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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오선덕/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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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오선덕/것 외 1편
오선덕
것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이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에 날이 새도록 것만 생각했다.
것은 서로를 이어주는 징검돌,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나여서 하루는 차가워지고 하루는 뜨거워진다.
것 같다는 것은 추측이거나 잊고 있었던 것을 소환한다.
맛을 분석하는 것은 10센티도 안 되는 혀의 자발적인 일, 어릴 적 알았던 맛은 죽을 때까지 간다.
꽃을 피우며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발버둥 칠 때야 그 나무와 꽃의 이름을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것들은 먼 훗날 낯익음으로 새겨 놓는다.
바람 불면 꽃잎 파닥이듯 그 자리에서 붉어지다 익어간다.
것 같다는 생각 속에서 쌓여 가는 무수한 몸짓들.
홍시
텅 빈 버스정류장, 좌판을 정리하는 까만 손톱, 속을 하얗게 태웠을 사과껍질은 노을을 닮았다.
붉은 스카프를 한 빌딩들 사이로 신호등 따라 배회하는 사람들.
마네킹의 옷은 날마다 벗겨진다. 서로 다른 각도로 흘깃거리는 얼굴들.
커피 향 속으로 빨려 들어간 카페, 나는 레몬티라 생각하며 라떼를 주문한다.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채 라떼를 마신다. 부드러운 거품 속에 스며드는 것은 체념일까, 잊고 있었던 오래전 습성일까.
습관처럼 튕겨져 나온 입술의 배반은 내 안에 잊고 있었던 것들을 불러낸다.
짧은 계절 속, 내 발자국들이 흰 눈밭 위 홍시처럼 쏟아진다.
*오선덕 2015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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