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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단편/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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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18회 작성일 09-01-1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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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빛의 지문指紋/정찬일



오늘 오후부터 며칠 간 짙은 황사가 한반도 전역을 덮친다고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4킬로미터, 겨우 30분을 달렸을 뿐이다. 두 달 만에 새벽에 달려보는 것이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의 산책로에는 주홍빛 가로등만 군데군데 켜져 있을 뿐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터질 것 같은 내 심장박동소리만 들린다. 다시 오르막이다. 산의 정상에 가닿기 위해서는 두 개의 오르막을 더 뛰어 올라야 한다.
어젯밤 TV 속에서 늙은 황소의 누런 눈 같은 두 개의 황사 덩어리가 한반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황사의 근원지를 알아보겠다며 앵커가 부른 취재기자는 고비 사막의 한 현장에서 현지인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황사만큼이나 얼굴이 누렇게 뜬 한 중국인 남자가 취재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이곳에 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래 속에 묻혀버렸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국인이 말했다. 중국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이 화면에 나타났다. 길은 아무런 추억도 없다는 듯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하는 중국인만 길의 추억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짧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길 위로 쌓이는 모래의 무늬가 그 모습을 수시로 바꾸고 있었다. 취재기자는 매년 고비사막에 많은 나무들을 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막은 일 년에 제주도와 거제도를 합친 면적만큼 그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으며, 보고 있는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도 밭과 길을 지우며 커다란 모래 언덕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내용으로 현장 인터뷰를 마쳤다.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나를 찾아오고 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먼저 상의 운동복의 어깨 부분을 뜯어낸다. 그리고 하의 운동복을 벗어버린다. 첫 번째 급경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어깨가 뜯겨나간 상의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운동화를 벗어 버리고, 지난 두 달 간의 파견 근무에서 쌓였던 피로를 벗어던진다. 알몸으로 달리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급경사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9시 저녁 뉴스를 들으며 나는 주황색으로 물든 빌딩 숲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기시감. 누런 실루엣의 도시. 내 존재가 바늘만한 틈새로 빨려 들어가, 스물아홉 내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서도 한참이나 더 빨려 들어가, 출렁이던 양수의 시간을 지나서도 더 먼 과거로 달려가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저 누런 황사의 시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황사의 시간이 올해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언제부턴가 황사가 온 도시를 다 덮는 날이면 나는 내 몸의 모든 문들을 꼭꼭 걸어 잠군 채 황사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마지막 오르막 앞에서 판에 박은 듯이 출퇴근을 하는 나를 벗어버린다. 그리곤 매일 정오가 되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잠이 덜 깬 듯한 식당들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심하며 서성거리던 내 모습도 벗어버린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산의 정상을 향해 뛰어오른다. 새벽 세 시. 집을 나설 때 1층으로 내리던 계단참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낯선 여자의 등이 떠오른다. 조그맣고 메마른 등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등을 구긴 계단만이 고행의 승려처럼 어둠의 입자에 묻혀 있었다.

어제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온통 황사로 가득 덮여 있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도시 위 빌딩들의 경계가 흐릿하다.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토요일 늦은 오후에 내 집을 찾아올 사람들을 떠올려보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옆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 혹 댁에도 정전이 됐는가 해서요.”
여자는 작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옅은 하늘색 라시 티에 무릎과 허벅지 부분이 헤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다. 긴 머리를 리본으로 동여맨 여자는 한눈에도 여대생처럼 앳돼 보인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얼굴에 유난히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여자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의식의 밑바닥에 내려앉은 오래된 앙금이 금방이라도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어디선가 여자를 본 것 같다는 내 생각을 지워버린다. 나는 여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거실의 스위치를 올렸다. 거실 형광등이 흐린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켜졌다.
