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1호 신작시/임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24회 작성일 09-01-19 19:28

본문

임효
말, 달리자 외 1편


한나절 다려온 명사십리 모래사장
한밤내 달려온 말의 어둑신한 숨소리로
회색의 지프 한 대 멈춰선다
가쁜 숨 길게 몰아쉬며 발굽을 정리하곤 
눈빛 슬그머니 거두어 놓는다
아직은 열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내
스스로 안장에서 내릴 줄 모른다
바람에 떠밀리며 스크럼을 짜 구릉으로
시위를 하는 명사십리 모래 둔덕
사내도 대열에 끼어 모래 바람을 맞는다
바다, 검은 구멍에서 하얗게 지워진
시간을 당겼다간 풀며 날것을 찾아보려 하나
걸리는 건 목안의 구릉이다
제가끔 모래의 말에 걸려 컥컥대지만 
더 단단하게 응집될 뿐이다
사내를 둘러싼 신산스런 바람이 불 때마다 
사내의 목구멍엔 명사십리 
모래보다 더 촘촘한 구릉이 들어선 것이다
허구렁이 탄탄한 길이 되기도 하나
사내는 안다 목구멍에 자리한 구릉은 
귀퉁이 하나 허물리지 않는다는 것
급기야 목의 구멍을 메꾸어야
힘을 풀고 스크럼을 해제할 것이다




사내, 밤의 구멍을 향해 울음을 토할 때
구멍은 울음조차 삼켜버리고 만다

말은 다시 힝힝대며 달릴 준비를 한다


재크와 콩나물


소년의 팔에 싱싱한 링거줄이 꽂혔다 달디단 수액을 끌어올릴 물관부에서 휘도는 유전자들을 온몸 깊숙이 저장한다 쑥쑥 자라는 소년의 줄기는 한 눈 팔지 않고 오동통 살을 찌운다 뼈 없는 양념치킨을 거뜬히 소화시키고 비타민 알부민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소년의 줄기는 성장통도 거부하는데 문득 부딪친 거인의 부름켜, 바짝 긴장한 뿌리들 사이 잠이 든 꿈자리는 흑백의 기억으로 남았다 다시 푸른 이파리가 자라고 또 자란다 더 많은 수액이 필요한지 유기농의 혈액이 동원된 콩나물 시루 무시로 차오르는 실한 뿌리에 윙, 윙 황금빛 안테나를 뽑아 올린다 저마다의 주파수에 맞춰 타고 오르며 주섬주섬 챙겨든 올망졸망한 머리들 벗겨야 할 모자인 듯 인정사정없이 뿌려대고 사라진다 게릴라성 소나기에 소년은 휘청하지만 흥건한 빗물에 우뚝 선 거인은 병들지 않을 음표를 뜯고 있다 투둑, 툭 돌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턴테이블 위 아날로그 해적판 선명히 찍힌 흑백필름 속 성장판을 해독하지 못한 결핍이다 소년은 판을 열지도 않은 채 진열장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거인의 손 닿지 않을 곳에서 음표들 성장한다 뼈 없는 빈 모자들조차 이빨 없는 입을 오물거리며 마지막 횡경막을 들어 올린다 

보온병 뚜껑을 열자 뜨거운 입김을 쏟아내며 거인이 몸을 확, 풀어 헤친다 소년은 김 빠진 콩나물국이라도 한 입에 후루 후루룩 들이마시며, 낡은 전축을 켠다 거인의 해적판에 바늘을 꽂은 채 소년이 LP판 위를 빙글빙글 겉돌고 있다 



임효∙2007년 ≪리토피아≫로 등단.
추천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