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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황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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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순
출입금지구역 외 1편
천장과 식탁을 오가며 거미가 덫을 놓고 있었다
밤에 들어온 거미는 잡는 게 아니래
식당 안주인이 파리채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거미는 아랑곳 않고 바빴다
밤낮이 무슨 관계랴 가을이 오는데
오늘밤은 색다른 먹이가 필요해
뭐든 회쳐서 잘근잘근 씹고 싶어
입안이 근질거렸다
나는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와
목소리를 깔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입이 금지된 뜰에 덫을 놓고
늘 까탈지게 굴던 그가 발이라도 삐끗하여
걸려들길 기다리는 중인데 글쎄
어라 이게 누구신가, 반색을 했다
이런, 한 방에 걸려들다니
작전은 성공이었다
식당 천장이 환해졌다
거미는 아직도 작업 중
식욕이 돋는 밤이었다
부음을 듣다
날개도 없으면서 날아오르려 애쓰던 육신이 있었다 욕심만 홀딱홀딱 집어 삼키며 배설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육신을 부러워했다 작은 눈은 세상을 비웃는 듯했고 검지로 귓구멍을 항상 틀어막고 다녔다 손가락만 활짝 펼쳐도 구경꾼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모여들었다 한 뼘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그를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가끔 책장을 찢어 잘근잘근 씹기도 하는 그는 날아가는 시늉만 해도 관절 나사가 풀렸다 풀린 관절 몰래 조이는 그와 딱 한번 눈 마주본 적 있다 나는 그의 쓸쓸한 배경을 지우며 눈길을 돌렸다 그 후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쪽과 저쪽 물가만 오가던 한 다리 없는 왜가리가 기우뚱 비상을 한다 한쪽으로 자꾸 쏠리는 중심을 다잡으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고요한 호수와 나무와 물그림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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