301호 누전차단기 스위치가 모두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밑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손으로 전달되며 누전차단기 스위치가 금세 off 상태로 내려갔다. 나는 합선된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301호의 거실을 훑어봤다. 별다를 것 없는 거실 벽에 그림인지 사진인지 분간이 안 가는 커다란 나무 액자 하나가 당돌하게 걸려 있었다. 액자 안의 그림은 온통 검은 색이어서 그러잖아도 어두운 거실을 더욱 어둡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며칠 전 새벽에 계단참에 웅크려 앉아 있던 메마른 여자의 등을 떠올렸다.
다음날 여자는 또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화장실 천정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제보다 나는 좀더 자세히 301호의 거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현관에서 바라보았던 액자 속의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어제는 밋밋한 검은 바탕으로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것은 질감이 느껴지는 검은 바탕의 흑백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머뭇거림 없이 한 여자를 깊고 어두운 우물 밑바닥에서 길어 올렸다. 그리곤 입속말로 그 여자의 이름을 7년 만에 불러보았다. 고나경. 하지만 나는 여자가 열어주는 화장실로 시선을 옮겨야 했다. 화장실 벽을 타고 누런 물이 몇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자의 집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내 집의 화장실에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플라스틱 보드의 천정에 개구리 알 같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나는 먼 친척뻘 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화장실 천정의 플라스틱 보드를 손으로 툭 쳐올렸다. 천정에 고여 있던 물이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며칠 후, 퇴근을 하고 막 현관에 들어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저쪽 공간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얼굴 잊어버리겠다.”
대학 때 함께 사진 동아리를 했던, 지금은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K 선배였다. 핸드폰에서 비릿한 비 냄새가 풍겨왔다. K 선배는 후배들의 봄 전시회가 시작된 지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다며 대뜸 핀잔부터 해댔다. 
“경황이 없었어요.”
“몇몇 멤버가 모였는데 지금 나올 수 있어? 가까운 곳이야.”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K 선배는 이틀 후에 후배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 자리라도 반드시 참석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1층 편지함에 팸플릿 봉투가 꽂혀 있었다. 2008 봄, 포커스 정기 사진 전시회-푸른 차광막전.
대학교 때 나는 사진 동아리인 ‘포커스’의 회원이었다. 아버지가 조그마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진 동아리를 그만 둔 것은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그만 두었지만 봄과 가을이 되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시회 팸플릿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사진전에 참여하거나 발길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거실 탁자에 팸플릿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은 채 툭, 던져 놓았다. 그리곤 ‘차광막’이란 단어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갈 무렵까지 자꾸만 내 신경은 탁자 위의 팸플릿에 가 있었다. 호기심보다도 ‘차광막’이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어떤 힘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노란 표지로 디자인 된 팸플릿에는 별다를 것 없는 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익은 이름들도 몇몇 보였다. K 선배의 이름도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30여 페이지가 되는 팸플릿을 넘기다가 한 사진에 시선을 멈추었다. 아니, 그 사진이 내 시선을 멈추게 만들었다. 순간 내 목 위로 뜨거운 피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진은 푸른 차광막 안에서 밖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사진의 전경이 온통 푸른빛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푸른 색 너머에 마치 파스텔 톤으로 그린 것처럼 서로 다른 명암으로 번져 보이는 흐릿한 풍경이 실루엣으로 겹쳐 보였다. 고은희(3년)/Ko Eunhee, 제목/2008 봄, 삶의 표면과 이면(Ⅱ). 모르는 이름이었다. 대학 때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한 회원들을 빼고는 모두 낯선 이름들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고은희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가 그 부드러움을 잃어 갔다. 시간의 이면이 있다면 어쩌면 나는 그 이면으로 불쑥 옮겨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나경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토요일이었다. 전날 봄 정기 전시회를 위해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합동 촬영을 갔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늑골에 햇빛이 들도록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집은 알맹이가 없는 견과 속처럼 조용했다.
바빠?
토요일이잖아. 어제 촬영 때문에 늦게 와서 지금껏 자고 있었어.
함께 갈 곳이 있어.
‘꼭’이나 ‘반드시’라는 말은 없었지만 짧은 그녀의 말에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먼 곳은 아니야. 오래 걸리지도 않고……. 지금 집 근처 슈퍼에 와 있어.
