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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조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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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아무 일 없이도 외 1편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는 당신이라는 저 편이다 나무가 분홍운무의 시간을 벗어 공중에 걸었다 바람이 분다
텅 빈 공중연못에 유목의 끌이 스친다 바람이 나무를 건너는 동안 한 그루 판화가 허공에 걸린다 이마 위 높고 낮게 패인 파고를 올려다본다 제 수심을 가장 높은 음역으로 밀어올린 꽃나무 아래 물결소리 듣는다
꽃과 꽃 사이, 꽃잎과 꽃잎 사이는 성글다가 엷다가 불현듯 깊어져 엎질러진 듯, 엎지르는 일은 없이 홀로 쟁쟁하다…… 고요한 내재율이 못물처럼 흔들린다
바람 스산해지고 이동하는 벌판처럼 구름장 밀린다 낮아진 조도 아래 꽃나무 깜박 어둡다 옅은 얼음이 자박자박 끼이는 듯 차갑고도 깊어진 분홍
마음 없이도 저문, 꽃그늘에 패인다 누가 내게 전지가위를 들려다오 꽃나무 깜깜하다 구름이 나무를 건너는 동안 꽃들의 살얼음이 햇빛 속으로 스러지는 동안
한 그루 꽃나무 햇빛 깊숙이 걸어들어 간다…… 아무 일 없다
나침반
운다
……
달래도 듣지 않는다
그곳
문간이
망연하다
저 파들대는 짐승,
목에
맑은 울음이 고여
조정인∙1953년 서울 출생. 1998년 ≪창비≫로 등단.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및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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