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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박진이/숨바꼭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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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박진이/숨바꼭질 외 1편
박진이
숨바꼭질
숨어 있는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이라 믿었지
어디선가 분명 나를 찾고 있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있어
나를 세워두고
열을 세는 동안
모두 숨기로 했지
눈을 감고 있으라 했고
나는 열이라는 숫자에 집중했지만
여섯이나 일곱을 자주 아홉으로 혼동했어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란 게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아도 되는 술래처럼
금세 시시해지는 일이라서
아이들이 놀다 간
텅 빈 놀이터 안에
나는
그렁그렁 괴어 있는 것만 같아
꼭꼭 숨어라
두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해가 기울곤 했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내가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는 것이었지
지금도 여전히
간주
돌아보니 1절로 끝난 일이 참 많다. 따라 부를 가사 한 줄 없는 지루한 간주도 없었다. 어쩌다 2절까지 이어지는 때에도 고개 대신 발끝을 까딱거리며 수긍도 부정도 아닌 노래의 순간을 기다렸다. 가사가 없는 시간, 노래 속에는 헤어지는 사람이 많았다.
노래방 조악한 조명 아래 나는 아무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처럼 앉아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다시 환해진다. 가사가 없는 노래의 한 부분을 훌쩍 뛰어 넘을 수는 없을까. 노래를 부르며 노래에서 벗어나 후렴구가 반복되곤 하는 노래들을 다시 기다려야만 할까.
제목으로도 첫 소절로도 찾아지지 않는 노래를 고르다 보면 입에 붙은 노래 한 곡 변변하지 않다는 것, 팡파레 울리는 순간도 없다는 것.
*박진이 201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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