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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이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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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84회 작성일 09-01-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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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우
망치 치는 거인* 외 1편


신문로 1가에 가면  
어디선가 망치 소리 들려온다
24층 빌딩 옆 대로변 모롱이에서 누가 망치를 친다
검은 얼굴 검은 작업복, 세상의 중심에서
빌딩 숲 속에서
검정색처럼 외길로 망치를 친다
바지 아래 신발을 보면 안전화를 신고 있다
그러나 다소곳 고개 숙여
때릴 자리 느긋이 바라보는 모습,
아무래도 당신은 정신노동자 같다
한번 내려치는 시간 1분 17초, 금방 세상을 때린
망치 튀는 모습, 내가 떨린다
한 번의 신성한 동작으로
노동과 정신을 함께 말하는 철학자인가
느리면서도 결코 느리지 않는
느긋하면서도 지극히 정교한,
수많은 행인들은 물론 당신을 경배하는 나에게
활력 넘치게 하는 22m 강철 거인
당신 자신을 때리기도 하다가
당신의 꿈을 두드리는 그 망치 소리
신문로에서 광화문 네거리로
물 건너 저 낯선 땅까지
범종소리처럼 원을 그리며 여울져간다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 「망치치는 사람」.

 


입술 바이러스

속도의 정령이 내 바쁜 발목을 잡아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이젠 클릭도 되질 않고,
커스는 달고 있던 모래시계를 버릴 줄 모른다
발목 잡힌 내 몸은 지쳐 아리고 으스스하다
PC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처음 있는 일, 무슨 연유일까
겨우 억지로 바탕화면을 열고나면
푸른 초원에서 불쑥 솟아 오른 바이킬*
하릴없이 확인 클릭을 하자
못이긴 척 거들먹거리며 지하로 사라지고,
그러나 금방 화면을 덮쳐버리는, 또 다른 대형 간판
“바이러스&PC 진단치료” 스팸이다
결사적으로 지우려들면 끈질기게 저항하다 사라진다
그것도 잠시, 또 밀어 올리는 악의 꽃

내가 벌여 논 행사, 근 열흘 밤샘을 치고, 울긋불긋 알약들을 털어 넣어도 저 PC처럼 가열된 나는 진정되질 않았다 깊숙이 박혀있던 내 안의 암석들이 녹아 더부룩한 가스를 동반한 마그마로 고인다 지각의 틈새처럼 벌어진 내 윗입술을 통해 터트린 몸의 꽃 내가 병원으로 가 링거를 꽂고 있을 동안 뒤따라 PC도 수리 센터로 실려가 포맷을 당하고, 비록 내 입술딱지가 말끔히 떨어졌다 해도 그 자국 아래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 지금은 휴화산처럼 내색 한 번 하질 않지만, 내가 힘들어 기울어지면 언젠가는 또 일어나고야  말 열꽃

*바이러스 제거용 스팸 일종.

이초우∙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1818년 9월의 헤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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