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호야, 아닌 것 같다. 안경을 껴서 애꾸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정님이는 아니야.”
“분명해요? 여기서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어 정말?”
“그렇다니까. 아니라니까. 어서 가자. 그만.”
작은누나가 내손을 잡아당겼다. 땀에 젖은 손이었다. 복도를 반대로 걸어 나오는 동안 작은누나는 계속 웅얼거렸다.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가 척 보면 알지. 정님이가 아닌 게 분명하다니까…….”
그러던 작은누나가 엘리베이터의 내려감 단추를 누르자 황급히 말했다.
“광호야. 정말 아니겠지, 아니겠지, 정님이 아니겠지?”
분명히 아니라더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터져 나오려는 고함을 삼키듯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병원 복도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듯했다. 나는 돌아섰다.
“광호야, 어디 가, 어디 가니?”
작은누나가 등 뒤에서 밭게 외치는 소리가 흰 천정에 부딪혀 떨어졌다. 나는 열댓 발짝 걸어가서 왼쪽으로 돌아섰다. 간이침대 위에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여자 쪽으로 걸어갔다. 정님이라면 이대로 돌아가선 안 되고, 정님이가 아니라면 무섭다며 쫓아냈다는 어머니의 잘못부터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아들의 쾌유를 빈다는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했다. 아무리 시장이 법 위에, 인간 위에 있다고 해도 그건 잘못된 세상이라고, 시장이 인간을 겁탈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해줘야 할 듯싶었다. 시장을 숭배하느라, 시장에 무릎 꿇느라 부끄러움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사람 사는 거라고 할 것 같았다. 느닷없는 생각이었지만 되돌아서기엔 몇 발짝 안 되는 거리였다. 이상한 날이었다.
전진우∙198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 작품집에 하얀 행렬, 서울의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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