그날 고나경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시내를 갓 벗어난 곳이었다. 길 건너편에 백년은 족히 넘었을 한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몇 번인가 근처를 지나면서 보았던 나무였다. 그녀는 그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커다란 은행나무 곁에는 지난여름 태풍으로 넘어진 암은행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가 그때까지도 기울어진 채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곁을 지나칠 때마다 태풍에 의해 쓰러져 땅 위로 드러난 커다란 나무의 뿌리가 마치 하늘로 막 날아오르려는 새의 날개 같다는 생각을 갖곤 했다. 은행나무 앞 공터 주차장에 승용차들이 가득 세워져 있었다. 우리 앞으로 많은 승용차들이 지나갔다. 전해지는 공기의 묵직한 파동만으로도 차들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10시가 채 되기 전인 시간인데도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얼굴이 따가웠다. 은행나무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교회의 첨탑 위 십자가에 네온사인이 켜져 있었다. 밤사이에 선명했던 불빛이 낡은 겨울 외투처럼 초라해 보였다. 은행나무 아래에 한 노파가 굽은 등을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의 벤치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작년 초가을부터 이 길을 오고가며 보아왔던 할머니야.
아파트 단지에서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나온 할머니일 거야.
한참 후에야 내가 대답했다.
은행나무 서쪽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창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초점 없는 눈으로 노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는 자꾸 중천으로 떠오르고, 나무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노파의 몸은 술독에 든 매실처럼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할머니가 파란 은행나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위태롭게 보여.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하고 마치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자잘한 은행나무 잎사귀 속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은행나무가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빛 덩어리처럼 보여.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노파가 공중에 환하게 떠 있는 빛 덩어리 속으로 금방이라도 빨려들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가 위태롭게 보여.
그녀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위태롭게 보여’라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내 시간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팸플릿을 들고 있는 내 손안에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어디선가 메마른 흙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이틀 후, 서둘러 퇴근을 한 나는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옆집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K 선배와 함께 사진을 보며 무슨 얘긴가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오른쪽 벽에 설치된 낯설지 않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팸플릿에서 보았던 고은희의 사진들이었다. 두 번째 사진 ‘2008 봄, 삶의 표면과 이면(Ⅱ)’은 팸플릿에 실려 있는 사진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두 번째 사진과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었지만 흑백으로 찍혀 있었고 다른 다섯 편의 사진과는 달리 ‘2001 봄, 삶의 표면과 이면(Ⅰ)’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컬러사진도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세 번째 사진은 첫 번째 사진처럼 차광막 안에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찍은 것이었다. 푸른 차광막 밖의 그림이 마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네 번째 사진은 푸른 차광막을 모두 걷어낸 채 렌즈 안으로 들어온 풍경을 있는 그대로 찍어서인지 앞 사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담아내고 있었다. 차광막을 치기 위해 세워놓은 파이프가 을씨년스럽게 사진의 전면에 다 드러나 있었다. 그 뒤로 펼쳐진 널따란 밭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보리 팬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고, 돌담 안의 마늘 밭이 지평선 끝으로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밭 중간에 아련한 추억처럼 서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바닷바람에 휘어 한쪽 방향으로 가지들을 뻗은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컬러사진은 앞의 사진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푸른 차광막이 세월에 의해 뜯겨졌는지, 아니면 연출에 의해 그랬는지 활처럼 휜 양식장 파이프 구조물에 걸려있는 몇 조각의 차광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마치 태풍이 양식장을 한차례 할퀴고 간 것 같았다. 그 뒤로 펼쳐진 풍경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산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에 걸려있는 네 장의 사진 속에서는 수조 네 귀퉁이마다 설치된 플라스틱 파이프 관에서 많은 양의 해수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고 있는데 반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사진 속의 배수관이 모두 깨져 있었다. 깨진 플라스틱 관에서 캄캄한 적막이 흘러나올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사진은 다섯 번째 사진의 풍경을 구찌 브랜드가 선명히 보이는 무늬의 가방을 달랑 등에 메고, 왼손에 들려져 있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알몸의 여자가 사진 속의 풍경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달랑 가방을 맨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차갑고 매몰차게 보였다. 고은희 사진들은 순서대로 차광막으로 덮인 양식장이 황폐화되어 가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배열한 듯했다.
