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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윤병주/허균과 방풍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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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57회 작성일 20-01-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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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윤병주/허균과 방풍죽 외 1편


윤병주


허균과 방풍죽



해풍이 바람을 움켜쥐고서
바닷가 찬 바람소리에 귀먹은 식물들이 끓어오른다


청명이나 곡우의 소금기 먹은 방풍잎들이 허름한 집들에
생기를 품고 입을 크게 벌린 햇살을 불러들인다
변죽 같은 날씨가 잔잔해지면 먼 곳으로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리며
바닷가 사람들의 식욕을 깨우며 식물들도
한 공간을 장지를 지킨 듯이 피워 올린다


바닷가 거친 물살을 밀고와 자란 생이란 무엇이겠는가,
끈질긴 씨앗을 잡고 유전된 맛의
순결한 안쪽까지 몸을 눕혀 다른 체위로
바다에서 이름을 얻는 것인 줄
육탈한 식물들은 알고
알몸의 빗장뼈를 열고 피었을까


봄내음 한 철 피어오르던 바람벽에서
어떤 조선의 유배온 선비
푸른 식욕을 적었던 문장도 몸속에서
관계한 그런 일과 무슨 사연을 추락하는 속도에
땀이 흘리며 적었다가 지워지면
몇 백 년이 지나간 구름 속에 잠을 자는 문장을
깨워 허균은 그날을 기억하며 방풍죽이 끓고 있는
초당의 바닷가 마을로 올 수 있을까
어떤 공중에 걸린 몇 번의 생이
유전된 맛을 툭툭 피워낼 수가 있을까


까마득히 멀리 온 바닷가 바람과 유배된 집과
교환하는 그 억센 이승의 힘겨운 날을 잡고
피는 식물들의 힘


높은 산, 눈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고
눈 먼 숭어들이 바다의 풍습을 메고
떠나간 사람들처럼 돌아오면
오래도록 유전해온 희고 끈적한 해안가 방풍들이
허균의 무력한, 꽃을 보던 날이
헌 묘처럼 돌아와 피고 지던 봄날이 오고간다





10월의 진고개 길



단풍이 들기 전 골짜기 나무들의 그림자는 고달프다
늦은 하늘 길이 구름을 찾아나서야 한 생의 깊이 물들이고
나무들의 한 계절을 건널 준비를 한다


산길은 높고 바람은 충분히 상처를 감싸며 차가워졌다
한기가 내려온 골짜기 산짐승들은 생의
깊은 곳까지 몸을 맡길 준비하는지 보이지 않는 다
어떤 성자나 은자도 자기 모습이 들러나면
잠시 부풀린 몸의 한 쪽을 찬바람에서 지나간 기억을 깎아야 내야한다


나는 이런 결핍이 없는 가을 저녁이 좋다
집과 나무와 거대한 힘의 기울기를
새벽 한기에 세워두고 오래된 속내를 감추며
산 그림자를 넘어온 깊은 곳을 건너는 안부들도
산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어둠에 손을 잡고 깊게 파인
산길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쓸쓸함도 힘이 되는
산맥의 바람과 찬 서리가 내리기 전 대칭된 계절은
또 수련하는 날을 건너서 가야한다





*윤병주 201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상처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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