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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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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02회 작성일 09-02-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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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휴일 외 1편

반대 방향에서 밑돌을 박고 돌아와 석공은 비에 젖은 등을 내려놓았다. 여자 같은 건 있지도 않은데, 왼쪽 주머니가 축축하게 젖고

비 오는 밤마다 석공은 바닥에 누워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고기들을 기다렸다. 여자 같은 건 있지도 않지만 그는 손을 움켜쥐었고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바닥에도 목수건, 홑이불, 트랜지스터 라디오, 스프가 있으니 촌스럽게 가난 같은 건 사전에만 있는 말.

설계도면 0의 지점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밤에도 지느러미를 움직여 물고기들은 바닥을 스쳐 간다. 그는 눈을 감고 비린내를 핥아본다. 젖은 도면에서 물구덩이가 일렁이고 있다. 등 굽은 물고기들이 끝없이 밑으로 내려가고 

저수지의 둠벙에 빠진 이 동네의 연혁은 읊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십장은 삽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래도 모서리들이 자꾸만 둥그렇게 썩어가잖아요. 이제 무언가를 박고 세우는 짓은 깊고 어두워지는 너의 표정으로 마무리 짓자. 십장은 구덩이를 파고 물고기처럼 입술을 지우며 울었다. 이봐요, 촌스럽게……

남은 형판을 쓰다듬다 석공은 손끝에 돋아나는 비늘을 만져본다. 0은 아무 모형도 없는 좌표. 잘못된 것은 없어. 다만 휴일에도 자꾸만 실패하는 공사가 있다. 그는 돌을 쓰다듬는 직업. 돌을 세우는 직업. 지느러미를 흔들며 돌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티 아이들

삼겹살을 먹으며 우리는 
죽은 아이를 
20여 년 동안 뱃속에 넣고 살다가 죽은 
익명의 노파에 대해 말한다 그 살들은 
어디로 갔을까? 
뢴트켄 사진처럼 투명하게 
노파의 심장 속으로 들어갔을 거야 
구덩이를 파듯 우리는 
붉게 달아오른 철판을 파내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아이티공화국 아이들은 죽을 때 
수백 마리 회충을 품고 
어디론가 흘러간대 그 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고 우리는 
서로의 눈 속에 솟아오른 
이상한 융기를 들여다본다
이상한 흉기를 들여다본다

삼겹살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져 
불 속의 사물들을 조금씩 덮고 누워 
그 잠을 떠올리면 
딱딱한 방 안을 껴안는 기분 
아무도 모르게 몸의 피들이 
네모난 모양으로 흘러가고 
한 살배기 아기를 두고 온 너는 천천히 
창문에서 머리를 떼 내 
섬 밖으로 걸어 나간다 
타다 만 구덩이 속으로 깜박 
오른손을 놓친 나는 
한쪽만 남은 손으로 
차가운 밸브 관을 쓰다듬으며 
한 번도 아이를 가져보지 못한 
불능의 암컷인 나를 들여다본다 
창문에서 회충들이 꼬물꼬물 
화염에 휩싸인 섬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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