나는 오래도록 여섯 번째 사진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7년 전 같은 전시장에 전시되었던 고나경의 사진을 떠올렸다. 봄 정기 전시회였다. 고나경은 그때 두 장의 사진을 출품했다. 그녀의 사진은 어느 회원의 사진보다도 많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그 앞에 서 있게 만들었다. 한 장은 흑백 사진이었고, 또 한 장은 흑백처럼 보이지만 컬러사진이었다. 흑백사진은 쉽게 그 배경을 알아볼 수 없었다. 검은 바탕 위에 안개처럼, 아니면 빛처럼 하얗게 보이는 물체가 담겨져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하얀 새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고, 빛의 입자들이 어느 한 곳으로 사그라지는 모습 같기도 했으며 갈 곳을 몰라 구천을 떠도는 혼령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은 검은 차광막 안에서 실루엣처럼 보이는 차광막 밖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었다. 차광막 밖으로 어렴풋이 돌담과 황토색 빛깔의 밭들이 파스텔 톤으로 번져 보였고 멀리 몇 그루의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차광막 안의 좌우에서는 각각 네 개의 플라스틱 관에서 여러 개의 수조 안으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원근감 있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을 알몸의 여자가 뒤돌아서서 바라다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때 회원들은 누구나가 다 그 사진 속의 여자가 고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몇 관람객들은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그 사진 앞에 오래도록 머물곤 했다. 그때 사진의 제목은 ’봄, 스물두 살에 바라본 삶의 이면‘이었다.
나는 고은희의 마지막 사진 속의 여자를 바라보면서 7년 전 고나경 사진 속의 여자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사진 속의 여자들은 모두 나부의 모습이었지만 두 여자의 뒷모습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고나경의 사진 속의 나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었다면, 고은희 사진 속의 나부는 무척이나 냉소적인 느낌을 주었다.

봄 정기 전시회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고나경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요일이었고, 오후였다. 그녀는 다시 그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 함께 가자고 했다. 노파는 그날도 여전히 커다란 은행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한 달 전처럼 길 건너편에서 그 풍경을 바라다보았다. 두 번씩이나 그녀가 그곳에 나를 데리고 간 이유를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붙였다. 담배를 다 필 동안에도 그녀는 여전히 노파와 은행나무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속이 텅 비어 있을 것 같은 오후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금세 이마에서 땀이 솟아올랐다.
저 할머니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궁금해, 하고 그녀가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저 할머니의 눈이 흐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고 내가 대답했다.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오른손에는 언제나 굵은 알의 갈색 염주가 들려져 있어. 길게 내린 염주의 끈도 염주알과 같은 색이야. 할머니는 아주 느리게 염주의 표면을 매만지며 아주 천천히 염주를 돌려. 염주 알은 모두 열 개야. 작은 손 안에는 항상 세 개의 염주 알이 쥐어져 있어. 손안의 염주 알이 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화를 기다리는 조그마한 알 말이야.
노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말했다. 노파는 우리가 길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한 시간 동안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바깥 날씨가 풀리던 지난 3월부터 아침 시간이면 어김없이 저 할머니는 저 은행나무 밑에 나와 앉아 있었어. 매일 보는 모습이야. 내가 저 은행나무 아래의 할머니를 처음 본 것은 아직 커다란 은행나무의 잎들이 노랗게 물들기 전인 작년 초가을이었어. 우연히 그 옆을 지나다가 보았어. 지루했던 하루의 해가 서쪽으로 이울고 있었고, 막 물들기 시작한 잎사귀들 사이로 가을 햇살이 스며들어 은행나무에 환한 빛 덩어리가 내걸린 것도 그때 보았지. 마치 은행나무에 환한 빛의 문이 달려있는 것처럼 보였어.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말이야. 할머니는 그 문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위태위태한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졸고 있었어.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선 채 한참이나 할머니를 바라다보았어. 한때 그 노란 빛 덩어리가 내걸린 은행나무 아래의 할머니를 사진으로 찍고 싶었지만 지금까지도 찍지 못하고 있어.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물든 이번 가을에는 꼭 한번 저 할머니를 앵글 속에 잡아 볼 생각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저 모습을 앵글로 잡는다면, 아마 나는 저 풍경의 표면만 찍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저 할머니가 앉아있는 풍경의 이면을 찍고 싶어.
