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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신작시/천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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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97회 작성일 09-02-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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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미
오타에 대한 변주 외 1편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 진실과 이해로써 하나를 이루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을 지성으로 아끼고 돌봐주신 여러 어른과 친지를 모시고 서약을 맺고자 하오니 바쁘신 가운데 두 사람의 장례를 가까이에서 축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인이 보내 온 결혼식 청첩장을 읽다가 입안에 돋은 혓바늘 같은 거치적거림이 있다 ‘장래’를 ‘장례’라고 잘못 적은 것인데 오타가 아니라 맞는 말이라고 우기고 싶은 내 꼼수,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데 결혼으로 장래를 약속하는 건 사랑을 죽이는 일  
일찍이 나는 스물두 살에 내 장례와 장래를 약속한 후 아직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 낳은 죄, 이십년 째 바람을 사랑한 죄 
님이 남이 되지 못한 신파, 내 사랑은 여전히 느낌표 하나에 물음표가 서너 개, 어때요? 바쁘신 가운데 현재 진행형의 장례를 바람처럼 달려와 축복해 주시지 않으렵니까.


 


풍어제

 
한바탕 난타가 지나간 뒤 주검이 되어 차려진 고요, 짠맛에 길들여진 광어 한 마리 익숙지 못한 민물에 코가 걸려 헐떡거린다. 윤사월 수의 같은 윤기 흐르는 상추쌈에 염습한 식욕, 간 맞은 초장에 얼버무려진 살점은 어부의 뱃길에 무사안녕을 바라는 소신공양.
거나해진 사내가 앞소리 메듯 아지매! 
여기 뜨거운 불 한 병 더, 
송정동 어촌계 출항을 독촉하는 장군나무* 메김 소리 한 줄 선창하자 졸고 있던 만장이 일제히 일어선다.
가자, 
망망대해로 
화장장보다 뜨거운 당신의 입속에서 단침을 발라가며 살점을 태워다오.
아싹아싹 산해진미의 예행연습을 위하여.

* 장군나무:부산시 해운대구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소나무로 주민들은 이 당산나무 앞에서 매년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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