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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9/봄)/신작단편/413호 표류기/김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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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53회 작성일 09-12-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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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호 표류기
김석렬



울음소리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병실 문을 나섰을 때, 그것은 긴 복도를 돌고 돌아 공명하는 소리였다. 콘크리트 벽을 세차게 때리는 울음이었고 절망이었고 찢는 것이었고 무서운 슬픔이었다. 맞은편 내과 쪽 403호 병실 문이 열리자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문간 옆으로 쓰러졌고 옆의 아주머니는 주먹으로 오열하는 입을 애써 틀어막았다. 자다 깬 내 시선에 어슴푸레 죽음 직전의 한 환자가 실려 나왔다. 빠르게 몇몇 의사가 병실 문을 빠져 나왔고 뒤를 이어 여고생이 쓰러진 아주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무릎을 굽혔다. 젊은 사내가 벽에다 이마를 대고 꺽꺽 큰 목소리로 울었다. 순식간이었다. 링거 병을 머리에 이고 화장실로 향하던 나는 갑자기 맞닥뜨린 이 광경에 머리칼 한올 한올이 쭈뼛 곤두섰다. 
환자는 시간의 몰인정함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온 거였다. 잠시 몸이 들려지고 차가운 시트에 이내 몸이 옮겨졌다. 그를 감쌌던 얇고 하얀 환의는 잠시 생을 부여잡았던 볼품없는 거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춥다, 그는. 피가 돌고, 온 몸으로 따뜻함이 머물었던 과거의 시간들을 안타깝게 그리워할 줄도 모를 일이다. 다시 의식하고 다시 느끼기를.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귀로 세상의 온갖 소란한 음성이 가득 담겨지기를. 지금의 이 무책임한 시간들 이전에 분명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정적. 
그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휑한 머리만큼 휑한 복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금 전의 울음소리는 순간이라는 짧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자 완벽하게 덧칠되어 묻혀버렸다. 텅 빈 간호사실 데스크에 놓인 소형 녹음기에서 의식적으로 소리를 죽인 캐럴 송만이 적막한 병원의 새벽을 달래고 있음을 그제야 나는 느꼈다. 벼락같이 지나간 통곡의 시간에도 캐럴 송은 기쁨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도사처럼 약한 소리로나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이경태 환자님.”
데스크 안쪽, 탈의실에서 걸어 나오던 간호사가 동공을 활짝 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내 허리 아래로 그녀의 시선이 빠르게 와서 꽂혔고 나 또한 눈동자를 아래로 향하자 맑은 수액이 가득 담긴 링거 병으로 빨간색 피가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가볍게 풀어지며 역류하고 있었다. 뛰다시피 달려온 그녀가 링거 병을 빼앗아 내 머리 위로 황급히 들어 올렸다. 투명한 관을 따라 빨갛게 채워졌던 피가 다시 빠르게 내 몸속으로 수액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톡톡톡 그녀는 투명한 수액 관을 정성스레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녀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서 풍겨져 나오는 연한 민트 향기가 알싸하게 내 코를 자극했다. 
“항상 머리 위로 들어 올려야 해요. 이렇게.”
스탠드를 끌고 와 그것에다 링거 병을 걸며 그녀가 생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위험하니까 끌고 다니세요. 아셨죠?”

6인실 4층 413호. 우리는 상처 난 비명을 잠재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웃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우리는 권토중래하기 위해 모인 6인의 사무라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세상이라는 악당에게 잠시 방심하던 차에 옆구리로 적의 칼날이 지나가게 잠시 눈감아 준 사무라이. 상처만 낫는다면, 지금의 이 상처만 아문다면 언제고 다시금 우리의 날 선 칼날에 적의 서늘한 피를 적시리라. 
방장인 최고참은 20살이었다. 고참답게 20살은 우리 중,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 20살은 세모꼴 얼굴에 작고 찢어진 눈을 가졌다. 그는 거친 호흡이 뒤섞인 비명 아니면 신경질적인 욕설만을 내뱉었다. 1년 반이 넘게 하얀 침대 시트에 코를 박고 엎드려 지냈다.  