“그때 함께 찍을까?”
그녀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인가 그녀와 함께 그곳엘 갔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직도 이면이 보이지 않아,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결국 나는 그녀와 함께 그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녀가 그 사진을 찍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어보지 못했다. 함께 그 풍경을 찍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물어보았다면 그녀의 시간이 달라졌을까?
3학년 기말 시험이 끝나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나경의 할아버지가 양식장을 하고 있는데 한 달 동안 세 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동안 고나경의 할아버지 양식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양식장의 일은 단순했다. 하루에 두 번 냉동어류를 갈아 만든 먹이를 뿌려주고 수조의 물을 갈아주는 일이 전부였다. 고나경은 초등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양식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양식장에 나와 있었다. 나는 지난 봄 정기 전시회에 고나경이 출품했던 사진이 그 양식장에서 찍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검은 차광막 안에서 먹이를 뿌리는 소리가 수조 곳곳에서 사그락사그락 들려왔다. 먹이를 주다보면 어느덧 차광막 안은 어둠이 두터워져 있었다. 어둠이 더욱 짙어지면 냉동먹이를 뿌리는 소리와 수면 위로 떨어지는 먹이를 향해 광어들이 철퍼덕하고 뛰어오르는 물소리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냉동먹이가 수면 위로 뿌려질 때 어둠 속에서 사그라지는 마지막 빛을 붙잡은 수면 위의 물보라가 짧은 순간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중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면 위의 물보라만 보였다. 지난 전시회 때 첫 번째 사진은 바로 그 장면을 잡은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작업이 끝나고 옥상에서 담배 한 개비를 막 입에 물었을 때 고나경이 그림자처럼 수조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급히 옥상에서 내려와 양식장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검은 차광막으로 둘러싸인 양식장은 사람의 형체를 겨우 분간할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1번 수조부터 12번 수조로 차례차례 살펴 나아갔다. 차광막을 통해서 빛이 다 사그라진 수묵화 같은 밖의 풍경이 실루엣처럼 검은 차광막에 어려 있었다. 수조 안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만 귓속 가득히 들려왔다. 12번 수조 끝에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웬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필 수 없을 정도로 차광막 안의 양식장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3천여 평이나 되는 양식장 수조마다 해수가 떨어지는 물소리만 차광막 안에 가득 들리고 있었다. 수조 사이로 난 하수구를 통하여 바다로 흘러내리는 물의 떨림이 가느다랗게 발바닥을 통해 전달됐다. 그녀는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북쪽 차광막 밖에 초점을 둔 채 우두커니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뜬금없이, 저 두 겹의 검은 차광막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지 않니? 하고 물어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햇빛을 사물의 뒤에 두고 바라보면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아.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것이 아릿한 아픔 같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는 있어.
