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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신작시/박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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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라연
新 구사일생 외 1편
침몰된 유조선에 누워
9년을 보냈다
다시 시작해보려고
땅 끝 마을까지 찾아갔을 때
바닷물은 내 안의 기름 냄새에
구역질을 해대고 나는
옛날이 부끄러워 헛구역질을 했다
흘러들어온 굴 다시마의 입덧이라고
위로해주며 까마득히 날고 있는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저 새떼들
몸이 썩어 본 나는 금방 알아봤다
새가 아니라 썩은 갯벌에서도
살아남은 물고기들이 오래 전에
죽은 물고기들의 혼을 겹겹이 물고
물속처럼 공중을 헤엄쳐 하늘로
오르고 있다는 것
썩은 바다의 일부를 떼매
이고 지듯 침몰된 시간들을
겹겹이 물고 따라 올랐다
다음 창천까지
탈 동물적인
밤 9시 뉴스 화면에서
자동차 경주하는 도로에 뛰어든
캥거루 A를 보는 순간
A의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무수한 A를
나를 보았다
저렇게라도 한 번 겨뤄보고 싶었겠지
용기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줘서 감사해
죽지 않고 살아 나와서 축하해
카 레이서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멈춰줘서 고마워
비겁한 순간들이 양식인 동물세계에서
더는 굴욕만을 치료약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저를 다 걸고 세상 밖까지
뛰어든 용기에 박수!
캥거루 A 만세
박라연∙1951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 '우주 돌아가셨다'. 산문집으로 '춤추는 남자 시 쓰는 여자'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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