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1호 신작시/김백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51회 작성일 09-01-19 19:12

본문

김백겸
보물섬 외 1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읽으며 흥분하던 소년시절이 있었네
해적으로부터 보물섬 지도를 얻어 미로 같은 여행과 모험 끝에
황금과 금화가 있는 보물을 얻는 이야기
‘보물섬’은 이어도처럼 수평선 너머에 있었고
아틀란티스처럼 시간 저편에 있는 환상이었네

경전들의 보물섬 스토리를 읽으며 방황하던 청년시절이 있었네
보물섬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거나 극락으로 묘사되었네
결핍 그물에 걸려 고통의 상처가 채찍 자국처럼 난 마음에게
보물섬은 젖과 꿀과 미인이 있는 계곡이거나 
탐욕이 그쳐서 하늘과 땅이 내 재산인 무욕의 사막이었네

현실에서 보물섬을 찾는 게임에 열중하던 중년시절이 있었네
보물섬은 회사의 고위보직이거나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주식의 잔고였네
남들이 찾은 현실보물들은 모두 전생수업에서 약속된 선물이었고
내 전생 성적표는 철학과 음악과 시밖에 없다고 命理書들이 말했네
보물섬은 다음 생에서나 항해가 가능한 바다 건너에 있었네

황혼의 어둠이 내린 정원에서 초록 황금을 피운 느티나무를 보네
보물지도는 밖이 아닌 내 몸 속의 유전자에 그려져 있네
유전자 스위치에 불이 들어오면서 사랑과 죽음의 게임이 시작되었네
세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바꾸는 연기마왕의 환상이었고
나는 보물섬에 미쳐 세세년년의 미로를 걸어가는 영원한 소년이었네





가시철망이 있는 높은 담


시간이 낡은 페인트로 무너지고 작은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눈을 대자 유리창이 거울처럼 빛나는 집이 서 있었다
진기한 나무들과 꽃들로 둘러싸인 넓은 영지의 집을 전생의 어디선가 
본 듯 가슴이 뛰었다
배 안의 창자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기억들을 불러왔다
도지사 관사는 바다의 침묵 아래 용궁처럼 서 있었다

나는 골목길로 난 후문에서 구슬과 딱지치기에 팔린 아이였으나
눈앞에 다른 세계의 입구를 보지 못한 장님이었다
큰 세계가 메두사의 눈으로 내 운명을 노려보았고
어둠 속의 비밀 문처럼 그 날 그 장소에 드러났다
가시철망의 담으로 회오리바람이 불고 침묵이 말을 건넸다
거울 밖에서 거울 안의 나를 보아라
너는 고아처럼 길을 잃었구나

권력의 힘은 번개처럼 얼굴을 드러냈다
벽돌집을 비단휘장으로 감싼 매혹이 구미호꼬리처럼 드리워졌다
도지사 관사는 야수가 있는 크레타 왕궁처럼 황금 냄새로 물들었다
마술사가 허공에서 장미꽃을 뽑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 이름이 무거운 큰집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베르사이유 궁전 앞에 선 내 눈에는 검은 돌덩어리의 무게 뿐
거울 안의 궁전과 침묵의 왕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화룡점정의 순간이 지나간 내 일생은 힘이 빠져나간 허수아비였다
그 때 나를 들어올렸던 영웅의 힘과 불꽃 눈은 금단의 마약이었고
내 몸과 정신은 고해를 둥둥 떠다니며 황금궁전을 찾아다녔다



김백겸∙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이 있음.
추천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