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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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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텃밭에 뿌린 틍뼐씨 외 1편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 손을 잡고 강당을 돈다
장애로 몸이 부자유스러운 아이들
어눌한 행동으로 돌고 돌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거슬러 오르다 손에 잡히는 것 있으면 낚아채듯 움켜쥔다
그게 옆 사람 멱살이 될 수도
빠르게 먼저 걸어가는 사람 뒷머리가 될 수도 있다
바람 한 줌 잡고도 웃을 수 있는 아이들
한 줌 흙이면 강당은 텃밭이 되고
바람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봄날을 데려온다
늘 그 자리만 돌아 심심할 것 같아
우리 머리도 한 번 굴려볼까, 궁리하다 보면
봄날은 꽃이 피고 꽃이 흩날리고 꽃이 지고
우리 머리 한 번 더 굴려볼까, 얼굴 맞대면
네 얼굴은 지루해서 참지 못하고
저 혼자 날아서 하늘 끝에 가서 앉는다
진이가 다가와 묻는다
뿌,샨,씨,는,틍,뼐,씨,입,니,다,틍,뼐,씨,는,뭐,지,요,션,쌍,님,
이 텃밭에 뿌리는 씨가 다 틍뼐씨야
네가 심각하게 걸으면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 다 틍뼐씨야
돌고 돌고 돌면서 씨를 뿌리는 아이들
열매가 궁금해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저 웃는 얼굴만 보이는데
빛이 들지 않는 강당에
뿌린 씨가 자라서 스스로 환하게 익어 가는데
죽부인
몸 안 가득 채우고 있는 게 허공뿐일까요
손가락을 생채기 사이로 밀어 넣어 휘휘 돌리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공만 보여줘요
속지 마세요
피가 다 붉은 색은 아니지요
허공 같은 피가 손가락에 묻어나올 때
가슴은 싸하게 경련을 일으키지요
피는 색이 아니라 감각이지요
생채기 안에 또 다른 상처를 품고 있는 그녀
흐르지 않고 버티는
악착같이 버티는
허공
그녀는 쉽게 잊혀져요
박영∙2006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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