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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길전/각시나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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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길전/각시나방 외 1편
김길전
각시나방
산마을은 열아흐레
달을 기다리다 먼저 날아오른 각시나방의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길은 저녁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이어졌는데
저를 가두고 제 발소리 죽여 간 그녀 그 산모퉁이 따라 도는 돌부리를 누가 아는가
옛 사람의 발뒤꿈치에서 물러서던 성황당 돌담 기대어
훠어이 훠어이 따라나서지 못한 옛 기억을 쫓는 저 인동꽃이
덧대고 덧대던 가슴 풀어헤친 미친년 같아서 아주 미친년 같아서
그저 눈만 흘기는 고갯마루 그믐달
나비
허공에 가로선을 긋고 올라앉으려던 몸짓이 뒤집히는 제 날갯짓 추스르고 있다
생각을 수습한 나비가 돌아갈 길을 찾고 있다
네가 나비인 줄은 진즉 알았어도 너의 날갯짓이
네 거울 속의 그것이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내가 끼어들 자리 어디에도 없구나
바람에 실렸을 때 나비는 이미 시공의 밖이다
네가 나비로 앉아 있을 때나 날아다닐 때 나의 과거도 미래도 접혔다가 펴지고는 하였다
너는 나비로 나의 현세마저 옮기고 있지만
유월의 허공에 날갯짓만 남았다
네가 떠나간 그 진공 속을 나비가 건넌다
오늘 나와 나를 앞서다 넘어진 계단
각을 맞추어 그림자 사이 우겨넣은 시간과 공간 사이 지나친 사랑의 허물을 벗는 허공 사이를 나비가 날아 건넌다
너의 날갯짓 이승에서 소멸하고 나면 나의 과거도 미래도 사라지고 몸짓이던 사랑도 미움도 남지 않은 거기에는 그저
꽃이 된 말이 남는다
날아다니던 것이 그저 날개였으니 이제 나를 내어준 자리에
꽃으로 접힌 그 표정이 남는다
*김길전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검은머리물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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