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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남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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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
여름에 들다 외 1편
―지구촌 멸치덕장
*우리는 후리를 당한 멸치들처럼 떼로 사로잡혔다
파도타기 하는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육대주 오대양을 휘돌다가
후릿그물에 사로잡힌 멸치들이
지구촌 멸치덕장에 떼로 누워 있다
아버지는 속 깊이 바람이 드셨지요
바람 든 아버지는 육대주 오대양에
서자 길동이들을 줄줄이 낳으셨지요
대멸 중멸 소멸 자멸
굳이 가르면 나누어지기도 하겠지만
뒤섞여 그때도 지금도 고만고만한
어쩌면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멸치들이
이글대는 태양 아래 키재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적자가 되고 싶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를 신이라 연이어 외치며
아버지만 우러르며 몰려다니던
서자인 세계화의 길동이들이
바짝바짝 똥줄이 타는 얼굴로
푸석푸석 피와 살을 말리고 있다
멸치들을 꼬드겨
육대주 오대양을 넘나들던 첫 바람은
널름거리던 혀 숨기며 뒷걸음질 치며
빠르게 물 밑으로 잦아드는데
후릿그물에 떼로 사로잡힌 멸치들이야
덕장에 너부러져 가무러지든 말든
적자의 꿈을 버리지 않은
제국의 영원한 서자 길동이들이
또 떼로 모여 후릿그물 바깥에서
이어 칠 후릿그물에 사로잡힐 시간을 위해
한 입 거리 밥상 아직 차리고 있다
여름에 들다
―촛불잔치
하필이면 밤이었어
꾀하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오는 그믐이었어
달은 자고 별은 미처 일어나지 않았어
브레이크 없는 차를 달리다가 전봇대를 받았어
하필이면 내리막길이었어
엑셀은 애초부터 밟지 않았어 뒤로 가는 차였어
전봇대가 쓰러졌어 마을에 불이 한꺼번에 사라졌어
쓰러진 전봇대 넘어 촛불이 켜졌어
한 집 건너 촛불 두 집 건너 촛불이 켜졌어
이윽고 한 집 두 집 건너지도 않고 세 집 네 집 촛불이 켜졌어
마침내 온 마을이 촛불잔치 마당이 되었어
아버지는 이빨이 다 빠지셨지요
뒷동산에 올라 옛노래를 들으셨지요
옛노래가 끝나자 밤새 으르릉거리셨지요
으르릉 소리만으로도 지축을 뒤흔드셨지요
하필이면 낮이었어
예보된 대로 날은 매우 흐리고 큰 바람이 불었어
풀은 빨리 누웠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어
브레이크 없는 차를 달리다가 전봇대를 받았어
하필이면 내리막길이었어
엑셀은 애초부터 밟지 않았어 뒤로 가는 차였어
전봇대가 쓰러졌어 마을에 불이 한꺼번에 사라졌어
쓰러진 전봇대 넘어 촛불이 켜졌어
한 집 건너 촛불 두 집 건너 촛불이 켜졌어
이윽고 한 집 두 집 건너지도 않고 세 집 네 집 촛불이 켜졌어
마침내 온 마을이 촛불잔치 마당이 되었어
아버지는 이빨이 다 빠지셨지요
뒷동산에 올라 옛노래를 들으셨지요
옛노래가 끝나자 낮내 으르릉거리셨지요
으르릉 소리만으로도 지축을 뒤흔드셨지요
* 2연의 2~3행은 김수영의 시‘풀’의 이미지를 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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