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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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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혁
발바닥 외 1편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꽃은 피고 지고
더 이상 머무르지 마라
길은 나를 알고 있었고
나는 모든 길 위에서
하나의 기억이었네
머물면 그대로 뿌리가 되는 거고
걸을 때면 비로소 내가 되는 거지
그 걸음이 퇴근 무렵의 골목길에서든
풍경을 밟고 가는 무심한 거리에서든
햇살은 쏟아질 거고
비바람에 쉰내가 배기도 할 거다
절벽 같은 마음으로 길을 핥아본다
나는 길의 미식가
누추하고 남루한 사연은 좀 접자
내가 닿아야 그제 길이 되는 거고
모질게 뜯어낸 마음 한 자락이
길 위에 꽃잎처럼 흩어지는 거라
바닥을 만나자 떠나는 심정으로
길을 뜨네, 세상을 뜨네
배신의 힘으로 앞으로 가네
모든 걸음에는
반성의 굳은 살
밤마다 하늘에 흔적 남기면
모처럼 그림자에 기대 쉬지
나는 가장 낮은 혓바닥
얼얼하고 또박대는 진통의 낱말들
아득하고도 멀다
어디에서, 어디론가
그제 밤 술을 마시고 걷는 길입니다
걸음은 흘러가지만 길은 흔들거렸습니다
눈짓으로 살아있다 라는 말을 발 앞에
새겨보았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론가
별들은 끊임없이 반짝이지만
살아있기에 한 군데 두지 못하는 눈빛,
저는 몇 잔 술에
길을 거꾸로도 거슬러 봅니다.
말도 눈물도 밤공기에서는
단단히 부딪혔다 떨어집니다.
이런 시간에는 겨울 다 지나도록
끝끝내 달려있는 老葉이
더 크게 보이곤 합니다
어디에서, 어디론가
간다는 말은 음험한 농담
흘러가는 건 말이 아닙니다
낮은 곳에 묵혀둔 몸뚱아리
지고 가는 移葬의 밤
끝은 늘 깜빡입니다
별처럼 혹은 눈꺼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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