오토바이였다. 뒤에 타고 있던 18살 때의 동갑내기 여자 친구는 사고 순간, 붕 날아서 가로수 느티나무 정 중앙에 머리를 박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했다. 20살은 구겨진 철판마냥 장이 터지고 사지가 너덜너덜 했다는데, 지금은 말짱히 다 나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아침 10시쯤 둘러쳐진 커튼 속에서 터져 나오는 20살의 비명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른 주먹하나는 족히 들어갈 큰 구멍이 척추 바로 아래에 움푹 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피고름을 짜내는 치료사의 표정이 굳어져 갔고 그에 비례해서 쇳소리 나는 20살의 비명과 욕설은 더욱더 갈라지고 메말라갔다. 

412호 여우가 식전부터 우리 영역을 침범했다. 어둑한 창 너머로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음식냄새와 함께 스물스물 피어올라 창문에 다닥다닥 들러붙었다. 오른 팔을 깁스한 여우도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검게 채색된 창밖 풍경 때문에 그 창유리로 막 병실 문을 들어선 여우의 작고 깡마른 체구가 그대로 내비쳤다. 
“그 새낄 거야, 그 새끼.”
획 고개를 돌리며 나더러 들으라는 듯 계속해서 여우가 말을 이었다. 
“경태씨. 그 왜 있잖아. 건너편……. 대가리 까지고 배 뽈록한 새끼. 그 새낄 거야 아마. 분명해. 새벽에 사람 죽어나가는 소리 못 들었어? 건너편 내과 쪽 말이야. 화장실 소변기에다 좍좍 더럽게 피를 토하더니……. 에이, 더러워. 잘 죽은 거지. 재수가 없더라니까.”
“사람이 죽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되지 않나요? 최소한 뭐 중환자실이라든가. 그런 데로…….”
“바라지 마. 뭘 바래. 바랄 걸 바래야지. 제 멋대로인 게 어디 한두 개야. 병원 주인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바뀌지. 이번에는 또 무슨 재단이라더라. 창 뭐시기더라……. 여하튼 병원 덩치는 크지 덥석 물었다가 발 빼려고 아주 쌩 난리야 난리. 환자들의 빠른 쾌유? 쥐붕알 터는 소리하는 거지. 도대체 이 놈의 병원은 관리가 안돼, 관리가.”
병원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산모퉁이를 돌아 오르듯 꽤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야 했다. 멀리서 보면 제법 덩치가 큰 병원이 금방 도색작업을 마치고 언덕 위에 정박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과 인접한 이곳은 2년 전만 해도 시내 가장 잘나가던 종합병원이었다. 쉴 새 없이 구급차가 환자들을 실어 나르느라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여름이면 병원 앞마당에 하얀색 환자들이 가득 찼다. 그들의 잡담소리와 웃음소리. 그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병원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그러다 이따금 소주병이 깨어지기도 했고 환자가 환자를 업고 응급실 문을 박차는 사건도 더러 있었다. 
비록 5층 건물이었지만 남북으로 제법 길었다. 과거엔 4층과 5층을 입원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4층만 병실로 운영했다. 4층과 5층을 잇는 비상계단이 우리들의 흡연 공간이자 집회 장소였다. 금연건물이라는 표지판 아래에 스테인리스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었고 누군가 또 열심히 재떨이를 비웠다. 계단 칸칸이 골판지 찢은 것이 흩어져 있었다. 우린 그걸 끌어다 엉덩이 밑에다 깔고 앉아 지루한 시간을 짓뭉개곤 했다.
“거 보는 책이 뭐야.”
여우는 슬그머니 내 책을 빼앗아 앞표지를 훑어보았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그렇지……. 녹천에는 똥이 많지. 근데 녹천역 다음이 창동역 아냐?”
그때였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맞은편 중간 침대에서 창현이가 자다 떨어졌다. 
“너 이 새끼. 또 남의 물건 훔쳤지.”
화들짝 놀란 개구리 아저씨의 음성이었다. 잠이 가시지 않은 눈이었지만 재빨리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떨어진 창현이를 다그쳤다. 
개구리 아저씨는 일주일 전 쯤 내 침상 맞은편으로 입원했다. 처음에 난 문병 온 사람인줄 알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약간 취기가 도는 얼굴이었다. 점퍼 차림에 맨 몸으로 쩔뚝거리며 걸어 들어와 다짜고짜 창현이의 머리를 철썩 한 대 갈겼다. 
“짜식, 또 왔어. 병원이 아주 집이구만, 집.”   
