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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이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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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6회 작성일 09-02-26 17:45

본문

이은규
역방향으로 흐르는 책 외 1편

 
바람은 종종 없을 대답을 휘게 한다
모든 게 순리라는 순간의 뒷말을 믿어, 믿지 마
치장된 위로 앞에서 방향을 잃는 것들  

방향에 대한 구름의 감각을 오래 부러워한 종족이 있다

역방향의 기차는 
거꾸로 읽기 시작한 책 속의 문장처럼 낯설게 좋다
독법에 의해 내용이 달라지는 

왜 당신의 책을 거꾸로 읽고 싶었을까
마지막 장에 찍힌 쉼표,
당신의 방향이 마침표 대신 쉼표 쪽으로 휘어져 있음을 알겠다
끝 문장으로 첫 문장을 되묻는 

이번 생도 도돌이표의 구름이 되어 오래 흐르겠다 

기차는 두 방향으로 충실하고
순방향이 먼저 보고 놓아버린 구름들을
역방향의 얼굴이 거둔다
방향 없이 구름은 다만 흐를 뿐 
속도에 찢긴 한 점, 꽃의 붉음이 허공에 덧발라진다

먼저 부를 수 없는 허공을 가진 꽃처럼
먼저 부를 수 없는 당신의 시는 거꾸로 읽기 알맞다
즐거운 난독에 시달리다 잠시 책을 덮는 오후
바람만이 무릎 위의 문장들을 읽다 간다  

구름에게 묻는 정착지의 기후는 어떨까
목적지는 다만 정착의 순간들일 뿐
모든 게 순리라는 위로와 결별하기 좋은 오후
끝 문장의 쉼표는, 첫 문장 마침표의 도돌이표


 


 
죽은 새, 별

 
바람과 내통하는 호흡에게 새는 무엇일까

높은 곳에 사는 바람은,
높은 곳을 탐했던 귓바퀴에 머물러 있고
건기에 시달린 호흡은
눈물맛의 수증기 쪽으로 오래 휘어지다 지쳤을 것이다 
비가 될 혹은 바람으로 깨어질

언제쯤
빙벽에 매달려있는 당신에게 갈 수 있을까
그날 한 점 호흡마저 살뜰히 거두어갔을 바람
언 동공에 새겨진 내력을 아직 읽어내지 못하는 귀가 있다 
    
춥지?
나는 정말 물을 수 있을까
눈을 감겨주려는 어리석은 짓만은 하지 말 것, 참을 것
다만 입김을 빌어 언 동공에 잠시 물기가 돈다면
설산의 밤 죽은 새, 별 하나 돋을 것

언젠가 후생으로 몰아쉬던 새의 숨소리를 들었다
높은 곳을 탐하다 찢긴 날개를 퍼덕이며 
날숨과 들숨의 사이를 얼리고 있던 새의 가슴
불규칙한 호흡에 생을 맡긴 것들의 내력은 바람이다 

흰 눈을 수의처럼 입고 잠든 새,   

바람을 품다 잠든 것들의 언 동공은 이미 풀리지 않는다

빙벽의 고요는 일용할 양식
당신이 두 팔을 날개처럼 포개어 그늘을 품고 있다
잠든 새, 흰 빙벽을 이불처럼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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