그때서야 나는 그녀의 어깨에 카메라가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봐, 강렬한 햇빛이 모두 수그러진 후의 풍경이 낮 동안에 바라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어.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말이야. 하지만 저 모습은 하루에 있어서 아주 짧은 동안에만 내게 보여주지. 오랫동안 차광막 밖의 풍경을 바라다보고 있다 보면 자신의 은밀한 것, 그 이면에 있는 것조차도 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녀의 말대로 햇빛의 강렬함이 수그러진 검은 차광막 밖은 또 다른 세상의 그림처럼 보였다. 옅은 먹물로 그린 그림 같았다. 가까이 있는 밭들이 그 농도를 달리하며 서로 가지고 있는 영역의 경계를 양보하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몇 그루의 나무들은 마치 수묵화를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흡사 그 풍경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물처럼 들려왔다. 나는 지난봄에 그녀가 출품했던 두 번째 사진을 떠올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낮 동안의 햇빛은 너무 강렬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두지 않고 흩어버리지. 돌담 위로 햇빛이 내리쬘 때 돌담은 이미 붉은 빛으로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돌담뿐만 아니라 이 차광막 안에서 바라다보면 한낮의 햇빛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나는 아침 해가 막 떠오르기 직전이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을 어릴 때부터 바라보며 자랐어. 하지만 그 세상을 내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말아. 이런 내 생각이 한낮의 햇살처럼 너무 강렬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매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새벽이나 햇빛이 다 수그러진 시간에 양식장을 찾아왔다. 나는 그녀 곁에서 검은 차광막 밖을 바라다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곤 그녀가 바라다보는 곳을 함께 쳐다봤다. 그러면 그녀의 말대로 뭔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을 집중하면 할수록 희미하게 보이던 것조차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과 내 존재의 이면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종국엔 선명히 놓여있던 사물 자체도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이 없었다.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새벽과 저녁으로 양식장을 찾아와서는 검은 차광막 밖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가끔 차광막 안으로 혼자 들어가 그녀가 바라보던 풍경을 바라다보았다. 차광막 밖의 사물들이 여느 때의 모습과 똑같이 다가오기도 했고, 그녀의 말대로 낮 동안의 세상은 산란하는 강렬한 햇빛으로 옅은 먹으로 그려놓은 듯한 돌담들이 붉게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여름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고, 약속한 아르바이트 기간도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 정기 전시회가 다가왔다. 포커스 회원들은 저마다 작품에 몰두하느라 얼굴들을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나는 내심 그녀와 몇 번 갔던 은행나무와 노파를 담은 사진이 출품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그해 가을 정기 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하지 않았다.
가을 정기 전시회가 끝나고 2주일이 지난 일요일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해보다 비교적 늦게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을 준비하느라 도서관이나 각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교과서에 코를 박고 있었다.
오늘 시간 있어.
전시회가 끝나고 2주가 넘도록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는데…….
그녀의 전화를 받는 동안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일직선으로 올라온 담배연기가 눈으로 들어왔다. 전화를 끊은 후에 나는 입안이 텁텁했다. 나는 대충 보이는 대로 청바지로 갈아입고 얇은 청색 점퍼를 걸쳐 입었다. 그때까지도 입안에 텁텁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현관에서 되돌아와 오랫동안 양치질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터미널에 들어서는 나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먼 곳의 허공과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그녀와 나는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카메라가 들어있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촘촘한 그물 같은 늦가을 햇볕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는 오후 세 시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을 앞서 올라갔다. 발밑에서 풀고사리들이 청바지에 스치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만 들렸다.
한참을 오르다가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곧이어 내 가슴이 탁, 하고 터져 오는 시원함을 느꼈다. 산의 정상이었다. 산의 정상이 움푹 팬 접시처럼 보였다. 족히 오백여 평의 넓이는 되는 것 같았다. 그곳은 군락을 이룬 강아지풀로 온통 덮여 있었다. 마치 부드러운 카펫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다른 어떤 풀도 보이지 않았고, 동공 가득 강아지풀만 들어왔다. 누군가 일부러 강아지풀을 재배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채 여물지 않은 씨앗들을 매단 투실투실한 꽃 이삭들이 동쪽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제단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분지 안을 내려다봤다.
금강아지풀이야. 한번 누군가와 와보고 싶었어. 구미초라고도 불러.