그러고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황당해 하는 우리 중 쇠골에 금이 간 아저씨가 물었다. 
“입원한 거예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
“네.”
휴대폰 벨이 울리고 개구리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알았어. 가지.”
단순 명료했다. 전화기를 끊고 두 발을 침대 아래로 내려놓으며 창현이에게 물었다. 
“너도 갈래?”
“어디요?”
‘어디요’는 막 병실을 들어선 간호사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개구리 아저씨 뒤통수에다 대고 물은 말이었다.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개구리 아저씨가 소리 없이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 
“울 동네요……. 개구리.”
“개구리?”
혀끝으로 입술 가득 침을 바르며 ‘꿀꺽’ 굵은 침을 힘 있게 삼켰다. 
내일이 수술이라는 간호원의 강조 음을 뒤로 하고 다시 쩔뚝이며 병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새벽 네다섯 시쯤이었나. 돌아와 어두운 조명 아래서 천천히, 매우 엄숙하게 환의로 갈아입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수술실로 끌려갔다 다시 또 두어 시간 후 마취가 풀리지 않은 모습으로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되돌아 왔다. 
여러 번 퇴원과 입원을 반복했다고 한다. 창현이도 그렇거니와 이 곳 환자들의 상당수가 수술, 재수술, 3차 수술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수술한 다리가 굽혀지지 않아서였다.
개구리 아저씨와 창현이와의 인연은 2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구리 아저씨는 이 도시에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한 50여 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평범하게 농사만 지으며 살아가는 노총각이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최초의 사고가 있던 그날, 폭이 좁은 경운기 운전석에 나란히 엉덩이를 붙이고 이제 막 사랑이 시작된, 40대 중반에서야 만난 사랑하는 인연과 신작로 언덕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탁탁탁탁 경운기 소리는 경쾌했고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맑은 가을. 지는 해가 너무 예쁘게 부서져서 눈이 아렸다. 달리는 차하나 없는 텅 빈 신작로를 달리며 저절로 노래가 터져 나왔다. 작년 농협 대출금으로 시작한 골뱅이도 비닐하우스에서 썩 잘 자라 주었다. 올 해에 이미 하우스 시설비조로 빌린 대출금을 죄다 청산하고 며칠 전엔 서울에 있는 프랜차이즈 요식업체에서 사람들이 찾아 와, 시내 제법 유명한 술집에서 아가씨도 붙여주고 사타구니로 두툼한 돈 봉투도 찔러주고 간 터였다. 
“사람드르은 고향을 버리일까아. 고향을 버어리이일까아아…….”
사고는 순간이고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희망의 노래가 절망의 비명으로 바뀐 것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오던 레미콘 때문이었다. 가속이 붙은 레미콘은 술에 취해 있었다. 레미콘의 오른쪽 바퀴가 경운기의 왼쪽 후미를 치고 간 것이다. 경운기는 20여 미터를 날아  올라 추수가 끝난 논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수술대에 널부러져 있는 개구리 아저씨를 가리키며 의사는 노쇠한 그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었습니다.”  
개구리 아저씨의 연인은 이미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가버렸다. 연인은 개구리 아저씨가 제 정신을 찾은 이틀 후에서야 비로소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사고 순간 엔진과 분리된 경운기 짐칸이 빙글빙글 돌아 연인을 밥공기 엎듯 덮어버렸던 것이다. 어쨌든 개구리 아저씨가 생사의 길목에서 방황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로 들어 온 사람은 창현이었다. 
창현이는 덩치는 컸지만 자기 나이조차 모르는 아이였다. 한사코 나이를 물으면 열일곱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다섯까지도 셀 줄을 몰랐다. 내가 한번 작심하고 가르쳐 보려고 회초리를 든 적이 있었다. 나는 숫자만 찍힌 마을금고 달력의 숫자 일을 가리켰다. 
“자, 따라 해. 일.”
“일.”
“이.”
“일.”
“장난하냐?”
갑자기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현이는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시, 일.”
“일.” 
“이.”
“일.”
이번에는 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좀체 웃지 않는 20살도 웃었다. 쇠골 아저씨가 무릎을 치며 웃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창현아. 너 일밖에 모르지. 그지? 너 일부터 십까지 세면 아저씨가 오늘 치킨 쏜다.”
사람 좋게 씨익 웃던 개구리 아저씨도 끼어들었다. 
