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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신작시/양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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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열
세대교체論 외 1편
―레임덕
겨울에 생태관람로 따라 누런 갈대를 쭈욱 베어냈다.
장발 단속에 걸려 바리깡질 당한 훤한 머리길 굵게 한 줄 생기고 겨우내 순천만 바람은 사나운 장수처럼 낮은 외길을 군림했다.
노장들은 굴비처럼 엮여 지붕 위로 올려졌으나
저 빛나는 年輪!
봄이 되자 露地보다 묵은대 속의 청갈대가
더 빨리 자라 올랐다. 개펄 눈꺼풀을 밀치고 나온 연초록 화살촉들이 새떼를 겨냥할 때, 묵은대는 막아서지 않고 허리 사알짝 비틀어 과녁을 내어주고
찬바람 막아대느라 빈 몸만 휘청거렸으리.
꺼진 모니터 같은 썰물의 물웅덩이에
전원 켜지듯 달이 뜨자, 맹물과 소금물 뒤섞인 수면에 청갈대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쓰인다. 제법 커서 붓대가 되어서는 곧장 천자문을 떼고, 몇 년을 참다 보름 만에 제 평생의 키를 한꺼번에 밀어 올리는 속 빈 대나무처럼 사자성어를 중얼거리며 쑥쑥 커 올랐지만
세속의 사서삼경을 다 익힐 때까지
씨방 맺혀 고개 숙일 때까지
결코 묵은대를 밀어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빽빽한 허공을 내어주었다.
제 몸도 비었고 하늘도 아직 빈 곳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늘 아래 개펄의 불립문자를 무수히 외우는 저 新舊의 조화로움이
오리, 탐욕의 오리로 하여금
초라한 별빛 사이를 되똥되똥 걷게 했을 것인가?
사족蛇足·2
눈에 보여야 발인 줄 알았네
어릴 적 토방에 돋는 비꽃 보며
간들간들 자울다 나비잠 들면 한둘금 작달비는 몰래 다녀갔네 비 그치고 풋잠 깨이면 남생이 등짝처럼 쩌억 벌어진 황토마당에 찌는 염천 치켜보며 꿈지럭거리는 미꾸라지 여나문 마리,
물길과 하늘길은 서로 다를 게 없어
세상은 하나의 난달이라,
할머니는 미꾸라지가 빗줄기 타고 하늘 거쳐 제 발로 바삐 걸어왔다 하셨네 소쿠리에 쓸어 담고 소금 뿌리며
시상에나 지 발로!
미꾸라지는 새끼 뱀!
나는나는 구쁜 마음이 없어 도리밥상 턱 괴고 앉아 익은 뱀 발 찾느라 난초사발을 저녁 내 뒤적거리고, 뒤적거리고
또 무서운 잠이 들면 엄마는 꿈속에나 오고
눈에 보여야 발인 줄 알았네
몰래 찾아온 걸음에 울었네
뚜벅뚜벅, 눈에 띄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나여
아픈 상처로 따뜻하게 스며가는 발이 되게나
양해열∙전남 순천 출생. 2006년 ≪애지≫로 등단.
세대교체論 외 1편
―레임덕
겨울에 생태관람로 따라 누런 갈대를 쭈욱 베어냈다.
장발 단속에 걸려 바리깡질 당한 훤한 머리길 굵게 한 줄 생기고 겨우내 순천만 바람은 사나운 장수처럼 낮은 외길을 군림했다.
노장들은 굴비처럼 엮여 지붕 위로 올려졌으나
저 빛나는 年輪!
봄이 되자 露地보다 묵은대 속의 청갈대가
더 빨리 자라 올랐다. 개펄 눈꺼풀을 밀치고 나온 연초록 화살촉들이 새떼를 겨냥할 때, 묵은대는 막아서지 않고 허리 사알짝 비틀어 과녁을 내어주고
찬바람 막아대느라 빈 몸만 휘청거렸으리.
꺼진 모니터 같은 썰물의 물웅덩이에
전원 켜지듯 달이 뜨자, 맹물과 소금물 뒤섞인 수면에 청갈대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쓰인다. 제법 커서 붓대가 되어서는 곧장 천자문을 떼고, 몇 년을 참다 보름 만에 제 평생의 키를 한꺼번에 밀어 올리는 속 빈 대나무처럼 사자성어를 중얼거리며 쑥쑥 커 올랐지만
세속의 사서삼경을 다 익힐 때까지
씨방 맺혀 고개 숙일 때까지
결코 묵은대를 밀어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빽빽한 허공을 내어주었다.
제 몸도 비었고 하늘도 아직 빈 곳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늘 아래 개펄의 불립문자를 무수히 외우는 저 新舊의 조화로움이
오리, 탐욕의 오리로 하여금
초라한 별빛 사이를 되똥되똥 걷게 했을 것인가?
사족蛇足·2
눈에 보여야 발인 줄 알았네
어릴 적 토방에 돋는 비꽃 보며
간들간들 자울다 나비잠 들면 한둘금 작달비는 몰래 다녀갔네 비 그치고 풋잠 깨이면 남생이 등짝처럼 쩌억 벌어진 황토마당에 찌는 염천 치켜보며 꿈지럭거리는 미꾸라지 여나문 마리,
물길과 하늘길은 서로 다를 게 없어
세상은 하나의 난달이라,
할머니는 미꾸라지가 빗줄기 타고 하늘 거쳐 제 발로 바삐 걸어왔다 하셨네 소쿠리에 쓸어 담고 소금 뿌리며
시상에나 지 발로!
미꾸라지는 새끼 뱀!
나는나는 구쁜 마음이 없어 도리밥상 턱 괴고 앉아 익은 뱀 발 찾느라 난초사발을 저녁 내 뒤적거리고, 뒤적거리고
또 무서운 잠이 들면 엄마는 꿈속에나 오고
눈에 보여야 발인 줄 알았네
몰래 찾아온 걸음에 울었네
뚜벅뚜벅, 눈에 띄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나여
아픈 상처로 따뜻하게 스며가는 발이 되게나
양해열∙전남 순천 출생. 2006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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