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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박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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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람
눈뜨고 있는 상처 외 1편
검은 하늘에 틈이 밝다
흉터는 문이고 문은 스스로 넓어졌다 좁아지는 시절에 잠시 살고 있다
좁은 곳이 넓은 곳을 가리는 일
꽃핀 모양이 온 나무를 짊어지고 있듯
흉터는 그 부위를 짊어지고 다닌다.
눈이다.
저 상처는 한 번 감았다 뜨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그 틈이 눈이고, 그 틈으로 고통이 걸어간다.
모든 길의 처음이 그러하듯
상처의 처음은 미간이 구겨지는 일이고
가늘게 열리는 저 흔적은 어느 모양의 거대한 흉터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눈은 몸의 가장 바깥에 있는 상처, 평생 아물지 않는 그 틈이 평생을 밝힌다
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外部
그 사이를 굳이 말하라면 불편이다.
처음의 고통은 환하고 중도의 고통은 너무 팽팽하다
지퍼를 열듯 생겨나는 상처들
저 눈은 벌어지는 상처인가 닫아지는 상처인가
한 번도 차가운 허공을 떠난 적이 없는 눈
뒤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과 뒤가 없는 것들이다.
피크닉 트레일러
―벌판에 피크닉 트레일러 한 대가 나무에 묶여 있다.
나무는 벌판에 묶여 있은 지 오래, 저것들은 언제 사라진 피크닉들일까?.
쓸모없는 그늘들이 잎을 녹슬어 가게하고 있다. 정착은 몸의 한켠에 붙어 늙어간다. 서쪽 하늘은 빗물 자국 따라 녹이 슬어 있고. 그동안 어떤 풍경이 운전해와
이곳을 버려두고 떠났을까
바퀴 빠진 피크닉은
바람도 없어 정차에 묶여 있고
멀리 보이는 길은 비행운처럼 휘어져 있다
소풍만 남겨놓고 나무 밑 그늘돗자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주차된 피크닉에 묻어있는 달리던 바람
서로 들여다보는 창문
떠나온 곳이 아니라 떠나온 것을 그리워하는 피크닉의 생활
길의 끝에서 뭉쳐오는 먼지를 바라보는 휘어진 길
바퀴자국을 깔고 자국에 묶여 있는
서있는 여행 중인 트레일러
불도 들어오지 않고 블라인드만 쳐져 있는 벌판의 소풍
떠나고 싶다는 말끝에 한 번도
돌아온다는 말을 열어주지 않은.
신생의 地名들, 나를 끌고 가 줄래?
닫힌 왼쪽의 소리들이
열려진 오른쪽 창문에서 더 가깝게 들리는 계절, 걸리지 않는 시동은 먼 곳에 있고
꽁무니만 남아 있는 소풍
地圖는 어느 나무에 매달려 곧 떨어질지 위태롭고 휘어진 길은 바람이 지나간 흔적의 뒤를 따라간다
벌판은 트레일러를 끌고 천천히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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