“너, 어제 장미꽃 선물한 간호사 누나가 몇 층에 있어?”
“이층.”
“하하하하. 짜식이 또 여자는 밝혀요.”
또 한바탕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현이의 정답에 한껏 고무된 개구리 아저씨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너 수술한 데는 몇 층이야?”
“삼층.”
그러면서 손가락까지 세 개를 펴 보이는 것이다. 아주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한마디 했다.
“잘 아네. 그러면 우리가 있는 데는 몇 층이야?”
“일층.”
사고 후유증이 아니었다. 창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족한 아이였다. 어떻게 보면 눈도 크고 골격도 좋아 잘생긴 청년처럼 보였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상이 아니었다. 혀도 짧고 말도 어눌했다. 문제는 마티즈였다. 그날도 밤늦도록 세차장 일을 마치고 다방 아가씨들과 놀다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과속으로 달려오던 마티즈가 창현이의 무릎을 강하게 친 것이다. 잠시 멈추었던 마티즈가 이내 서서히 움직이더니 있는 힘껏 가속페달을 밟았다. 겁에 질리고 신경질적인 RPM소리가 공허하고 까만 하늘을 잠시 채웠다가 사라졌다. 머리 위로 단속카메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마티즈는 꿈에도 몰랐다. 절대, 결코, 누구도, 쥐새끼 한 마리도 자신이 사람을 쳤다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현이는 레미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개구리 아저씨의 대소변을 받아 주었다. 축축한 거즈도 입술에 물려주었다. 숟가락으로 밥도 떠 먹여 주고 잦은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엔 간병인을 썼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간병인은 꼭 필요할 때 가까이 있어주지 않았다. 그 자리를 창현이가 늘 가까이에서 충실히 메워주었다. 비록 무거워 보이는 이리자로프를 정강이에 두르고 쿵쾅쿵쾅 병원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부담스러울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 그것이 창현이가 이 병원에서 생존해 나가는 방법이었다. 내가 처음 입원실 문을 열고 첫발을 디뎠을 때도, 창현이는 내가 누울 자리의 침대 시트를 판판하게 깔아 주고 있었다. 창현이를 아는 오래된 환자들. 특히 산재환자들이 모여 있는 412호 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병원은 창현이를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개구리 아저씨는 매우 진지하게, 농사일이나 가르치면서 창현이랑 같이 한번 살아볼까도 생각했었다. 병원을 떠나면 천덕꾸러기가 될 게 뻔한 창현이를 인간 한번 만들어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개구리 아저씨의 심각한 제안을 창현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병원은 창현이에게 너무나 친숙한 곳이었다. 탯줄이 연결된, 벗어나서는 결코 숨쉴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었다. 
1년 365일 창현이를 문병 오는 사람은 없었다. 삼촌이 하나 있었지만 간호사실과 간간히 통화만 했다. 삼촌은 사고 합의금이 넉넉했는지 창현이를 병원에다 유폐시키고 찾지 않았다. 병원은 불평불만 없이 제 날짜에 꼬박꼬박 병원비를 입금시켜 주는 검증된 환자, 창현이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했을 터였다. 간호사는 매일 새벽이 되면 어두운 조명 아래서 창현이의 붉은 피를 마음대로 뽑아갔다. 흡혈귀가 탱탱한 고무줄로 팔뚝을 조이고 반짝 빛을 발하는 뾰족한 바늘로 살갗을 찌른 채 이리저리 혈관을 찾는 동안에도 창현이는 세상모르게 잠만 잤다. 한편 의사는 마음대로 정강이뼈를 붙였다 떼었다 늘렸다, 자신의 의술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었다. 더불어 병원 생활이 지루해진 환자들은 창현이를 골려먹는 재미로 심심증을 풀었고 필요할 때면 거리낌 없이 부려먹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환자들은, 문병 왔던 사람들이 건 낸, 과일이나 음료수, 과자 부스러기, 곽 휴지 등속을 창현이에게 일정부분 떼어 주었다. 모두가 윈윈이었다. 삼촌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창현이는 다리가 나을만 하면 자진해서, 혹은 불안한 마음에 ‘쿵’하고 침대에서 떨어졌다.  
“오오우 오우, 오우.”
철심 박힌 오른 발을 쳐들고 창현이는 아픔보다 더 아픈 표정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건수를 찾은 듯 여우가 책을 내게 돌려주고 침상에서 떨어진 창현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서면서 창현이가 띄엄띄엄 말했다.
