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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남권/나비와 개망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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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남권/나비와 개망초 외 1편
김남권
나비와 개망초
하얀 나비가 날았다
하얀 기억을 남기고 발자국도 없는
하늘을 날아올라
날개를 펄럭인 자리마다
꽃이 피었다
꽃잎은 공중을 물들이고 피어나
암술을 내밀고 그리움을 접속했다
나비는 꽃을 본 게 아니었다
나비는 망초의 은밀한 곳을 본 것이었다
나비의 날개가 쪼개지기 시작했다
백 여덟 개의 꽃잎이 우주를 향해
떨고 있는 동안
나비는 흰 무늬를 쪼개어 수의를 짓고
샛노란 심장에 봉분 하나를 세웠다
참이었던 적 없이 개를 족보로 들여 놓고
살아 온 세월,
그래서 가슴은 늘 서늘했고
눈빛은 늘 허전했다
이제 다시 긴 잠에 들어가면
칠 년 후 쯤 깨어나
날개 없는 짐승으로 땅을 기어다닐 것이다
그리고 꽃그늘을 찾아다니며
나비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물어볼 것이다
별의 주소는 묻지 않겠다
늦은 그리움에, 너는 첫눈에 반한 첫눈처럼
내 가슴에 들어와 별이 되었다
우편번호도 없이 캄캄한 우표 한 장 붙인 채
수억 광년을 걸어서 왔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눈빛 무늬를 기억해 내고는
연극이 끝난 배우처럼 나에게 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지상의 별이 길을 떠나면 멀리서
마중 나온 너는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녹였다
아직 하늘이 녹기 전, 푸른 수의를 입고
먼저 오는 이의 조문을 받기 위해
지상에 별 하나를 밝히고 그 입술 위에 천상의 화인을 찍었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혈관에 새긴 편지로 바람의 온도를 재는 동안
어둠이 걷혔다
아직 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새벽이 올 때까지 멀리서 오는 별 하나를 그리워할 뿐이다
*김남권 201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외. 동시집 『짜장면이 열리는 나무』 외. 저서 『시낭송 이론서-내 삶의 쉼표 시낭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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