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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8년 겨울호) 특집/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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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무서운 신예들의 ‘나의 문학’
안녕히 가세요
박준|시인
문학이 망했다. 더 큰 문제는 사실 인류도 이미 망했다는 것이고,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지구에서는 앞으로 1000년은 고사하고 100년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 말했고 1989년 서울시 은평구 불광2동 180번지 일대에 찾아온 한 여자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 놓은 자리에서 자신을 여대생이라 소개하며 외계인들은 일단 물러갔으나, 조만간 다시 찾아와 우리는 곧 멸망할거라 말한 적이 있다.
망한 점포는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니다. 당분간 갖는 정리의 시간, 우리는 지금 그 시간 위에 살고 있다. ‘그간 성원에 감사드리며 오늘까지 전품목 80% 세일’이나 ‘사장님이 미쳤어요’ 같은 문구를 내걸고 돈이 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판다. ‘신용’ 카드는 물론이고 교환이나 환불도 꿈꾸지 말자. 우리는 지금 돈이었고, 재화는 말할 것도 없으며, 공기나, 물은 이미 신상품 대열에서 밀려 난지 오래, 요즘엔 도보로 여행하는 길도 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돈돼지’ 같은 삼겹살집 상호에 감탄하다가도 자꾸 우울해진다. 아마 이 시간은 얼마간 계속될 것이다. ‘오늘까지만 장사합니다’라고 적어 놓은 곳치고 정말 ‘오늘’ 끝나는 점포는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벽 즈음 그곳을 지날 때면 자꾸 물건이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한 가지 절망스러운 사실은 그런 점포가 오래 가는 것 또한 본적이 없다는 것이고, 한 가지 희망스러운 소식은 점포에서 문학은 좀처럼 팔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세상에 위기가 아닌 것들이 있었던가? 지금은 정말 위기인가? 혹은 문학이 언제 한번이라도 문학인 적이 있었던가? 당연히 문학은 위기여야 하지 않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아주 깊은 쾌락으로 빠져든다.
또 나는 현대라는 말에서 ‘위기’라는 느낌을 곧잘 끄집어낸다. 해서 이건 1989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TV드라마 「서울 시나위」에 나오는 박상원과 변우민, 이미영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때문에 한창 짜증이 나 있었다. 어느 날 동네에 이미영처럼 하이얀 여자가 흘러 들어왔다. 그녀는 긴 머리를 자주 쥐어뜯었고 청록색 남자 남방을 입고 다녔으며 자신을 대학생이라 우리에게 설명했다. 예년 같았으면 돌을 던지거나 노래를 부르며 쫒아 다녔겠지만,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그해 여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구와 땡칠이」의 영향으로 바보나 미친 사람에게 관대해 있었다. (그 영화 속에는 우리의 영구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옳은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영구를 미친 사람으로 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그녀가 대학생이 맞는지 몇 가지 테스트를 했다. (당시 동네에서 우리가 아는 ‘대학생’은 아무도 없었고 우리들의 부모 또한 한번도 ‘대학생’인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국보1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은? 같은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내가 던진 질문은 대학교 교가를 한 번 불러 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영처럼 활짝 웃으며 ‘대학에서는 교가를 부를 일이 없어’ 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이 대답으로 우리들 사이에선 그녀가 정말 대학생이다, 아니다 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나는 그때부터 그녀와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난해했지만 우리나라에 남자 간호사가 있다는 이야기나 외계인의 공습으로 인간이 곧 멸망할거라는 이야기처럼 알아들을 수 있었던 몇몇 이야기들을 나는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그녀가 떠나고, 곧 남자 간호사가 있다는 말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아직 인간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사랑을 한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시를 적었으며 대학생도 되었다.
망해가고 있는 세상에서, 내게 시란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유서遺書 같은 것이다. 내가 지금 두 달 째 잡고 있는 시는 분당 서현역에서 손을 두 번 흔들고 떠난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 비겁한 논리 확장이 되겠지만, 세상에는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그것들과 쉽게 친해졌으므로 나의 시는 창작보다는 취재나 대필에 가깝다. 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의 유언을 받아 적는 것이다.
나도 직접 유서를 써 본 일이 있다. 군대에서였다. 신병훈련을 마친 나는 군용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자꾸 가고 있었다. 포천을 지나고 나니 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철원이었다. 자대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손톱을 깎고 유서를 쓰는 일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죽기에 바쁠 것이므로, 이곳에서는 미리 유서를 써 두어야 한다고, 내 양말과 속옷에 중대와 소대이름을 적어주며 고참이 말했다. 그는 탈영을 하고 싶으면 무조건 남쪽으로 걸어야 하고, 부대 주변에 아직 지뢰가 많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친절하게 덧붙여 주었다. 당연히 그것은 고참들이 신병에게 겁을 주기 위한 액션 같은 것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심각했다. 천천히 유서를 적어 내려갔다. 노트 두 장을 꽉 채웠지만 내용은 별 게 없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맙다, 미안했다, 사랑한다.’ 의 반복이었다. 신기한 것은 어느덧 내가 고참이 되어서 갓 들어온 신병들에게 유서를 적으라고 했을 때, 그들의 유서 또한 내 유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시詩의 처음과 끝이 ‘서정’이듯, 유서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이건 법칙이다. 얼마 전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나서 그분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그분의 유서 또한 이 ‘유서의 법칙’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故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중 일부
내가 사라지는 것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이유는 그것들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념해서는 안 된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내 시는 그것들을 안락사 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려면 온전히 소멸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온전히 존재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멸망을 50억년 후로 본다. 죽어가는 태양이 행성들을 불태울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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