“안 훔 쳤어 요.”
“근데 침대에서 왜 떨어져 임마?”
개구리 아저씨의 화난 말투에는 분명 애증이 실려 있었다. 창현이의 눈동자가 바닥을 향한 채 불안한 듯 흔들렸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여우가 끼어들었다.
“햐!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난간을 타 넘고 떨어지냐?”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끄집어 내리며 여우가 창현이의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피하기 위해 창현이는 이불을 뒤집어 쓰려하고 여우는 다시 끄집어 내리고, 그런 실랑이 중에 뺨이 살짝만 보여도 찰싹찰싹 뺨으로 손바닥이 갔다.  
“야, 이 도둑놈아! 이불 안 내려?”
여우가 실랑이를 벌였지만 힘은 창현이가 더 셌다. 더구나 여우는 깁스한 오른 팔을 쓰지 못했다. 완강하게 얼굴을 덮은 이불이 꼼짝도 하지 않자 여우는 몇 번 숨을 고르다가 뭔가를 떠올랐다는 듯, 창현이의 사타구니 밑으로 손을 쑥 밀어 넣어 묵직하게 들어찬 거시기를 ‘콱’ 비틀어 움켜쥐었다. 
“악…. 악악…. 아악…….”
창현이가 비명을 질렀고 그 음성을 비집고 여우가 다그쳤다.
“나쁜 새끼. 어젯밤에 몰래 딸딸이 쳤지? 맞지? 맞지? 바른대로 말 해.”  
그때였다. 
“나가! 씨팔 새끼들아!”
20살. 방장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분노에 찬 음성으로 이불을 물어뜯으며 또 소리쳤다. 
“이런 개에 새끼들. 다 죽어 볼래?”
이때 두 발을 천장에 매 단 시청공무원이 굵은 저음으로 천장을 향해 말했다.
“다들 조용히 좀 합시다.” 

회진 때 창현이는 자리에 없었다. 후다닥 아침을 먹었는데 그 이후론 보이지 않았다. 새로 온지 2주쯤 되는 과장은 412호 병실을 3일째 건너 뛰어 회진 했다. 장시간 입원해 있는 산재환자들에게 매번 똑같은 말을 하기에도 지쳤을 것이다. 과장은 양손으로 개구리 아저씨의 발바닥을 잡고 가슴 쪽을 향해 쭈욱 밀었다.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감은 붕대로 빨갛게 피가 새어 나왔다. 귀를 후벼 파며.
“덜 굳었네.” 
퉁명스러웠다. 도무지 병원만큼이나 이곳 의사들에게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며칠째 감지 않은 곱슬머리도 불결해 보였고 술이 깨지 않은 몰골과 어쩌다 한번 하는 수술 실력도 영 미덥지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를 중학교에 적을 둔 비행청소년 쯤으로 생각한다는 거였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그의 말과 행동에 물씬 묻어났다.  
과장이 내게로 오는가 싶더니 얼굴만 한번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획 지나쳤다. 그리고 다시 문간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잊은 게 있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내뱉었다.
“그만 퇴원하시죠?”
그 말을 들은 나도 정말이지 퇴원하고 싶다. 이 씨발 놈아라고 하마터면 말 할 뻔했다.
“아직 디디는 데 많이 욱신거립니다. 근데 저도 물리치료를 좀 받았으면 합니다.”
알 듯 모를 듯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손사래를 치며 병실 문을 빠져나갔다. 그 찰나, 내 속도 모르고 공무원이 의사더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지껄였다.
“젊은 의사가 참 믿음이 가.”
공무원은 빙벽을 타다 이리로 오게 되었다. 저녁 어스름께였다. 빙벽 동호인들과 빙벽 타기를 끝내고 거의 산을 다 내려왔을 때 10여 미터 남짓 되는 빙벽을 발견했다. 90도에 가까운 완전 수직 빙벽이었지만 길이도 얼마 안 되고 소주도 두어 잔 마셨겠다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일과 아이젠만으로 콕콕 찍어 내려오다 바일이 꽂혔던 얼음이 부서지면서 그대로 네 개의 꼭지점을 빙벽에 붙인 채, 주루룩 미끄러져 떨어졌다. 양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순간 두개의 무릎이 ‘똑’ 부러졌다. 