그녀의 말을 들으며 군락을 이룬 강아지풀을 내게 왜 보여주려고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나볼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가벼운 흥분에 들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강아지풀들은 가을볕 아래서 이제 막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술렁이는 꽃 이삭들이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산의 정상은 검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아래에 풀고사리들이 무성했다. 그리고 가시덤불들이 서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산의 높이는 고작해야 이백 오십여 미터에 지나지 않게 보였다. 다른 기생화산과는 달리 그곳의 분화구는 거의 평지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분지의 가장자리에 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그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분지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주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나는 분지 가장자리에 등을 눕혔다. 가을 하늘에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마치 강아지풀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하는 듯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닥에서 뜨뜻하고 습한 기운이 등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
그녀가 내 곁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하얗던 태양빛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내 눈꺼풀 위로 누렇게 바랜 창호지문에 저녁 빛이 들듯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었다. 어림잡아도 우리는 분지 가장자리에 누워 두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진한 풀냄새가 풍겨왔다. 모자로 얼굴을 가렸지만 얼굴 가장자리가 쓰라렸다. 갑자기 주위가 환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꺼풀을 몇 번 깜박거렸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 정상에 서 있던 소나무 숲이 갑자기 환해져 있었다. 붉은 저녁햇살이 소나무 숲으로 스며든 것이다. 숲에서 굵고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새어나왔다. 빛줄기 속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갑자기 내 눈앞의 풍경이 변해보였다. 무엇인지 몰라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한 거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분지 안이 환했다.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분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금강아지풀들이 마치 수많은 흡착판을 달고 있는 듯 저녁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수천, 아니 수만 그루나 돼 보이는 금강아지풀들이 옅은 주황색의 등들을 켠 것처럼 투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소리도, 내 숨결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분지 안으로 세상의 모든 빛들이 몰려온 것 같았다. 수많은 등불들이 빛을 빨아들인 채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빛의 향연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빛의 몸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강하지도 눈이 부시지도 않은 저녁 햇살이 순식간에 금강아지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또 다른 빛의 몸을, 빛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빛의 세계는 한없는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분지 앞에 군락을 이룬 금강아지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지 안은 커다란 빛의 덩어리였다. 내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분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강아지풀들이 흔들리며 수많은 등불들이 출렁거렸다. 빛의 파도가 그럴 것이다. 그녀가 지나간 등 뒤로 길의 흔적이 생겨나고, 빛이 출렁거렸다. 그녀의 몸이 환하게 보였다. 그녀도 금강아지풀처럼 투명한 저녁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그녀는 분지 한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나는 넋을 놓은 채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분지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빛을 빨아들인 금강아지풀의 꽃 이삭들이 마치 기다란 호롱불처럼 투명하게 흔들렸다. 옷을 스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빛의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수많은 금강아지풀 속에 서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어느 절대자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의 얼굴처럼 그녀의 얼굴이 평온하게 보였다.
그녀의 온몸이 빛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내가 그녀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녀는 내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웃옷을 벗기고 차례로 바지를 벗겨 내렸다. 나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아이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알몸으로 빛의 세계에 서 있는 동안 그녀는 몸을 돌려 자신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그리곤 알몸이 된 그녀가 내 가슴에 입술을 댔다. 가느다란 떨림이 내 몸으로 전달되었다. 바람이 불었다. 우리의 몸 위로 수많은 금강아지풀의 꽃 이삭들이 동쪽으로 쓸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둥근 어깨를 한손으로 감싸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녀의 몸은 따스했다. 그 따스함이 혈관을 타고 내 몸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녀의 젖가슴은 저녁 햇살처럼 부드러웠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기억하며 오랫동안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작고 노란 호롱불들이 흔들렸다.
그녀의 몸은 어떤 긴장도 하지 않았고, 경계도 하지 않은 듯이 평온하게 나를 받아들였다. 미끈한 것이 느껴졌다. 내 몸 안에 있는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촉수들이 그녀의 속살을 매만지고 있었다. 내 몸의 촉수들이 그녀의 몸을 한참 동안이나 타고 올라가 커다란 저수지의 물을 만났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올라가 투명하게 내비치는 햇살을 감지했다. 머릿속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곳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몸속에 온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소나무 숲에서 저녁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새의 날갯짓 소리였다. 우리는 얼굴을 부드럽게 간질이는 강아지풀의 감촉을 서로의 몸속에 각인이라도 하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을의 저녁 빛은 짧았다. 어느덧 소나무 숲으로 들어왔던 붉은 빛들이 수그러지고 분지 한쪽으로부터 그물 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분지는 금세 어둠을 담은 접시처럼 어두워졌다. 그녀의 몸 안에 있던 빛들도 사그라졌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주위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꼭 안았다.
