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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이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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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영
촛불에 대한 단상들 외 1편
2008년 2월
상징이 탔다
누가 점화한 것이다
560년을 한 분노에 기름 붓고 나라가 정한 국보 1호를
검은 삭정이로 뭉그러뜨리기 전에 수천수만의 심장이 먼저 검게 뭉그러졌다
바람이 운다 바람이 달린다 좁은 길 뼈 사이사이를 들쑤시고 헤매는
바람 앞에 내 마음을 아는가
얼마나 비굴한 모습인지 바람의 그림자
生에 애착이 죽음보다 극렬하다
문풍지로 감싸 안으면 날빛보다 더 밝은 밤인데
겨우 얼굴 하나를 비추는 光輝.
축제 때 그 작은 황홀을 지핀다
당신의 생일이든가
당신이 소생한 날이든가
당신의 죽음 비릿한 냄새 없애려고 태우기도 하는 그 그을음
停電이 잦던 시절 습관으로 준비해 둔 한 자루의 威力이 세종로 한가운데 섰다
촛불을 끄지 못하는 바람? 바람을 삼키는 촛불
축제가 끝나면 엄지와 검지로 타는 심지를 잡는다
검은 불의 뿌리[귀두]를 잡고
나도 너 너도 나 함께 흘러내리던 눈물을
때론 고체화시켜야 할 날들이 온다
다시, 못다 잔 잠 청하기 위하여 죽을 필요를 느낄 때 죽는 것도
지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바람이 오기 전에
그냥 지구다
불과 함께 우주로 올라간 이소연씨
우리나라에선 최초 우주인이라고
세계에선 475번째라고
여성으로선 49번째라고 하며
초파리 실험을 하고 무중력에서 떠다니다가
우주에서 무엇을 갖고 왔다고들 하지만
그녀의 視覺:
지구는 매우 파랗고 매우 한가롭고
국경도 없고 국가도 없는 지구는 그냥 지구다
그 그릇에서 나는 버젓이 살고 있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 흘러넘치지 않고
전쟁과 활화산 도시를 삼키는 사이클론이 껴안고
산과 들과 소나무가 껴안고 있는 안개별에서
한가롭게 자전하는 팽이 비틀거려서 아름다운 푸른 보석
아프리카도 아메리카도 아닌
미국도 중국도 독일이나 한국도 아닌 그냥 지구에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독도도 아닌
강남도 강북도 경기도도 아닌 그냥 지구에서
개미와 먼지와 버젓이 살고 있다
나와 너와 그들로 인해
지구는 살고 있다 아직
이귀영∙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달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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