점심이 지나도록 창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잠깐 든 풋잠에 눈을 떴을 때, 창 너머 산언덕으로 제법 힘찬 눈발이 빠른 속도로 내리고 있었다. 412호 환자들이 의사가 자기들을 버렸다며, 회진 때 둘러보지 않았다며 징징거리다, 물리치료 한답시고 한 떼거리 몰려 간 후 바로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잠든 새 간호사는 내 몸에 꽂았던 수액 세트를 죄다 수거해 갔다.
“집 잃은 개새끼구만.”
침대 난간을 짚고 서서 눈 오는 창밖 산언덕을 보며 개구리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자 쇠골 아저씨도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목을 길게 뺐다. 공무원은 여전히 두 발을 천장에 매단 채 착실히도 누워 있었고 20살 방장은 혼자서 중얼중얼 뭐라고 말하며 투명한 유리병에다 종이학을 접어 담았다. 
병실은 조용했다. 20살과 공무원을 제외한 우리들은 눈이 쌓인 산언덕을 보며 방황하고 있는 강아지에게 시선을 모았다. 
“먹었으면 좋겠다.”
개구리 아저씨였다. 
“잡아 올까요, 잡으러 갈까요?”
나지막하게 내가 말하자 두 아저씨가 찬찬히 웃었다. 
눈이 제법 쌓일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한 뭉텅이의 차가운 바람이 밀려와 병실의 따뜻한 공기를 그만큼씩 밀어냈다. 건물 아래로 시선을 떨구자 지하 장례식장 현관에서부터 지상으로 통하는 비탈 끝까지,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눈을 치우는 게 보였다.
“병원 입구도 비탈져서 장난이 아니겠는데요? 구급차가 제대로 올라 올려나…….
창문을 닫고 내가 말하자 개구리 아저씨가 대답했다.
“창현이 새끼. 거기 있을 거야.”
불현듯 뭔가를 생각한 듯 개구리 아저씨는 창현이의 사물함을 뒤졌다. 인스턴트 죽만 일곱 개를 모아 놓았다. 뚜껑을 개봉하지 않은 스킨과 로션을 제외하고는 죄다 먹을 것들이었다. 침대 밑 박스를 끌어내 풀자 새것처럼 보이는 베이지색 캐주얼화가 한 켤레 나왔다. 그 순간 쇠골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자신의 하단 사물함을 황급히 열었다. 
“어! 없네.”

어둑어둑해 져서야 창현이는 뺨과 손, 발등이 발갛게 되어서 돌아왔다. 머리칼과 바지가랑이가 젖어 있었고 심지어 정강이에 박힌 이리자로프에도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비 맞은 강아지마냥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싸돌아 다니냐? 그래, 슬리퍼 신고 지금까지 눈 치웠냐?”
TV를 보던 개구리 아저씨가 앉았던 휠체어를 병실문 쪽으로 180도 회전하며 문 앞에 선 창현이를 보고 말했다.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창현이의 침상 식탁 위에 쇠골 아저씨의 베이지색 캐주얼화가 올려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창현이는 예의 그 엉거주춤한 자세와 슬픈 눈동자로 텅 빈 바닥만을 응시했다. 올 것이 왔다는, 혼날 준비가 되었다는 매우 익숙한 동작이었다. 
“너 왜, 개새끼가 눈 오는 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줄 알아?”
창현이는 겁먹은 눈동자만 대록대록 굴렸다.   
“발바닥이 시려 그런 거야. 알아?” 
두 발을 천장에 매 단 공무원이 천장을 보며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쇠골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창현이에게 말했다.
“그게 갖고 싶었냐? 좋아 보였어? 그거 재수 없는 신발이야. 내가 그거 신고 사고 났잖아. 버릴까 어쩔까 꽁꽁 숨겨놓은 것을 어떻게 알고 또 찾았어? 발에 맞어? 너 가질래? 임마야, 말을 하지…….” 
그때 쇠골 아저씨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표정이 일순간 심각하게 변했다. 
“응. 뭐라고? 치아가. 뭐? 치골이? 그래서. 성모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통화를 하면 할수록 낯빛이 점점 검게 굳어갔다.       