얼마 후에 그녀는 가만히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 한쪽에 벗어놓은 옷을 천천히 걸쳐 입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이미 사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보였다. 방향을 잃은 어선들의 불빛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내 몸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산 아래에서 밤안개의 입자들이 조용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그녀가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뒤돌아보면서 나는 그때 빛으로 가득 들어찬 분지 안에, 그리고 그녀의 몸 안에 무엇인가를 남겨놓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녀가 내 몸 안에 선명한 빛의 지문을 남겨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지 안에서 내려온 일주일 후였을 것이다. 그해 들어 첫 가을황사가 발생한 날에 그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도서관에서 보던 책들을 그대로 펼쳐놓은 채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양식장의 커다란 냉동 창고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녀 옆에서 항상 어깨에 메고 다니던 카메라가 발견되었다. 경찰에서 그녀의 카메라 속 필름을 현상했지만 별다른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냉동된 물고기들을 찍은 몇 장의 사진만 나왔다고 했다. 경찰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때부터였다. 황사가 도시를 부였게 덮는 날이면 나는 습관처럼 나가던 외출을 자제하거나, 하던 일에 손을 놓은 채 나 자신의 이면을 마냥 들여다보곤 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코끝으로 싸한 물냄새가 풍겨왔다. 새벽 네 시 반.
어젯밤 전시회를 끝내고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를 빌 때까지 장소를 옮기며 무척 많은 술을 마셨다. 술좌석에서 K 선배가 고나경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리곤 고은희가 그녀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니 팸플릿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고은희가 고나경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는 나름대로 고나경과 그녀의 동생의 사진을 본 느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내가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장소는 K 선배의 칵테일 바였다. 창문 하나 없는 칵테일 바는 영화처럼 시간이 빠르게 흐르거나 멈추어 있었다. 검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검은 벽 안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의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그곳에서 고나경의 동생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고은희는 많은 면에서 언니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풍경 너머에 있는 이면의 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혹 그 이면이라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보이는 실체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광막 안이건 밖이건 그곳에는 또다시 많은 표면과 이면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임이 끝나갈 즈음에 나는 고은희에게 전시되었던 사진 중에 한 장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고은희는 선선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니,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의 사진을 주겠다고 했다. 바가 있는 기다란 골목을 빠져나오는 내 어깨가 무거웠다. 내 어깨를 만져보았다. 어깨가 젖어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밤의 불빛에 밀려 희미하게 뜬 별들이 차갑게 느껴졌다.
차가운 생수를 들이키고 나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지만 집을 나서지 못했다. 나는 우두커니 베란다에 서서 분홍빛으로 물든 도시를 바라보며 금강아지풀 속으로 걸어들어 갔던 고나경의 모습을 떠올랐다. 저녁 햇살을 빨아들이는 금강아지풀 속으로 들어가 종국엔 빛과 하나가 되어버렸던 그녀의 몸이 머릿속에 선명히 되살아났다. 올가을에 한번 그곳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퇴근길에 고나경과 함께 갔던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 차를 멈추었다. 7년 만이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 있던 벤치는 은행나무의 울타리를 겸한 철근 벤치로 바뀌어져 있다. 노파가 앉아 있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엔 이미 노파도, 고나경도, 그리고 길 건너에서 그녀와 함께 은행나무를 바라다보던 나도 없었다. 8년 전 태풍에 쓰러졌던 암은행나무의 뿌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6차선 너머를 바라다봤다. 고나경이 길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선명히 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길 건너편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눈을 감았다. 희미해졌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머리 위에서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행나무를 올려다봤다. 일렁이는 은행나무 잎사귀 속으로 저녁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정찬일∙1964년생.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제2회 <평사리문학대상> 소설부문 대상 수상.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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