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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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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29회 작성일 09-01-1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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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
잠실엔 누에가 살지 않는다 외 1편


잠실엔 누에가 고치를 틀지 않는다 회색 가지에 타원형 잎 둘러친 하우스들만 즐비하다 인터넷 게임방엔 25시간 메일이 날아다닌다 뒷담 넘어 자동차 극장이 지붕을 이기 시작했다 그는 캡슐 모양을 선호한다 모서리를 둥글게 마감한 밀실에 빛이 가려 벽체 안쪽으로 조금씩 그가 지워진다 생활 집기는 붙박이형으로 맞추고 창이란 창은 모두 검은색 선팅지를 바른다 방음과 사우나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속이 보이지 않는다 거추장스런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즐겨찾기’ 사이트에서 친구를 만나 키득대기도 한다 쉬지 않고 백여 개의 유선 채널을 서핑한다 새로운 메일이 궁금해 웹 바다를 들락거린다 쇼핑몰 쏘다니다 피자 한 판 주문한다 만능 수퍼마리오가 괴력을 보이는 PDP에 푹 빠진다 우듬지까지 뽕잎을 갉아대던 누에들이 잠실로 숨어든다 코쿤하우스가 주렁주렁 달린다 실금 그어진 틈새로 빛이 새어든다 손톱으로 후벼판다 몸이 빠져나갈 만큼 구멍이 벌어지고 벽은 허물어진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나비가 기지개를 켠다 날개를 고르며 빌딩 숲속으로 사라진다 뽕나무가 통째 뽑혀버린 자리마다 코쿤족들이 둥지를 틀었다


사랑니를 뽑고 싶다


이라크 시민들의 초췌한 항의집회를 CNN 뉴스에서 방영한다 총성 울리면서 화면 지지직거림, 잠시 후 주인 잃은 신짝 나뒹구는 광장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급히 화면 바뀜, 부시는 주둔의 명분 늘어놓는다

부지기수로 밀려오는 파랑 헤치며 지깅낚시를 다녀왔다 빛의 흔적 지우며 끌어올린 팔뚝만한 부시, 부시, 부시리로 회를 뜨고 대가리로는 매운탕도 끓였다 TV에 정신을 빼앗겨 뼈까지 으깨 씹다가 억센 가시가 잇몸에 박혔나 보다 어금니가 쓰리고 아프다 아작 내리라 적의의 이빨 드러냈지만 부실한 잇몸은 기어이 출혈로 매운맛을 치렀다 혹독한 통증에도 멈추지 않는 혈, 혈로 뭉친 혈맹도 윗니 아랫니 구별된다는 걸 마흔 훨씬 넘어서야 눈치만 챘다 움직이지 않는 윗턱은 멀쩡한데 쉬지 않고 씹어대는 아랫턱은 쓰리고 아리다 고통도 주로 낮은 쪽으로 흘러내린다 그래선지 사랑니도 아랫턱에서 앓았다

누군가 바빌론의 유전에 깊이 박아놓은 가시 탓인지 이라크 시민들은 아직 사랑니를 뽑지 못하고 있다



임윤∙2007년 ≪시평≫으로 등단.
추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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