쇠골 아저씨는 아주머니와 함께 냉동 해물탕 가게를 했다. 지금처럼 연말이 다가 올 때가 대목이었다. 늦은 밤, 80㏄ 배달 오토바이가 살얼음이 낀 아스팔트를 10여 미터 미끄러지면서 쇠골에 금이 갔다. 수술이냐 자연스럽게 뼈가 붙느냐,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이 있었고 며칠 전 뼈가 잘 붙어간다며 해맑게 웃으며 병실 문을 들어섰었다. 
배달 아르바이트생의 사고였다. 치골이 무너져 내린 거였다. 부모가 와서 한바탕 가게를 들쑤셔놓고 갔다고 했다. 
“왜 이렇게 되는 게 없지…….”
신발이고 뭐고, 비통해 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집어 들고 병실을 나섰다. 그 와중에 창현이는 언제 앉았는지 침대 위에 올라 천연덕스럽게도 베이지색 캐주얼화의 신발 끈을 제 것처럼 대놓고 묶고 있었다. 기가 찬 듯 휠체어에서 일어선 개구리 아저씨가 뻗정다리로 걸어가 꿀밤을 먹였다.
“에라이, 새끼야. 니가 인간이냐? 한번만 더 남의 물건에 손대기만 해봐라. 그러면 넌, 끝이야. 끝.”
그리고 나를 보며 검지를 천장을 향해 가리켰다. 한 대 피우러 가자는 거였다.
방화문을 닫으면 4, 5층 사이의 비상계단은 그런대로 안온했다. 쇠골 아저씨가 앉아 있었고 내가 옆으로 가 골판지 조각을 끌어당겨 깔고 앉았다. 목발을 짚고 선 개구리 아저씨가 담배를 물었다.  
“그 해물탕 말이야……. 맛은 있어……. 오토바이가 위험해. 아무래도 직종을 바꿔야겠어.”
담배 연기가 뭉게뭉게 천장을 뒤덮었다. 꽁초가 담긴 종이컵에다 재를 떨고 내 다리 아래로 내려놓았다. 재를 떨라는 거였다.
“그……. 참, 성모병원으로 가봐야 하나……. 내일은 해물탕이나 먹을까? 가방에 딱 들어가 있거든. 휴대용 가스버너랑 육수도 비닐 팩에 담겨 있고……. 마누라보고 내일 올 때 가져오라고 해야겠어.”
“소주는 제가 준비하죠.”
개구리 아저씨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그때 끼이익 방화문이 열리더니 얼굴 하나가 빠꼼하게 나타났다. 보험사 직원이었다.
“괜찮으시다면 얘기를 좀 나누었으면 해서요. 병실에 안 계셔서…….”

그래도 종합병원인데 1층 로비는 너무 썰렁했다. 비록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원무과 직원 두서너 명이 보였고 환자 몇몇이 휠체어나 스탠드를 끌며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는 게 눈에 띄었다. 로비 한가운데 빈 의자에 자리를 잡자 보험회사 직원이 서류를 꺼내며 말문을 열었다.
“적어 놓은 것 보니까 나이도 비슷하고….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 하죠? 이는 좀 어떠세요? 서울까지 치료하러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 병원에 치과가 없다는 거 잘 알잖습니까.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다 다 알아 본 것 알아요. 필요한 이야기만 합시다.”
“아니, 굳이 먼 데까지 갈 필요가 있나 해서요. 저희 어머니도 동네 병원에서 틀니 해 드렸는데 싸게 잘 하더라고요.”
보험사가 슬슬 화를 돋우었다. 
“이봐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나를 박았단 말입니다. 나는 붕 떴고 거 왜 있잖아요. 차 앞에 평평한데……. 거기다 머리를 부딪친 다음 아스팔트 바닥에 내 앞니를 갈았단 말이에요. 위에 앞니 세 개가 나갔단 말입니다. 난 잘못이 없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거예요. 비싼 임플란트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뿌리를 한번 살려 보겠다고 의사선생님이 노력하겠다는데……. 그런데 동네병원? 틀니?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나는 정말이지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나 또한 잘 합의해서 이 병원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차도로 내려 와 있었지 않습니까?”
확,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리고 싶었다. 놈은 강적이었다. 나는 숨을 골랐다.
“저번에도 얘기했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고 정류장이 움푹 안으로 들어간 데라 그렇지 않으면 버스번호를 알 수가 없어요. 원래 그 정류장이 그런 데에요.”
“그래서 우리 측 과실율을 100%로 양보 하겠다는 겁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경태씨 과실도 조금은 있습니다.”
“정말 이러면 이야기 못합니다.”
“대리인을 세우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경태씨랑 합의를 잘 하고 싶습니다.”
머리가 띵하고 뒷목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대학원을 다닌다고 그러셨죠? 우리 보험사 약관상 학생에게는 휴업보상금이 책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시근로자 일일 휴업보상금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보험사는 라이프니츠 계수를…….”
“관둡시다. 일단 치료부터 끝나고 그때 가서 합의 하든 소송을 하든 하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험사도 따라 일어섰다. 
“이경태씨께 하나만 말씀드리죠. 경태씨는 개인이고 우리는 거대 보험삽니다. 우리에게는 날고 기는 변호사가 많습니다. 매일같이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합니다. 소송하면 경태씨만 손햅니다. 소송 들어가면 다른 전담팀이 맡기 때문에 차라리 제 입장에서는 속 편합니다. 잘 해드리고 싶지만 저도 월급쟁이죠. 우리나라 보험체계가 말도 안 된다는 거 잘 압니다. 근데 그게 우리나라 현실인 걸 어떡합니까?”   

“경태씨. 자요?”
“잠이 안 와요.”
누운 자세에서 약간 고개를 들자 휠체어를 탄 개구리 아저씨가 내 침대 바로 아래서 마감뉴스를 보고 있었다. 병실을 소등했기에 브라운관 불빛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개구리 아저씨 얼굴을 비쳤다. 
“아저씨? 아무래도 병원이 곧 망할 것 같죠. 병실 회전율도 그렇고……. 텅 빈 5층뿐만 아니라 4층에도 빈 자리가 더러 있대요. 점심 때 들었는데 최간호사도 다른 병원으로 간다던데……. 이건 제 생각인데요. 보험회사하고 의사, 간호사 얘 네들 한 통속이 아닐까요?”
한껏 소리를 낮춘 TV가 가늘고 허약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비집고 개구리 아저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보험회사 직원이 왔다 가면 대부분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져……. 너무 깊게 생각하면 몸에 안 좋아. 억울해 하면서도 인정해야 될 게 어디 한두 가지야?”
개구리 아저씨의 목소리가 마치 도란도란 흐르는 시냇물 같았다.
“내가 사고 났을 때 레미콘 운전수가 한번만 살려달라고 싹싹 빌더군. 충분히 보상해 주겠다고……. 그런데 처음 수술 끝나고 병원비 계산할 때 되니까 말이 바뀌더라고. 지금도 소송중이야. 끔찍한 거지. 지금까지 병원비는 죄다 내 돈 썼어. 그치만……. 웃잖아?”  

평소보다 이른 아침. 열려진 병실 문으로 황급히 과장이 들어서면서 회진이 시작되었다. 창현이는 그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20살 방장에게 다가간 과장이 상처를 확인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되겠어. 포항에 아는 선배가 있는데…….”
따라 들어 온 간호사를 보며 고개를 한번 까딱해 보였다.
“소개 좀 시켜줘.”
다음은 개구리 아저씨 차례였다. 
“오늘도 한번 굽혀보죠.”
“으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감은 붕대로 빨갛게 피가 새어 나왔고 아저씨는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직도 덜 굳었네.” 
귀를 후벼 파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뱉고는 쇠골 아저씨와 공무원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은……. 좀더 두고 봅시다. 그리고 아! 이경태씨. 퇴원… 하시죠?”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짧고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내가 말했다.
“싫 습 니 다.”
과장은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바쁘게 병실 문을 나섰다. 그때 20살 방장이 의사의 뒤통수를 향해 유리병을 던졌다. 유리의 파열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종이학들이 병실 가득 날았다. 깜짝 놀란 창현이가 잠결에 침대 난간을 타넘었고 이내 ‘쿵’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과장은 412호를 오늘도 건너뛰었다. 아예 안 갈 작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분명 412호 산재환자들은 우리 병실에 몰려와 또 징징거리다 물리치료실로 몰려 갈 것이다. 
“오오우 오우, 오우. 아파, 아파.”
떨어진 창현이의 비명 소리가 구슬펐다. 


김석렬∙1971년 경북 경주 출생. 2008년 ≪리토피아≫ 신인소설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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